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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록/2022 여행: 유럽

아일랜드 더블린 여행: 트리니티 컬리지, 아일랜드 국립미술관

Writer Hana 2022. 6. 3.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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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슬비가 내려 우산을 쓰기도 안 쓰기도 애매한 날, 이런 날은 실내에 있는 것이 최고다. 더블린 트리니티 컬리지의 도서관과 아일랜드 국립미술관은 이에 더없이 적합한 장소다. 더블린의 지성과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를 둘러봤다. 

 

 

트리니티 컬리지 Trinity College

 

 

트리니티 컬리지

트리니티 컬리지는 1592년 엘리자베스 1세 시절에 설립되었다. 이 학교의 공식 이름은 'The Provost, Fellows, Foundtion Scholars and the other member of Board, of the College of the Holy and Undivided Trinity of Queen Elizabeth near Dublin'으로 어마어마하게 길다. 공식 문서나 졸업장에 이거 다 새기려면 잉크 많이 필요하겠다.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교, 옥스퍼드 대학교와 자매 대학이라 트리니티 졸업장은 이 두 학교의 졸업장과 동등하게 취급된다. 구글에 보면 국제학생의 학부 등록금이 2018-19년도 기준 18000 유로다. 우리나라 돈으로 무려 2400만 원이라는 건데. 1년인지 1학기 기준인지는 모르겠으나 1년이라고 해도 한 학기에 1200만 원이나 되는 큰돈이다.

 

어릴 적에는 하버드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을 꿈꾼 적이 있다. 특정 학문에 관심이 있어서도 구체적인 꿈이 있어서도 아니고 그저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는 말을 듣고 그랬다. 막연한 환상이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느끼는 것은 나는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여 기술을 닦아야 하는 일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문도 피아노 연주나 스포츠처럼 그런 분야의 일이다. 물론 먹고살아야 하니까 똑같은 것을 무한 반복하는 일이 주어지면 기계처럼 성실하게 하긴 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나에게 잘 맞는 것은 어느 정도 개인의 주관이나 재량이 필요한 일,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일이다. 그런 일을 해야 불타는 의지가 없어도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고 오랫동안 할 수 있다. 그랜드 투어를 운영하며 아직 수익과는 한참 거리가 먼 단계이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앞으로 10년이고 20년이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트리니티 컬리지 건축물

트리니티 컬리지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개인적으로 별로 관심 없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 건축 양식이다. 회색 하늘에 비가 내리는 날이라 그런지 더욱 차가워 보인다. 그런데 왜 신고전주의 양식에 그다지 흥미가 없을까? 건축사 책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신고전주의는 원래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영국의 신고전주의는 18세기 정치적 사회적 상황의 산물이다. 화려한 바로크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조지 1세가 즉위하면서 권력은 휘그당으로 넘어갔다. 휘그당은 중상주의, 합리주의, 산업 기술, 부르주아 등을 기치로 내건 당이었다. 그들이 집권하면서 영국 사회 전반에 효율과 이성을 중시하는 현실주의 바람이 불었다 (참고: 임석재 <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산업 혁명 그리고 쾌락을 죄악시하면서 오히려 음지에서 더 추잡스러웠던 빅토리아 시대로 연결되었다는 것이 전혀 놀랍지 않다. 그러고 보면 무엇이든 적당해야 발전에 도움이 되지 지나치면 어디선가 부작용이 나기 마련이다.

 

이성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에 중점을 두다 보면 감성이 떨어진다. 이성과 합리주의는 우리가 최악의 선택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문제는 우리 인간은 절대로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신은 합리적이고 팩트와 논리에 기반한 결정을 내린다고 주장하며 감성에만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사람도 감성에 대한 반감이라는 '감정'을 근본적으로 깔고 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감정의 동물이다. 감정은 우리가 생각하듯 천박하거나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생존 도구이다. 타인과 잘 어울리는 것처럼 생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져 계속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사회적 동물이기도 하기에 이것을 성숙하게 다듬어야 한다. 이때 이성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한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것이 트리니티 컬리지가 차가워 보이는 이유다. 우중충한 하늘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더 우중충한 회색 벽돌, 모든 것을 자로 잰 듯 정확한 비율을 가진 사각형과 직선의 향연, 곡선은 상대적으로 너무 적다. 게다가 외부 장식 요소를 찾기 어렵다. 미니멀리즘의 훌륭한 예다. 이런 엄숙한 분위기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다 보면 잡생각이 들지 않고 집중하기 좋겠다. 하지만 공부와 연구를 마치고 밤에 자유 시간을 가지면? 억눌린 감정을 풀러 달리는 거지. 반면 더블린 어딘가 요란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이곳에서 평온을 느낄 것이다. 더블린은 트리니티와 템플바가 공존하는 재미있는 도시다.

 

 

 

갈매기가 앉은 자리가... 명당.

갈매기 덕분에 웃었는데 인간에게는 유머가 필요하다. 

 

 

 

도서관 입구

트리니티 컬리지에는 그냥 들어갈 수 있지만 도서관은 입장료 18 유로, 약 24000 원을 내야 한다. 독일에서 더블린까지 왕복 비행기표 값이 26 유로인데 도서관 입장료가 18 유로이다. 비행기 값과 비교하면 웃기지만 도서관 자체만 놓고 본다면 인류의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입장료 지불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트리니티 컬리지 도서관 롱룸

이야~ 이런 어마어마한 서가라니...

 

유럽 대륙에서 봤던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도서관들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이곳은 롱 룸 Long Room이라고 불린다. 65미터에 달하는 길이에 약 20만 권의 도서를 소장하고 있다. 1712년에서 1732년에 지어졌는데 처음에는 1층으로 된 구조물이었다. 1850년대에 서가가 꽉 차서 1860년에 상층부가 확장 건설되었다.

 

 

 

아치형의 천장

책과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꿈같은 장소다.

언젠가 '도서관 탐험'을 주제로 여행을 가볼까?

 

 

 

대리석상

 

 

 

나선형 계단

직원만 들어갈 수 있는 구역

안타깝게도 상층부에는 올라갈 수 없다.

 

 

 

기념품 판매점

이번 더블린 여행 전까지 영국인인 줄 알았던 오스카 와일드. 그는 아일랜드 사람이다. 

 


 

아일랜드 국립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Ireland

 

더블린 시내의 웬만한 장소는 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고 아일랜드 국립미술관도 그렇다. 모든 것이 다 비싼 더블린에서 이곳에는 입장료를 내지 않고 들어갈 수 있다. 인류의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입장료를 지불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뭐 나쁘지 않다. 

 

아일랜드 국립미술관에 대해 사전 공부를 하지는 않았다. 보통 때와 다르게 꼭 무언가를 느끼고 배워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편안하게 감상하자는 마음으로 둘러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미술관 규모가 커서 슬슬 둘러봐도 두 시간은 걸렸고 볼 만한 작품도 많았다. 

 

 

Giovanni Passeri. Party Feasting in a Garden. 1645-1655.

먹고 마시고 떠드는 파티는 즐거운 일인데, 게다가 차림새를 보면 경제력이 없는 사람들도 아닌데.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Frans Snyders. A Banquet Piece. 1620s.

이 그림은 해설을 볼 필요도 없이 한눈에 봐도 플랑드르 화파의 그림이다. 역시나 작가인 Snyders는 플랑드르 화파의 대표 화가인데 그의 스승이 피터 브뤼겔이라고 한다. 그림보다 인상 깊은 것은 Snyders는 무려 300여 점 이상의 그림, 100점 이상의 드로잉을 남긴 다작 화가였다는 점이다.

 

누구나 인생에서 한 두 번쯤 완성도가 높은 성취를 이뤄낼 수 있다. 하지만 롱런하는 것은 아무나 못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나도 꾸준히 그랜드 투어 콘텐츠 만들어낼 거다! 

 

 

 

Remrandt van Rijn and Studio. Lady Holding a Glove. 1632-1633.

절제된 패션이지만 피부를 맑고 화사하게 표현해서 모든 것이 커버된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 자체가 아니라 '얼굴의 피부'다.

 

네덜란드 거장 렘브란트의 이 작품에는 에피소드가 하나 얽혀있다. 이 그림은 1880년 피렌체에서 네덜란드 그림 역대 최고 값으로 경매되었다. 하지만 학자들은 렘브란트의 진품 맞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추정은 이렇다. 렘브란트가 그림을 시작하고 여성의 얼굴 대부분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의 공방에 있는 다른 화가가 그녀의 의상, 왼손과 장갑을 완성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화가가 왼쪽 아랫부분 여성의 오른손과 손목을 감싸는 커프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해설에 계속 'perhaps'가 반복되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완전한 결론에 이른 것은 아니다. 

 

 

 

Jan Mytens. Portrait of a Lady Playing a Lute. 1648.

고급스러운 질감 덕분에 어두운 회색도 우아해 보이는 의상이다. 그림 속 여성이 연주하고 있는 악기는 테오르보 류트 theorbo-lute인데 17세기 중반에 유행한 현악기다. 그림에서 악기는 일반적으로 사랑을 의미하는데, 류트는 화합의 의미가 있어서 기혼자가 등장하는 그림에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The Fleetwood Cabinet

집에 가져가고 싶은 장식장

 

 

 

Claude Lorrain. Juno Confiding Io to the Care of Argus. 1660.

오비디우스의 <변신> 중 한 명을 그린 것이다. 제우스 신이 이오 Io를 유혹하는데 아내인 헤라 여신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이오를 하얀 암소로 변신시켰다. 하지만 똑똑한 헤라는 속지 않았고 제우스에게 그 암소를 선물로 요구했다. 암소를 주지 않으면 의심을 받을까 봐 제우스는 암소를 헤라에게 주고 말았다. 헤라는 머리에 백 개의 눈이 달린 괴물 아르고스에게 암소 (이오)의 감시를 맡겼다. 바로 그 장면을 그린 것인데 아르고스는 양치기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불러 사태 해결을 명령한다. 헤르메스는 인간 양치기로 변신하여 황홀한 피리 소리로 아르고스를 매혹시키고 그가 잠든 틈을 타 물리치고 이오를 구출하게 된다. 제목에 걸맞게 참 다양한 '변신'을 보여준다.

 

 

 

Simon Vouet. The Four Season. 1644-1645.

프랑스 사람인 시몽 부에는 이탈리아에서 무로 15년 간 바로크 화풍을 갈고닦았고 이후 프랑스로 돌아와 루이 13세의 수석 화가가 된 인물이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신을 계절에 비유하여 나타냈다. 가운데에 있는 남자는 아프로디테의 연인이었던 미소년 아도니로 겨울을 상징한다. 오른쪽에서 아도니스와 부드러운 눈길을 주고받는 플로라 여신은 봄을 상징한다. 아도니스 등 뒤에 있는 로마 신화 속 농경의 여신 세레스는 여름을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그림 아래쪽 가을을 의미하는 디오니소스 신은 어린아이의 모습이지만 포도관을 쓰고 있다. 그는 로마 신화 속 바쿠스이기도 하다.

 

 

 

Angelica Kauffman. The Ely Family. 1771.

스위스의 여성 화가 앙겔리카 카우프만의 작품

 

 

 

Thomas Hudson. Diana, Countess of Mountrath.1746.

백작 부인이 누리는 부를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그녀는 드레스 장식뿐 아니라 귀걸이, 머리 장식까지 진주로 치장했는데 진주만큼 여성을 우아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아이템도 없다. 화려한 복식과는 거리가 먼 21세기 현재 면 셔츠에 청바지 차림은 더없이 흔하다. 하지만 여기에 진주 귀걸이만 착용해도 분위기가 180도 달라진다. 추가로 붉은 립스틱만 더해지면 바로 파티에 갈 수 있다.

 

 

 

Giovanni Pellegrini. Bathsheba. c.1708-1711.

성경 속 인물 밧세바

 

 

 

Jean-Simeon Chardin. Les Tours de Cartes. 1735.

카드 게임에 열중하는 모습

 

 

 

Jean-Marc Nattier. Charlotta Fredrika Sparre. 1741.

스웨덴 귀족 여성을 그린 그림인데 제목을 보기 전에는 신화 속에 등장한 여신을 그린 줄 알았다. 실제 이렇게 아름다웠을까? 아니면 화가가 최선을 다해 편집 (?)을 했을까? 궁금하다. 

 

 

 

Jean-Honore Fragonard. Venus and Cupid. c.1755

서양화에서 비너스 (아프로디테) 보다 더 인기 있는 그림의 주제가 있을까?

 

 

 

The Grand Gallery

이곳이 바로 아일랜드 국립미술관의 포토존!

 

 

 

아일랜드 국립미술관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예상보다 훌륭한 미술관이다. 그림 옆에 달랑 화가, 그림 제목, 제작 연도 그리고 기부자 이름만 나타내는 보통의 유럽 갤러리들과 달리 그림에 대한 간단한 해설이 곁들여져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서양 미술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지식만 있어도 즐거운 관람이 가능하다. 트리니티 컬리지만큼이나 더블린에서 가볼 만한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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