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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이 건강한 행복한 여성 (2): <풀하우스> 한지은, <내 이름은 김삼순>김삼순, <금발이 너무해> 엘 우즈 본문

일상 생각/2023년

멘탈이 건강한 행복한 여성 (2): <풀하우스> 한지은, <내 이름은 김삼순>김삼순, <금발이 너무해> 엘 우즈

Writer Hana 2023. 3. 13.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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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 이어 이번에는 드라마와 영화 속 멘탈이 건강한 행복한 여성에 대해 간단히 분석해 봤다. 그 주인공은 드라마 <풀하우스>의 한지은,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삼순, 그리고 영화 <금발이 너무해>의 엘 우즈다. 

 

 


 

생각 없어 보이는 여자, 까다롭지 않은 여자

 

 

<풀하우스> 한지은 (송혜교)

 
생각없는 바보 같은 여자 캐릭터를 꼽으라면 드라마 풀하우스의 한지은이 대표 아닐까. 극 중에서 남자 주인공 이영재가 "닭" "조류"라고 놀리는 장면이 많은데 뜬금없는 놀림이 아니다.

 

나도 여성이지만 여성이라는 생명체는 타고나길 복잡한 게 사실이다. 만약 보통의 여자가 한지은처럼 계약 결혼 제안을 받았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일단 친구 커플에게 사기를 당한 분노, 그러나 속으로 삭이는 분노에 이미 멘탈이 무너졌을 것이다. 희망은 없어 보이고, 싸가지 없지만 대스타로 성공한 이영재로부터 계약 결혼 제안을 받았다, 에이 홧김에 받아들일까? 계약서에 서명은 했다. 잠깐 그런데 이게 잘한 것일까? 지금이라도 무효로 하자고 해야 하는 걸까? 아니야. 어쩌지? 결정을 내리고도 잘한 결정인지 의심하고, 무를까 아니면 이대로 갈까 하루에도 100번은 갈팡질팡하는 것이 여자의 마음이다. 이렇게 복잡하니 멘탈이 튼튼할 수가 없다. 그런데 한지은은 아무 고뇌가 없는 무뇌 단순 세포로 보인다. 마음이 지옥과는 거리가 먼 이유다. 싸가지 없는 이영재에게 어떻게 한 방 먹일까, 어떻게 해야 재미있는 글을 쓸까, 이런 생각뿐이다.  

 

그녀는 고전적인 여자 주인공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 고전적 캐릭터는 어이없는 괴롭힘을 당해도 말 한마디 못하고 참는다,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아니라 무한 인내에 돌입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유독 왕자님에게만 매몰차게 굴지만 왕자님이 매달려 결국 해피엔딩에 이른다. 그녀를 괴롭히던 악녀는 벌을 받고. 풀하우스 자체가 권선징악 구조는 아니지만 한지은은 콩쥐처럼 인내하며 감정을 감추지 않는다. 속상하면 대놓고 엉엉울고, "왕싸가지" 같이 귀티 나는 여자가 절대 사용하지 않을 비속어도 거침없는 내뱉는다. 시댁에서 곰 세마리를 부르며 춤추는 여자, 친구 커플한테 사기 당해 집을 빼앗기고도 피해의식과는 거리가 먼 여자. 
 

이영재에게 사랑을 느꼈을 때도, 감정 표현에 망설인다든지 대스타가 나 같은 여자를 좋아할까 하는 걱정은 안중에도 없다. 그저 자기감정에 충실한 '생각=말과 행동'인 단순함 그 자체다. 이런 성격이라면 본인이 속편 할 뿐 아니라 타인 (남자) 입장에서 틈이 많아 다가가기 쉽다. 자신에게 매달리는 귀티 나는 강혜원에게는 매몰차면서 한지은에게는 한없이 자상한 유민혁, 어릴 적부터 한결같이 강혜원만 봤는데 어느 순간 한지은에게 마음을 빼앗긴 이영재. 현실에서 가능한 스토리다. 한지은은 어렵지 않은 여자, 감정 표현이 자유로운 여자, 단순한 여자, 궁극적으로 활기 넘치는 건강한 여자이기 때문이다. 한지은 역을 맡은 송혜교의 미모는 이 드라마가 방영된 2004년에 절정을 찍었다고 생각되는데, 그래서 그런지 슈퍼모델같은 몸매의 한은정 옆에서도 주눅 드는 모습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한지은은 전혀 까다롭지 않다. 간혹 상당히 까다로운 여성들이 있다. 일의 완성도에 대한 기준이 높고 꼼꼼하다는 뜻이 아니다. 타인의 사소한 말과 행동 하나하나 물고 늘어진다는 의미다. 상대는 별 뜻 없이 한 말이나 행동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고 모든 것을 다 사적으로 받아들여 스스로를 괴롭힌다. 그러면서 너희들은 왜 그렇게 무례하고 무감각하냐고 투덜거리는 것이다. 한지은 캐릭터는 정반대다. 서운할 것 같은 일에도 짜증 한 번 내거나 소리 한 번 지르고 넘어간다. 무언가를 마음 깊이 담아두고 곱씹지 않는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그래서 건강하다. 

 

이런 캐릭터는 조직의 리더가 되어 험난한 과정을 앞서 이끌어 가거나, 냉철한 사업에 있어서 그다지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사적 연애 그리고 건강하게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데 있어서 최고의 성격이다.  

 

 


 

건강한 여자, 자기 삶이 있는 여자


  

<내 이름은 김삼순> 김삼순 (김선아)

 
실제로는 정려원처럼 생긴 유희진을 좋아하지, 어떤 남자가 연상의 투박한 김삼순을 선택할까?

<내 이름은 김삼순>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것은 아니고 유튜브에서 요약본을 봤다. 이 드라마가 방송될 때 나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서른 살이면 노처녀 취급받았다니 놀랍다. 아무튼 당시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노처녀와 미남에 까칠한 부자 연하남의 로맨스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남자라면 거칠고 나이 많고 푸짐한 몸매의 김삼순(김선아)이 아니라 청순가련한 유희진(정려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드라마를 직접 본 게 아니라 그런가 보다 했었다. 

​핵심 내용이 다 들어간 편집본을 본 후 당시 대중들의 생각은 틀리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내용의 드라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매력이 무엇인지 안다면 말이다. 남자가 김삼순에게 결국 이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건강함'과 '생명력'이다. 극 중 김삼순 캐릭터는 고상하고 귀티 나는 유희진 캐릭터와 달리 드세고, 말이 거칠고, 감정 표현에도 거침이 없다. 풀하우스의 한지은은 이에 비하면 고상해 보일 정도다. 하지만 김삼순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활기와 건강함이다. 게다가 방어벽이 없어서 사람을 밀어내는 성격도 아니다. 남자 입장에서는 무섭지 않은 존재인 것이다. 반면에 유희진은 보기만 해도 내가 피곤해질 정도로 나약하다. 활기나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고, 생각이 많고 복잡한 캐릭터다. 인간 문명 세계가 아닌 야생의 자연이었다면 가장 먼저 잡아먹힐 존재다. 이런 여자가 정려원 같은 외모를 가졌다면 외모만 보고 다가오는 남자는 많겠지만 행복한 연애를 오래 지속할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극 중 김삼순은 능력이 뛰어난 파티셰어다. 어떻게 하면 강남에 집 있는 남자에게 시집을 갈까 고민하는 여자는 이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다. 강남에 집 있는 남자를 만나는 순간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눈치를 살피기 때문이다. 극 중에서 김삼순이 이전 남자들에게 차였던 이유는 절박했기 때문이다. 남자친구를 꼭 붙잡고 싶어서, 결혼하고 싶어서 이렇게 아쉬운 게 있어서 남자의 눈치를 보게 되면 그 순간 매력은 바닥으로 향한다. 


여전히 남자쪽 어머니가 결혼을 반대해서 열심히 속도위반을 추진(?)하는 것으로 끝난다. 지금 보니 이 드라마는 단순히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만들어낸 그저 그런 멜로드라마가 아니다. 현실과 자연의 법칙을 잘 아는 사람이 만든 드라마다. 울고 불고 때로는 추한 모습도 보이지만 한바탕 투닥거리고 나면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나 자신의 삶을 이어나갈 것 같다. 이런 김삼순이 우울감, 무기력감, 질투 같은 감정에 정신이 황폐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캐릭터다. 

 

 


 

승부욕 있는 여자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인 금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다룬 영화 <금발이 너무해 Legally Blonde>의 엘 우즈, 그녀야말로 멘탈 강자의 표본이다. 이 영화를 보며 슬프거나 우울함을 느낄 사람이 있을까? 보기만 해도 밝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영화, 그 본질은 주인공 엘 우즈의 승부욕 넘치는 활기찬 매력이다.  

 

 

<금발이 너무해> 엘 우즈

리즈 위더스푼보다 엘 우즈에 더 어울리는 배우가 있을까?

 

 

<금발이 너무해> 엘 우즈

머리 파마 상태를 보고 살인 사건의 진범을 밝히는 지극히 그녀다운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유명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에피소드는 바로 위 토끼 코스튬 장면이다. Bunny costume scene.

 

전 남자 친구의 새로운 '재키 스타일' 여자 친구의 장난에 넘어가 혼자 코스튬 차림으로 파티장에 나타난 엘. 아무리 잡초 같은 멘탈의 엘도 처음에는 당황한다. 하지만 질질 짜며 상처받았다고 위로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차림 그대로 매장으로 가 노트북 한 대 장만한다. 본떼를 보여주겠다는 강단 있는 태도로 말이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한다. 현실에서 이런 승부욕 넘치는 행동과 태도를 보여줄 수 있는 여자가 얼마나 될까? 만 명 중 9,999명은 어떻게 그렇게 심한 장난을 할 수 있냐, 망신을 줬다며 우울감에 빠지고 세상이 무섭다며 치를 떨 것이다. 물론 과감하게 버니 코스튬을 입고 파티장에 가지도 않겠지만, 아니 애초에 남자친구를 되찾기 위해 하버드에 갈 생각도 안 하겠지만.

 

엘 우즈같은 또라이라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원하는 것을 성취하며 한평생 멋들어지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토끼 코스튬 장면이야말로 엘 우즈가 삶과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문제에 지지 않겠다는 태도, 강력한 승부욕이 핵심이다. 

 

 


 

위 세 캐릭터의 공통점을 보자면

 

1. 사연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서 보여주는 태도

 

드라마와 영화를 코믹하게 묘사해서 그렇지 다큐가 될 수도 있는 사연을 다들 가지고 있다. 전편에서 말했듯 사연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연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태도를 보여주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건강한 멘탈의 표본을 보여주는 위 세 캐릭터들 역시 속상한 일을 겪고, 상처를 받고 때로는 펑펑 운다. 그녀들은 슬픔과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감정 없는 로봇도 아니다. 다만 그런 문제들을 전부 마음에 담아두고 스스로를 끌어내리지 않는다. 

 

 

2. 귀티와는 거리가 멀다, 감정 표현이 자유로움

 

귀티가 나려면 되도록 감정 기복이 없고 표정 변화도 적으며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화난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소리 내어 엉엉 울면 안 된다. 로봇인가 싶을 정도로 냉철함을 유지해야 한다. 흠잡을 곳 없는 패션, 완벽하게 세팅된 헤어까지. 이는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요소다. 뉴스에 등장하는 아나운서 이미지를 생각하면 쉽다. 

 

하지만 귀티 나는 여성들이 타고나길 감정이 없을까? 자연스러운 감정까지 억지로 누르지 않을까? 이 여성들이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타오른다든가, 화난다고 소리 지르고, 남자가 하는 이야기가 웃기다고 배꼽 빠지게 웃는 모습 상상이 가능한가? 감정을 고도로 컨트롤해서 존경받을 수는 있지만 활력 넘치는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데 과연 좋을지 의문이다. 

 

 

3. 인생에 남자와 자식만이 아닌 자신만의 분야가 있다

 

풀하우스의 한지은은 드라마 내용상 실력은 의문이다. 하지만 꿈을 마음에만 소중히 간직하는게 아니라 진짜로 글을 써서 투고를 하는 '행동'에 돌입한다. 밤을 꼬박 새워 글을 쓰는 열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김삼순은 유학파 파티셰어, 엘 우즈는 자신의 실력만으로 하버드 법대에 합격하고 사건 하나도 멋지게 해결(?)한 똑똑한 법대생으로 등장한다. 

 

사실 명확한 목표나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회 생활은 고되기만 하고, 남편의 경제적 수준이 어느 정도 되면 집에서 아이를 기르며 현모양처가 되는 생활을 선택한다. 가끔 우울하기도 하고 자신의 삶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호소하면서도 왜 수많은 여성들이 집에 머무르고 있을까? 그게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폼나지 않는 일을 하며 몇 푼 벌기보다는 차라리 아이 키우는 일에 에너지를 쏟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이란 원래 답답해도 안정적이고 편한 것을 찾게 되어있으니. 그러나 오래 지속되는 삶의 기쁨을 느낄지는 의문이다. 

 

위 여성 캐릭터들은 무언가 자신만의 일을 한다. 나라를 구하고 인류를 구할 거창한 일도 아니고, 스스로 엄청난 사명감을 가진 것도 아니고, 복잡하게 이것저것 따지고 계산하지도 않는다. 동기는 각자 달라도 그녀들은 일에 진심이고, 일단 하기로 했으면 '그냥 한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고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에 올인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든 캐릭터들이다. 밖에서 일하는 여성이 더 우월하다는 말이 아니다. 현모양처로 인생의 행복을 느끼는 여성들이 분명 존재하고 그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삶이다. 하지만 분명 가정 주부로 머무는 데 답답함을 느끼는 여성들이 많다. 이럴 경우 무엇이든 자신만의 무대가 있는 여성이 사회적 스트레스는 받을지언정 정신적으로 무기력한 우울감을 느낄 일이 확률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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