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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 카자흐스탄 여행 02 <카자흐스탄, 에키바스투즈>

Writer Hana 2021. 5. 31.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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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4일 토요일

 

어제 아침 여섯 시에는 옴스크 공항에, 오늘 아침 여섯 시에는 카자흐스탄 에키바스투즈의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에키바스투즈 시외버스 터미널

 

에키바스투즈 시외버스 터미널

 

우리가 타고 온 고속버스의 기사님한테 시내 가는 방향을 물어보다 대화를 시작했다. 대화 중에 옴스크 돌아가는 버스표 미리 사는 게 낫다는 말을 듣고 바로 예매하는 중.

 

에키바스투즈 Ekibastuz는 카자흐스탄 북동부 파블로다르 주에 있는 도시다. 이곳은 러시아 국경에서 멀지 않고, 카자흐스탄 자체가 구 소련연방에 속했던 곳이라 아직도 많은 주민들이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카자흐스탄 자체가 바다에 접하지 않은 내륙에 위치해 있어서 대륙성 기후를 띤다. 즉 여름에는 엄청나게 덥고, 겨울에는 엄청나게 춥다는 뜻. 이 에키바스투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노천 open-cast 석탄 광산으로 유명하다. 

 

지난밤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러시아 국경 출입국 사무소에서도, 카자흐스탄 국경 출입국 사무소에서도 내 차례에 유독 시간이 오래 걸렸다. 러시아 또는 카자흐스탄 국적이 아니고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흔히 드나드는 곳도 아니니 당연하겠지만 하나같이 내 여권을 받아 들고 무의미하게 페이지 넘기기를 반복했다. 나는 바른 자세로 서서 느긋하게 기다렸다. 속으로 '비자 때문에 그런가? 아 페이지만 넘기면 뭘 아나요?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이 무비자 입국 허가되는지 빨리 규정을 찾아야지?'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나중에 남자 친구 설명을 듣고 보니 사무소 근무하는 사람들이 여권의 영어 정보를 전혀 읽을 줄 몰라서 문제가 됐던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러시아(90일)와 카자흐스탄(잘 기억나지 않음)에 무비자로 입국 가능하기 때문에 비자마저 없어서 더욱 내 정보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러시아어로 계속해서 여권의 '러시아어 번역본'이 있는지 물어봤다고 한다. 게다가 Republic of Korea가 남한인지 북한인지 모른다. 남자 친구가 열심히 러시아로 이것저것 설명해서 무사히 도장받아 통과하긴 했다.

 

나는 우리나라, 중국, 일본, 대만이 속한 동아시아권 출신이지만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대한민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미국의 기준이 곧 국제 기준임으로 알고 자랐다. 미국식 영어가 국제 공용어, 미국 달러가 국제 기축 통화, 대학생 때도 대부분의 정치 이론과 사상은 미국에서 건너온 것을 기본으로 배웠다. 하지만 이곳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세상의 중심은 러시아다. 신선한 충격이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었어!

 

 

 

 

새벽의 에키바스투즈 길거리

 

 

시내가 버스 터미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길거리 풍경을 감상하면서 호텔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우리가 예약한 호텔에 도착했다. 에키바스투즈 시내에서 가장 좋은 호텔인 Home Parq. 원래 오후 2시부터 체크인인데 빈 방이 있어서 아침부터 들어갈 수 있었다. 일단 들어가자마자 씻고 완전히 곯아떨어졌다. 지난 이틀 밤을 비행기에서, 버스에서 보냈더니 완전히 지쳤다. 

 

점심시간 즈음 일어나서 나가려고 준비를 했다. 하루 만에 와이파이 연결했는데 재시험 결과 나왔다는 동기의 메시지를 봤다.

 

두근두근... 결과는 2.7!!! 우와!!! 공부를 할 때는 내가 생각해도 열심히 했기 때문에 2.0보다 높은 성적을 목표로 했고, 농담처럼 동기들한테 나 이러고도 120점 못 받으면 돌머리 인증한다고 했다. 하지만 시험 당일 그냥 통과만 하면 다행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2.7은 정말 기대 이상의 성과다. 물론 1점대의 높은 점수를 받은 다른 과목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 정도 결과면 만족한다. 

 

사실 방법론과 통계가 내 머리로 이해 불가능한 그런 과목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 이 과목은 F 제도가 있고 실제 적지 않은 학생이 재시험을 본다는 과목 소개를 학기초부터 여기저기서 들었다. 문제는 그로 인해 쓸데없는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토마스 선생님이 통계를 정말 이 이상 깔끔할 수 없이 자료도 잘 만들고 잘 가르쳤다. 내가 게을러서 열심히 안 했고 안 했으니 어렵다고 생각한 것이다. 방법론은 키르스틴이 워낙 깐깐한 여자라 괜히 어렵게 생각했지만 이미 여러 차례 강조한 내용이 시험에 나왔고, 쇠렌의 연구 테크닉 과목은 경제학에 가까운 과목인데 이미 한국에서 배워서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첫 시험에 시간을 확인 안 하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러서 연구 테크닉 파트의 서술 문제를 거의 못 썼지만 사실 시간 확인했어도 그 당시의 상태로는 4.0 정도로 겨우 통과했을 것이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대하는 마음 가짐이 수행과 성과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겠다. '이거 해야 돼? 그럼 하지 뭐' 이렇게 쿨한 마음으로 했으면 될 것을 쓸데없이 겁부터 먹었던 것이다. 겁먹은 토끼처럼 

 

니코는 2.0을 받았다고 한다. 와, 내 친구지만 정말 자랑스럽다!

 

 

 

 

 

카푸치노

 

성적 확인하고 기분 좋게 오후 두 시쯤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일단 호텔 건너에 있는 쇼핑몰로 갔다. 그리고 어떤 예쁜 카페에 들었다. 카자흐스탄 전통 음식으로 보이는 빵과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꿀맛이야!

 

 

 

 

이 장식품을 보니 정말 카자흐스탄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이 문자는 러시아어가 아니고 카자흐스탄어인데 남자 친구도 카자흐스탄어는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이 훌륭한 커피숍의 이름은 아직도 모른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난 독일인, 그 분의 생가 방문

 

태어나서 다섯 살 때까지 자라고 희미하나마 기억을 갖고 있는 고향 마을에 오면 어떤 기분일까? 그러고 보니 문득 나도 네 살 때의 우리 집이었던 휘문동이 생각나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시간은 네 살 때이다.

 

 

 

 

 

3월 말인데도 아직 춥고 황량한 분위기다.

 

 

 

 

 

 

 

 

남자 친구 가족이 살던 아파트 단지 옆에 엄청나게 큰 공원이 있다. 겨울이라 황량하지만 알록달록한 놀이기구와 예쁜 장식을 보니 여름에는 활기찬 분위기일 거라 예상된다. 

 

 

 

 

에키바스투즈의 쇼핑몰

 

지도 없이, 계획 없이 걷다가 발견한 쇼핑몰.

 

 

쇼핑몰 내부의 모습

 

쇼핑몰 내부의 장식

 

쇼핑몰 한 번 둘러보고 나와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에키바스투즈 시내 보도블럭

 

걷다가 문득 바닥을 내려다봤는데 보도블록이 예쁘게 생겼네?

 

 

 

 

에키바스투즈에서 가장 좋은 호텔 Home Parq

 

 

늦은 저녁 호텔로 돌아가서 쉬다가 저녁 먹으러 나가기로 했다.

호텔 건너편에 쇼핑몰 하나와 커다란 마트가 하나 있는데 쇼핑몰 1층에 Julia라는 레스토랑이 있다. 구글맵으로 검색해보고 나갔는데 간판이 영어로 되어 있어서 찾기 쉬웠다.

 

 

 

 

Julia의 피자

 

친절한 주인아주머니의 설명을 듣고 고른 피자.

 

한 번에 네 가지 맛을 즐길 수 있는 피자라니, 아이디어 좋은데? 맛도 수준급이다. 우리는 살라미 + 양송이버섯 + 토마토 + 치킨 피자를 주문했다. 이 중 살라미가 제일 맛있었다.

 

내 고향에 온 것처럼 같이 들뜬 마음으로 오늘 오후 시내 구경 잘하고 피자 맛있게 먹고 호텔로 돌아왔다. 카자흐스탄에서의 짧은 여행 중 첫날이 이렇게 평온하게 저물어간다.

 

 


2018년 3월 25일 일요일

 

 

 

아홉 시쯤 아침 먹으러 식당에 갔다.

깜빡하고 사진을 찍지 않았는데 오늘의 메뉴는 에그 스크램블과 블린이었다. 오렌지 주스와 커피도 주문했다. 러시아 전통 팬케이크인 블린은 역시나 맛있었는데 에그 스크램블에 기름이 너무 많아서 느끼했다.

 

 

 

 

 

오늘 광산 투어 가기로 했는데 눈이 엄청 내린다.

 

 

환전을 해야 해서 어제 들렀던 호텔 근처 환전 사무소에 다녀왔다. 작은 사무실에 환전 직원 한 명과 보안 경찰 한 명이 근무하는데 뭔가 살벌한 분위기다. 다시 호텔 룸으로 돌아왔는데 프런트에서 전화가 왔다. 원래 세 시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10분 후 출발할 수 있는지 물어보길래 그러자고 했다. 그래서 두 시쯤 출발하게 되었다. 아, 눈이 와도 갈 수는 있구나.

 

호텔 프런트 직원인 이리나와 광산에서 일하는 그녀의 남편 술탄이 차로 우리를 데리러  왔다. 나는 러시아를 하지 못해서 남자 친구의 통역으로 들었는데 오늘 눈이 많이 와서 안개 때문에 광산 전경을 못 볼 수도 있다고 한다. 으잉...

 

 

 

 

 

 

 

술탄의 말대로 오늘 이 광산의 어마어마한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아쉽다. 이리나가 영어로 나한테 여름에 꼭 다시 오라고 했다. 이 곳은 지구 상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지상 광산이라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가장 큰 노천 광산이다. 이 광산이 에키바스투즈와 파블로다르 주 아니 카자흐스탄 전체의 핵심 산업 시설인듯하다.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방문하는데 그때마다 헬기를 타고 이 광산에 온다고 한다. 사실 나는 천연자원에 그다지 관심이 있던 게 아니라 에키바스투즈에 온 김에 따라온 것인데 이렇게 전혀 지식이 없는 지역과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새삼 즐겁다.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herwigphoto/288365172

 

아마 폭설이 아니었다면 이런 광경을 보았을 것이다. 

 

 

원래 7,000 카자흐 텡게를 주기로 했는데 남자 친구가 팁까지 8,000 텡게(약 21,000원쯤 될 듯)를 줬다고 한다. 나는 러시아를 못하지만 그래도 즐거운 투어였다. 그 남자 친구는 이리나 부부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여기서 태어나서 자라고, 지난 2월에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평창 올림픽 등.

 

호텔로 오는 길에 혹시 주변에 카자흐스탄 전통 음식 먹을만한 곳이 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이리나 술탄 부부는 우리를 바로 식당까지 데려다줬다.

 

 

 

 

 

 

카자흐스탄 전통 음식

 

이렇게 전통 밥 요리를 주문했는데 맛이 터키의 아다나 케밥과 아주 비슷했다. 메인 요리도 맛있었는데 특히 카자흐스탄의 전통차가 맛과 향이 좋아서 가져오고 싶을 정도였다.

 

에키바스투즈는 여행자와는 거리가 먼 도시다. 식당 프런트에서 일하는 젊은 여직원이 우리한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보통 내가 여행 가서 현지 사람들에게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는데 나를 찍겠다는 경험은 인도 이후 처음이다.

 

 

 

 

 

식사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도 계속 눈이 펑펑 쏟아진다.

 

 

 

 

결국 이번 여행까지 신고 버리려던 내 낡은 겨울 부츠 밑창이 떨어져 나갔다. 쇼핑몰에 가서 새로 부츠를 17,000 텡게나 주고 샀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5만 원인데 에키바스투즈의 1인당 평균 수입이 월 80,000 텡게가 안된다고 들은 바가 맞다면 엄청나게 비싼 가격이다. 아무튼 독일에 가서도 신을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고 디자인도 무난한 것으로 샀다. 좋은 기념품 산 셈이네.

 

저녁에 호텔에서 쉬고 있는데 다시 프런트에서 전화가 왔다. 잠깐 내려와 달라는 것이었다. 남자 친구가 내려갔다 왔는데 이리나가 우리를 위해 선물을 주려고 부른 것이었다. 와... 카자흐스탄 전통 스타일의 여성용 머리 스카프, 카자흐스탄 냉장고 자석, 그리고 카자스흐탄의 유명한 초콜릿이었다. 우와. 이런 멋진 선물을 주다니 진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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