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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록/2022 여행: 유럽

벨기에 여행: 모다브 성 Château de Modave, 유럽에서 운전하기

Writer Hana 2022. 7. 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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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국경 건너 벨기에까지 유럽에서 처음으로 장거리 운전을 했다. 토요일이고 날씨도 좋아서 장거리 운전해보려고 나갔는데 뜻밖에 너무나도 멋진 장소를 발견했다. 바로 모다브 성이다. 운전도 하고, 아름다운 성도 구경하고 멋진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발급받은 운전 면허증과 국제 면허증은 독일에서 최대 6개월까지만 유효하다. 6개월 이상 장기간 머무르며 운전을 하고 싶다면 지역 교통청에 가서 독일 면허증으로 교환해야 한다. 이 면허증으로 유럽 연합 가입국에서 운전을 할 수 있다. 면허증 교환이 모두에게 가능한 일이 아니고 독일에서 지정한 국가만 가능하다. 다행히 우리나라 면허증은 인정이 된다. 멕시코 친구는 독일에서 다시 시험을 보고 면허증을 취득해야 했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문제는 남편의 차가 수동 기어라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2종 보통 면허를 취득했고 아직 독일의 많은 차가 수동 기어를 장착하고 있다. 예전부터 남편이 오토 기어 차로 바꾸자고 했었고, 나는 그때마다 당장 급하지 않은데 왜 자동차에 돈을 써야 하냐며 반대 의견을 냈었다. 하지만 최근에 생각을 바꾸었다. 남편의 의지가 점점 더 확고해지고, 나는 사사건건 남자의 의지를 꺾으려 드는 그런 여자가 아니다. 게다가 언제까지고 미룰 수 없다. 독일에서 운전을 시작해야한다는 생각이 마음 한 켠에 항상 자리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라? 왜 나는 후퇴하고 물러나고 쭈그러드는 쪽으로만 향하고 있었지? 새로운 것, 앞으로 나아가는 것, 아무튼 무언가 되는 방향으로 생각을 해야지. 차를 바꿔 돈이 든다면 돈을 더 벌면 되잖아! 그리고 돈도 돈이지만 사실 운전 다시 하는 게 귀찮았던 거 아니야? 새로운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게 귀찮았던 거 아니냐고.' 생각이 여기까지 온 이상 되돌아갈 수 없다. 드디어 우리 부부는 의기투합해서 형편에 맞고 마음에 드는 차를 찾아냈다. 대리점에서 직접 우리 차를 찾아 시부모님 댁 근처에서 운전을 시작하고, 고속도로를 타고, 동네 운전도 하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갔다. 오늘은 처음으로 국경 건너는 날!

독일 아우토반은 원칙적으로 속도 제한이 없다. 그렇다고 전 구간 무제한은 아니고 공사 구간에서는 당연히 제한이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도로처럼 아무 차선에서나 마음대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추월 차선의 차보다 빨리 달리면 안된다. 이것은 관행이 아니라 법이다. 바깥 차선에서 워낙 느린 차 뒤에 붙게 되면 추월 차선으로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 속도 160, 180 드물게 200 이렇게 달리는 차들이 있는 1차선에 들어가면 신경이 곤두선다. 특히 쾰른에서 아헨 구간의 경사 없이 직선으로 쭉쭉 뻗은 도로에서는 가장 바깥 3차선에서도 130km/h로 달렸다. 처음에는 정신이 없었다. 국경을 건너 벨기에에 들어서면 속도 제한이 있어서 운전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차선을 바꾼 후 깜빡이를 켜는 매너(?)를 흔히 접할 수 있는 한국의 대도시에서 3년 간 매일 운전을 하며 단련된 나지만 무려 4년 만에 다시 운전대를 잡으니 초보인 것처럼 자동으로 바짝 집중하게 된다. 이런 집중력과 몰입감은 운전을 마치고 나서야 의식하게 되는데 참 좋다. 

 

 


 

모다브의 모다브 성 Château de Modave

 

 

모다브 성은 벨기에 리에주 Liège 지역의 모다브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성이다. 

 

모다브 성의 위치

 

 

 

성 입구로 향하는 가로수길

어머, 이렇게 낭만적인 가로수 길이라니.

 

 

 

모다브 성 정면

저녁 6시에 문을 닫는 걸 알고 출발했고, 도착하니 5시 10분이 넘었다. 

 

 

 

모다브 성 정문

친절하고 영어를 잘 하는 직원이 우리를 반겨줬다. 농담조로 안됐지만 이제 곧 문 닫을 시간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어서 들어가서 구경하라고 한다. 입장료는 9유로이고, 오디오 가이드가 포함된 가격이다. 남편은 독일어 오디오 가이드를 나는 영어 가이드를 선택했다. 유명하지도 않고 마을 자체가 상업화와는 거리가 먼 동네인데 이곳에 무려 일본어 가이드가 있다. 일본 사람들은 확실히 세계 구석구석 많이 돌아다니는구나.

 

 

 

모다브 성의 응접실

첫 번째 홀부터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원목 가구와 크림색의 벽 그리고 아름다운 드레스 차림의 여성 그림이 잘 어울린다. 차분한 느낌이다. 무엇보다 날씨가 워낙 좋은 날이라 채광이 예술이다.

 

 

 

태피스트리가 있는 방

첫 번째 응접실이 차분해지고 싶을 때 찾아야 할 장소라면 두 번째 응접실은 에너지와 기운이 필요할 때 좋은 장소다.

 

 

 

다이닝 홀

너무 수수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정도로 화려한 다이닝 홀이다.

 

 

 

다이닝 홀의 식탁

방의 화려함에 비해 식기는 차분하다. 하얀 도자기에 채도가 낮은 붉은 무늬가 있고 식탁보와 세트로 맞췄다. 반달 모양의 사이드 접시가 마음에 든다. 매일 이런 장소에서 식사를 한다면 자극적인 음식보다 담백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모다브 성의 침실

우와 눈이 휘둥그레지는 화려함이다.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더없이 멋진데 실제 이 방에서 잠을 푹 자고 휴식을 취할 수 있을까? 각성 효과를 주는 자극적인 색은 없지만 금빛이 너무나도 화려해서. 

 

 

 

벽이 그림으로 가득하다

화려한 침실을 지나면 이렇게 벽에 그림이 가득한 방을 만나게 된다. 마치 작은 갤러리 같은 곳이다. 풍경화와 꽃 정물화가 집이라는 장소에 잘 어울리고 모다브 성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도 잘 어울린다. 

 

 

 

우아한 갈색 톤의 방

금색보다는 밝은 갈색에 가까워서 차분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방

 

 

 

또다른 침실과 침실의 책상

 

 

 

모다브 성의 침실

이 모다브 성에 있는 침실 중 하나를 골라 사용하라면 나는 단연 이 방이다!

 

 

 

모다브 성의 침실

이 방이 내 방이면 좋겠다. 유력자가 살았던 성이지만 빈티지한 느낌이 물씬 나는 방이다. 

 

 

 

붉은 침실

침실에 어울리지 않기는 하지만 그 옛날 어떻게 이렇게 촌스럽지 않고 우아한 붉은 색을 만들어냈을까?

 

 

 

복도의 코너

구석구석 그냥 지나칠 곳이 없다. 마을에서부터 완만한 경사로를 한참 타고 올라와서 입구쪽에서는 몰랐다. 와서 보니 이 성은 절벽에 지어졌고, 성 안쪽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볼만한다.  

 

 

 

모다브 성의 예배당

건물 밖에서 볼 때는 성의 규모가 아담해보였다. 막상 들어서 보니 내부가 상당히 넓을 뿐 아니라 볼거리가 많아서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많지 않아 하나하나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었다. 대충 둘러보고 나오느라 오디오 가이드마저 제대로 못 들었다. 나중에라도 다시 자세히 보고 싶다는 마음에 사진을 잔뜩 찍어왔다.

 

집에 와서 모다브 성의 공식 홈페이지에 나온 소개글을 찾아봤다. 이 성은 60미터 절벽 위에 지어져서 약 450헥타르의 자연보호 구역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모다브 성은 원래 중세 시대에 처음 지어졌고 이후 17세기에 부분적으로 허물고 재건되었다. 어쩐지 건축 양식이 한 번에 "이거다"라고 표현하기 어렵더라니... 성 내부의 조각 패널, 태피스트리, 커다란 그림 장식 모두 그때 추가된 것이다. 가구들은 18-19세기의 것들이다. 이렇게 듣고 보니 이 성 전체가 왈로니아 지역의 흥미로운 앤틱 가구 역사박물관이나 다름없다. 이런 동화같은 성에서 누가 살았을까? 주인은 여러 번 바뀌었다. 당대 유명 인사들이 거주했는데 한국 사람인 내가 아는 이름은 하나도 없다.

 

작년에 한국에 갔을 때 장식미술 감정사인 이지은 작가의 <귀족의 시대 탐미의 발견>을 주문해서 가져왔는데 아직 읽지 않았다. 이 책을 읽어서 어느 정도 기초 지식이 있는 상태로 갔다면 더 많은 것이 보였을 텐데 아쉬웠다. 이래서 깊이 있는 예술 감상을 위해서는 개인의 느낌뿐 아니라 어느 정보 기본 지식이 필요하다. 균형이 필요한 것이다. 

 

모다브 성은 날씨가 좋은 토요일이었는데도 한적하고 조용했다. 건물 밖에서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몇 백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 환상적이었다. 벨기에 북부 지역은 도시가 많고 산업이 발전했지만 남부는 시골이다. 강이 흐르고, 중간중간 오래된 동화 같은 작은 도시들이 있으며 간혹 그림 같은 협곡도 볼 수 있다. 자연이 그대로 잘 보존된 곳이 많아 여행자에게는 보물 탐험 장소 같은 지역이다. 오늘도 이렇게 벨기에 남부에서 숨겨진 보석 하나를 찾아낸 기분이다. 

 


 

초보 시절: 되돌아보니 은혜를 모르고 있었네?

 

4년 만에 다시 운전대를 잡으며 문득 처음 운전을 시작했을 때가 떠올랐다. 면허증를 딴 동기는 반드시 필요해서였다. 출장이 잦은 업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중요 업무 외에 잡일이 많아서 보조원 한 명을 지원받았다. 그때 보조원이 마흔 중반 넘은 여자분이었다. 그녀는 투자 은행에서 20년 동안 잔뼈가 굵은 프로 직장인이었는데 그만두고 골치 아플 일 없는 파트타임 형식의 일을 찾던 분이었다. 그녀의 가장 큰 특징은 세상 모든 남자의 주목을 받고 싶어 한다는 것과 본인은 다른 여자들과는 다르게 똑똑하고 유능하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했다는 점이다.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 나처럼 큰 조카뻘 되는 어린 나이에다가 신입 애송이 직원의 보조원 노릇을 했으니... 척 봐도 서로 호감을 가지기 어려운 관계였다. 

 

아무튼 막 발행된 따끈따끈한 면허증을 들고 바로 다음날부터 부지런히 운전을 시작했다. 운전은 보조원에게 맡겨도 되지만 그 당시 의욕이 넘쳤던 나는 "어떤 일을 내가 할 줄 아는데 너무 바빠서 누가 도와주는 거랑 진짜 할 줄 몰라서 전적으로 의존하는 건 다르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시절이었다. 초보였기 때문에 아슬아슬한 상황을 여러 번 겪기도 했지만 무탈히 운전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운전을 한지 4개월쯤 되었나? 하루는 보조원 분이 점심 시간에 "오늘 우리 남편 쉬는 날이데 불러서 밥 사달라고 하자."라고 했고 그렇게 그분의 남편을 만났다. 초면이었는데 그분이 웃으며 하시는 말씀이 예전에 왜 와이프가 집에 오면 저녁 7시 8시부터 곯아떨어졌는지 몰랐었다, 도대체 밖에서 무슨 일을 하는 거냐고 물었다 한다. 나는 그 의미를 바로 알아듣고 푸하하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하긴 초보가 운전한다고 설치는데 매일같이 그 옆에 앉아있는 운전 베테랑은 얼마나 불안했겠나. 

 

독일에서 다시 운전대를 잡고 초보 시절의 추억을 떠올려보니! 돈주고 받아야할 연수를 공짜로 장기간 받은 걸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왕초보 운전자 옆에 베테랑이 매일같이 앉아서 과외 선생님처럼 도움을 줬던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유능한 과외 선생님이. 면허 필기시험 준비할 때 배우는 기초적인 규칙 외에 도로에서 실제 운전을 하며 익히게 되는 통상 관행을 차근차근 배우고 팁도 많이 얻었다. T 주차만큼은 나름 나도 선수인데 사실 보조원 분이 종이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쉽게 설명해준 덕에 한 번에 감을 잡았다. 

 

아무튼 눈치 빠르고 민첩할 뿐 아니라 본인의 도덕성에 대해 상당한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던만큼 그녀는 운전도 야무지게 하는 안전주의자였다. 내가 안전제일주의자, 방어운전주의자가 된 데는 그분의 영향이 컸다.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모르지만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 지난 추억에 마음이 즐거웠다. 원래 나란 사람은 지난 일은 웬만해서는 추억으로 기억한다. 시간이 지나면 싫어했던 사람도 안 풀렸던 일도 '아, 그런 사람이 있었지. 아, 그때 그랬지.' 하며 웃고 넘긴다. 그런데 보조원 분을 떠올려보니 그냥 그때 그랬지 정도가 아니라 감사해야 할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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