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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 05: 에르미타주, 권력 투쟁과 인간의 본성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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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 05: 에르미타주, 권력 투쟁과 인간의 본성

Writer Hana 2021. 5. 2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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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이후 가장 추웠다. 낮에는 돌아다니기 괜찮았는데 오늘은 낮도 밤처럼 추웠다. 장갑 빼고 1분도 버티기 힘든 추위다. 아무튼 3월 초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우리나라의 한 겨울처럼 춥다. 

 

 

 

오늘도 맑은 날씨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에르미타주 관람 3일 차

오늘은 241번 방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저 멋진 조각들!

 

 

 

 

Dancer by Antonio Canova

당장 바람이 불면 하늘하늘 휘날릴 것 같은 튜닉 드레스

 

 

 

 

 

Kiss of Cupid and Psyche by Antonio Canova

 

 

 

 

241번 방의 천장

조각 자체뿐 아니라 이렇게 실내 장식도 훌륭하다. 

 

 

 

 

세부장식이 훌륭한 전시실 내부

에르미타주의 디테일.

 

컬렉션 자체도 세계 최고 수준인데 그 에르미타주를 더욱 대단하게 만든 이유는 디테일인 것 같다. 방대한 규모의 궁전이 어느 구석 하나 허투루 비워져있지 않다. 모든 공간이 정성 들여 가꿔져 있고 쉬어가는 공간마저도 그림과 조각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고 사소한 부분까지 정교하게 다듬고 추가해 완성도를 높였다는 것. 그야말로 성공의 정석이다.

 

 

 

 

Pygmalion and Galatea by Pietro Stagi

피그말리온이 갈라테이아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듯한 장면

아무튼 사랑이 세상 구원!

 

 

 

 

어떤 각도에서 봐도 멋지다!

"피그말리온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기도했다. 언젠가는 사랑하는 조각상을 닮은 여성을 만나게 해 달라고. 사랑의 여신은 왕의 황당무계한, 하지만 진심이 담긴 기도를 들어주었다. 왕이 저택으로 돌아오자 정말로 조각상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피부에 혈색이 돌았으며 시험 삼아 눌러본 피부는 부드럽게 움푹 들어갔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피부에 비친 푸른 혈관에서는 미약하지만 맥박마저 느껴졌다. 피그말리온은 살아있는 여인 갈라테이아가 된 조각을 아내로 맞아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상당히 페티시적인 사랑이지만 분명 아프로디테는 사랑의 여신답게 자신을 추종하는 자의 사랑을 관대히 허락했을 것이다."

 

- 이케가미 히데히로 <사랑의 미술관> p. 16 -

 

 

 

 

Judith by Giorgione da Castelfranco

빛에 반사되지 않고 제대로 된 그림을 사진으로 찍으려면 도저히 이 각도에서밖에...

 

<유디트, 애국자 혹은 팜므파탈? 생동감에 매력을 느끼는 인간의 본성>

 

조국을 점령한 적장 홀로페네스와 하룻밤을 보내고 그가 잠든 사이 목을 내리친다. 이러한 스토리는 많은 화가에게 영감을 줘서 다양한 형태의 그림으로 창작되었는데, 이 그림의 유디트는 마치 성모 마리아처럼 성스러운 모습이다. 우아한 자태로 적장의 머리를 발로 밟고 눈을 내리깔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공격적이지 않고 무척이나 온화하고 평화로운 표정이다. 도저히 '살인'을 저지른 '여자'라 볼 수 없고 신성한 '목표'를 이룬 '영웅'의 모습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다른 유디트는 클림트의 유디트인데 그 유디트는 '영웅'의 모습보다는 '팜므파탈'의 모습에 가깝다. 목표를 향한 집념이나 성스러운 행동보다는 눈이 반쯤 풀려서 성적 황홀감에 빠진 표정으로 묘사되어 있다.

 

유디트나 살로메같이 팜므파탈은 화가들이 열광하는 뮤즈이다. 나에게는 그 이야기가 그다지 흥미롭지 않지만, 많은 화가들의 뇌리를 사로잡는 그러한 악녀들의 매력은 무엇일까?

 

모르긴 몰라도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이 아닐까? 사람들은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많이 하고, 자극적인 이야기에 본능적으로 끌리게 되어있다. 그저 선하기만 한 사람에 대해 존경심을 보이거나 칭찬을 하더라도 그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즉, 착하고 존경받는 사람보다 문제적 인물이 더욱 주목을 받는다는 것이다. 특정한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인지도나 존재감이 없어서 미움받을 일도 없는 것보다 자극적인 노이즈 마케팅으로라도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게 낫다고 하는 것도 이러한 사람의 심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논리다.

 

지난 학기 초가 생각난다. Molzberger 교수님 수업 첫날에 우리들이 다루고 싶은 주제를 말하고 인기투표를 해서 상위 10개만 매주 한 주제씩 다루기로 했다. 그 당시 영어 때문에 주눅 들어있었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도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신나게 의견을 말했는데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거의 마지막에 한 번 다뤄볼 만하다고 생각한 아이디어를 말했다. 그런데! 나의 아이디어가 28명 중에 25명이 손을 들어서 1위를 했다. 그 주제는 "How can sport be used to struggle for political power?" 즉 정치권력 투쟁에 스포츠가 어떻게 이용되는가였다. 스포츠는 합의된 규칙 하에 최선을 다해 경쟁을 펼쳐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건설적인 활동이다. 기본 정의는 사실 정치의 정의와 똑같다. 규칙, 행동 그리고 목표 달성. 그리고 현실에서의 스포츠는 소프트 파워 soft power로써 정권 선전, 국익 추구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스포츠 외교력은 특정 국가가 가진 파워의 척도로 볼 수도 있다.

 

그날 집에 오며 생각했다.

'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랑 긴장 관계에 놓이는 것 그리고 다투는 것을 피곤해하면서 그러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열광하는 걸까? 갈등이나 권력싸움의 어떤 부분이 인간에게 매력으로 느껴지는 걸까?'

 

내가 내린 결론은 인간이 가장 견디지 못하는 것은 갈등이나 불편한 상황보다 "지루함" 그리고 "재미없음"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본인이 직장이나 가까운 관계에서 겪는 갈등은 지옥이지만 '남이 겪는 갈등과 권력싸움 구경'은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라는 점이다. 왜 정치권력 다툼을 극적으로 묘사한 사극이나 복잡한 인간관계 스토리의 영화와 드라마가 인기 있는지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요즘에는 옛날처럼 극단적인 선악 대결구도에서 선이 승리하는 전개는 더 이상 공감을 얻지 못해 사라졌다. 대신 주인공과 대결구도에 있는 악역 캐릭터도 알고 보면 나름대로 인간적인 사연이 있다는 식의 스토리가 많다. 그렇다 해도 영상이든 텍스트든 결국 감상자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공감할 대상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덜 악한(?) 주인공이 더 악한 캐릭터와의 대결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감상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밖에 없다. 

 

직접 갈등을 겪는 것은 사절이지만 내가 공감하는 타인이 복잡한 상황에서 승리를 거두고 목표를 달성하는 대리 경험을 할 때, 만족과 재미를 동시에 느끼는 것이 인간의 심리 아닐까?

 

 

 

 

에르미타주 궁전의 이탈리아 작품 전시 구역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들

이탈리아 작품 전시 홀. 그중의 유독 한 방에 사람들이 몰려 있고 오랫동안 작품 앞에 머물렀다. 왜 그러지? 나중에 가보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두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 있어서 그랬구나.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는 사람들에 치여 제대로 감상조차 할 수 없다더니... 다방면의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지구 상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역사적 인물 중 한 명일 것이다. 

 

 

 

 

쉬어가는 홀에 있는 작품의 수준!

너무나 아름다운 자세다.

 

 

 

 

The Raphael Loggias by Giacomo Quarenghi. 

라파엘 홀의 화려한 모습과 천정 그리고 벽면을 가득 채운 장식 그림들이 볼 만하다.

 

 

 

 

3월 어느 평일 오후에 오면 이렇게 한산한 에르미타주를 즐길 수 있다.

 

 

 

 

천장의 그림인데 에르미타주의 실내장식 수준...

 

 

 

 

 

오늘로써 에르미타주 갤러리 본관의 러시아 및 유럽 컬렉션, 그중에서 19세기 이전까지의 작품은 다 감상했다. 내일부터는 신관 감상 시작이다.

 

 

 

 

아, 이게 남문 밖이 아닌 광장 안에서 찍어야 더 멋진 사진이 나오는구나!

이 남문 양쪽으로 이어진 베이지색 건물이 에르미타주 신관이다. 

 

 

 

 

소련 스타일 간식

에르미타주 감상 후 무언가 단 것이 먹고 싶어서 인터넷에서 봐 둔 도넛을 먹으러 갔다. 삐쉬까의 소련 스타일 도넛과 커피. 단 돈 100 루블... 도넛은 적당히 달달하고 커피는 유명 체인점 커피보다 맛있다. 매일 먹으러 와야지!!!

 

 

 

 

삐쉬까

삐쉬까는 네브스키 대로를 따라 돔끄니기 방향으로 가다가 모이까 강 건넌 이후 나타나는 첫 번째 큰 골목, 대 카뉴센나야 거리에 있다. 지도상으로 거리에 들어선 후 조금만 걸어서 첫 번째 골목이 나타나기 전에 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냥 지나쳤다. 흐... 이 추운 날은 5분 걷는 것도 힘든데.

 

대 카뉴센나야는 명품 상점 거리인데 삐쉬까는 그 길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가게다. 하지만 들어가서 주문하고 음식을 먹는 순간 생각이 달라진다. 맛이 그야말로 명품이라서!

 

도넛을 먹고 그다지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아예 저녁까지 간단히 먹기로 하고 서브웨이에 들어갔다. seafood 기본에 베이컨, 피클, 양파, 양배추, 소스 3가지를 첨가했다. 계산을 하고 테이블에 앉아서 먹기 시작했는데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것처럼 찜찜했다. 음식을 먹고 있으니 가장 중요한 것은 안 잊었는데 뭐지? 아 이런! 샌드위치 가격이 224 루블이어서 500 루블을 냈는데 동전 잔돈만 거슬러 받고 300 루블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계산할 때 직원이 동전 있는지 물어봐서 서로 거기에만 집중하다가 정작 지폐 거스름돈을 받지 않은 것이다. 영수증과 지갑 속 돈을 다시 확인하고 계산대로 갔다. 내 설명을 들은 직원은 다른 한 사람 더 불러서 러시아로 대화를 했다. 그러더니 정산을 하는 듯 보였다. 역시! 잔액 초과 확인을 했는지 웃으면서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며 300루블을 돌려줬다. 다음부터는 나도 정신 차리자. 운 좋게 영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 있는 가게에서 일어난 일이라 돌려받았지 아니었으면 설명조차 못하고 삐쉬까에서 간식 세 번 사 먹을 수 있는 돈 그냥 버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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