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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 카자흐스탄 여행 04 <시베리아 횡단열차, 옴스크-모스크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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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 카자흐스탄 여행 04 <시베리아 횡단열차, 옴스크-모스크바>

Writer Hana 2021. 6. 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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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7일 화요일 오후 시베리아 횡단 열차 탑승


 

 

옴스크역 승강장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서 모스크바까지 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우와우와아아!!! 드디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는 순간이 왔다!!! 2013년에 인도 여행 갔을 때, 아그라-바라나시, 바라나시-뉴델리 구간의 야간열차 이후 장거리 기차 여행은 4년 만이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기차 타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비록 일주일이 꼬박 걸리는 블라디보스토크-모스크바 구간은 아니고 2박 3일의 옴스크-모스크바 구간이지만 설렌다.



옴스크에서 탑승했을 때 객실이 텅텅 비어있었다.

 


러시아 공식 철도 사이트에서 남자친구의 아이디로 예약했다.http://eng.rzd.ru/
우리가 예약한 오프닝 클래스는 가장 저렴하다. 한 구역에 창가 쪽 4인, 복도 쪽에 2인 이렇게 총 6명이 사용하게 되어있다. 같은 클래스지만 창가 쪽보다 복도 쪽이 가격이 더 저렴하다. 복도 쪽의 침대 폭은 약간 좁지만 나는 키도 작고 날씬하지 않지만 골격이 크지 않기 때문에 전혀 문제없었다. 원래 우리 둘 다 위층 침대로 예매하려고 했는데 결제하고 보니 남자 친구는 아래층 침대로 예매했다.

각 객차마다 담당 승무원이 두 명씩 있고, 교대 근무를 한다. 탑승 시 이티켓과 여권을 보여주면 승무원이 이름이 맞는지 확인한다. 짐은 맨 위 선반이나 아래층 침대 밑 공간에 둘 수 있다. 뜨거운 물은 언제든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보온병이나 컵은 필수이고, 기차 내에서 간단한 식음료를 파는데 비싸다. 기차역마다 승강장에 매점이 있긴 한데 결론적으로 비싼 건 마찬가지다.

깨끗하게 세탁된 베개 커버와 하얀 시트 두 장이 들어있는 침구 커버 세트를 승무원이 가져다주면 내 침대는 내가 세팅한다. 담요를 시트로 둘러 사용하면 되는데, 기차 안은 충분히 따뜻해서 담요까지는 필요 없고 시트만 덮고 자도 전혀 춥지 않다.

가장 중요한 화장실. 결론적으로 생각보다 괜찮았다. 최악의 화장실을 상상하고 불편해도 이틀만 참겠다고 각오를 했는데 최악을 가정해서 그런지 나름대로 괜찮았다. 러시아-카자흐스탄 국경 건널 때 쉬던 휴게소의, 그야말로 옛날 우리 할머니 댁의 고전(?) 화장실과 똑같은 뒷간에 비하면 이건 더 바랄 게 없는 현대식이지. 게다가 오물이 선로에 떨어지는 구형 변기도 아니라 대도시 근처라고 해서 화장실 사용이 금지되는 일은 없다. 승무원이 열심히 관리를 하기 때문인지 냄새가 나지도 않는다. 다만 수돗물이 정말 찔끔찔끔 나오기 때문에 그 물로 손을 씻는 일 이외 무언가를 하기는 어렵다. 이미 남자 친구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고, 우리는 생수를 잔뜩 사서 기차에 탔다. 그 물로 양치하고 세수를 했다.



 

첫 식사는 새우탕면


사람이 거의 없이 한적인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먹는 새우탕 컵라면이야말로 지구 상에서 제일 맛있고 로맨틱한 식사다. 아, 너무 행복해.



어쩌다 러시아 생수 컬렉션이 되었는지. ㅎㅎ&nbsp;


진짜 우리만의 시간. 아니, 너만의 시간. 나만의 시간. 함께 앉아서 각자의 자유를 즐기는 시간이다. 열심히 마시고, 열심히 읽고, 열심히 끄적거리고, 열심히 졸고... 출발할 때부터 기차에서 일주일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8년 3월 28일 수요일


지난밤에 사람이 거의 없어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잠들었다. 그런데 몇 시였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열 살 전후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우리 칸에 들이닥쳤다. 그 소리에 잠깐 깼다가 다시 잠들고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났다. 왁자지껄한 아침이었다. 어렸을 때는 사람들 많이 모이는 곳과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를 좋아했는데 어른이 되고서는 변했다. 개인적인 공간이나 여행에서는 붐비는 것보다 조용하고 한적한 곳과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아무튼 어린이들은 참 부지런하긴 하다. 다들 일찍 일어나서 세수하고 이 닦고 이부자리까지 정리했다. 그리고 삼삼오오 무리 지어 신나게 떠들고 놀았다. 그런 모습이 나 어릴 적 생각나게 해서 피식 웃기도 했다. 그래, 어린이들이 조용한 게 이상한 거지. 어렸을 때 이종사촌끼리 모이면 어른들한테 조용히 놀으라는 주의를 얼마나 들었는지 모른다.

아침 8시쯤 Kyngyr역 정차를 앞두고 아이들이 내릴 준비를 했다. 아, 다시 조용해지겠구나.

어린이들이 내리고 난 후 객실은 평온 그 자체였다. 나는 우리 침대 옆 칸 빈자리에 혼자 앉아서 밖을 바라보았다. 정말 눈을 뗄 수가 없는 풍경의 연속이다. 너무나 환상적인 겨울왕국이다. 따뜻한 기차에 편안하게 앉아서 창밖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는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고 이번 여행이 끝나도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3월의 시베리아는 겨울 왕국이다.





승강장에는 이렇게 매점이 있어서 기본적인 식량과 간식 조달이 가능한데 비싸다. 가능하면 기차에 타기 전에 미리 장을 봐서 가져가는 게 낫다.



 


역에 따라 20분 이상 정차하는 곳도 있고, 1-2분만 정차하는 곳도 있다. 우리는 바깥공기를 쐬려고 오래 정차하는 역에서는 바깥에 나갔다. 기차 안에 여정표가 있어서 몇 시에 무슨 역에 도착하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기차에서 정차역에 대한 안내 방송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스케줄표를 체크하고 내릴 준비를 미리 해야 한다. 우리처럼 목적지가 종착역이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지만 개인 짐 정리와 사용한 자리 정리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미리 확인하고 준비를 하는 게 낫다.



 

 

어느 역이었더라?!

 

 

 

햇빛에 반짝이는 눈 내린 풍경도 너무 아름답다. 동화 속에 있는 듯한 기분.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내가 사용한 자리


<작가 수업> 책을 들고 왔으나 바깥 풍경을 보고 또 봐도 질리지가 않아서, 오히려 시간이 가는 게 아까워서 책을 읽을 수가 없다. 책은 집에서도 읽을 수 있지만 기차에서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당연히 낮에는 창밖 풍경을 감상하고 어두운 밤에 조금씩 읽는 것으로!



 

객실 내부 모습

 

 

 

 




2018년 3월 29일 목요일



햇살이 밝다. 점점 모스크바에 가까워져간다.



모스크바 근처에 오니 많은 다차가 보였다. 다차는 러시아식 교외 별장인데 우리도 여기에 다차 하나 있어서 여름마다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모스크바 도착


모스크바 야로슬라브스키 역 Yaroslavskiy Station에 도착했다. 시베리아, 몽골, 중국으로 가는 기차는 이 야로슬라브스키 역에서 출발하고 이곳에 최종 도착한다. 3년 만에 오는 모스크바. 물론 며칠 전 옴스크로 향할 때 모스크바의 도모도데보 공항을 거치긴 했지만 공항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었다.



 

 

야로슬라브스키 역 앞


저 소련 스타일 건물을 보니 정말 모스크바에 도착한 실감이 난다.
어쩜 하늘도 이리 파랗고 맑을까!

 

 

 

모스크바



3년 전 처음 모스크바에 왔을 때처럼 햇살이 쨍쨍하다. 그리고 유럽의 겨울이 차분하고 조용한 반면 역시 러시아는 변함없이 역동적이고 힘찬 분위기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기차 타기까지 세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역 밖으로 나와서 일단 음식점을 찾아봤다. 그런데 오피스 빌딩만 있어서 조금 걷다가 다시 역 근처로 와서 러시아 음식점에 들어갔다. 중앙아시아식 볶음밥 요리를 먹고 기네스 생맥주 한 잔 마셨다. 겨울 모스크바에서 마시는 아일랜드 맥주가 이렇게나 맛있다니???!!!

두바이 공항에 갈 때마다 와이파이 때문에 찾게 되는 Costa coffee가 이곳에도 있다. 들어가서 전화기 충전하고 커피 한 잔 마셨다.



 

다시 기차역으로

 

러시아의 고속열차 쌉싼 сапсан

 


나는 이 기차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간 다음 풀코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돌아가고, 남자 친구는 이 곳 모스크바에서 바로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돌아간다.

 

 

 

 

쌉싼 객실 모습



객실 내부는 깔끔하고 좌석도 편하고 넓다. 다만 충전 콘센트가 없어서 아쉬웠다. 이 기차의 놀라운 점은 정말 한 구간도 예외 없이 초고속 스피드로 달린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주택가 사람들이 소음 때문에 항의를 해서 고속열차 ICE와 IC가 전구간을 최고속력으로 달리지는 않고, 주택가를 통과할 때는 속도를 줄인다.

기차 내부에는 식당칸이 있어서 음식과 음료를 주문할 수 있다. 비행기 티켓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3시간밖에 걸리지 않아서 기차를 선택했다. 추가 비용 없이 좌석도 지정할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부터 시작해서 이번 2018년 3월의 여행 일정이 당초 계획과 달리 많이 변경되었고 러시아에 이렇게 여러 번 들락날락할 줄 몰랐다 정말... 여권에 러시아 도장이 몇 개야. 최초로 예약한 뒤셀-상트 왕복 비행기표와 모스크바-상트 기차표는 건재(?)하기에 이렇게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다시 혼자가 되었다. 내가 기차에 탈 때까지 건너편에서 나를 바라보는 남자 친구를 두고 혼자 상트 가기가 싫었다. 내일 독일에 도착하면 다시 만나는데도 예전 롱디 시절 독일에 두 번째로 놀러 왔다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폭풍 눈물을 쏟고 한국으로 갔던 때가 생각나서 괜히 찡했다.



다시 찾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풀코보 공항. 반갑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애매해서 새벽에 공항에 늦게 도착할까 봐 걱정이 됐다. 그래서 오늘은 애초에 공항에서 하루 노숙하길 했다. 방콕, 두바이, 모스크바에 이은 네 번째 공항 노숙이다. 풀코보 2층에는 노숙에 최적화된 벤치가 있다. 팔걸이가 없어서 누워서 잘 수 있다!!! 공항이기 때문에 수시로 나오는 안내 방송은 어쩔 수 없지만 새벽에 공항 오느라 헐레벌떡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2018년 3월 30일 금요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아침이 밝아왔다.
5시쯤 일어나서 이 닦고 세수하고 카운터에 가서 체크인을 일찌감치 마쳤다.

 

 

 

 



이른 아침이라 공항 내부가 한산하다. 이 여유로운 분위기 정말 좋다. 마치 2014년에 처음으로 터키 여행 갈 때 두바이에 새벽에 도착해서 벤치에서 한숨 자고 일어난 후 이스탄불행 비행기 기다릴 때의 설렘. 딱 그 느낌이다. 지금은 여행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지만 잘 놀고, 구경 잘해서 아쉬움은 별로 없다.

 

 

 

To Airplane

평범한 보딩 사진인데 이번 러시아-카자흐스탄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왜 좋은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사진 보면 무언가 막 설레기도 하고...


막상 보딩 하러 가는 길에는 기분이 묘했다. 저기 "To Airplane"은 나에게 "방학 끝, 학기 시작"과 동일어이다. 그런데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는 아쉬움과 무언가 어려운 목표를 세워 노력해서 달성했을 때의 성취감이 이 순간 한 번에 느껴졌다. 알 수 없지만 갑자기 피곤이 확 가시고 에너지가 넘친다.



 

안녕 상트페테르부르크 또 보자.




집으로!

 



다시 타게 된 로시야 에어라인. 아에로플로트, 시베리안 에어라인 S7, 포베다 그리고 로시야 항공. 내가 타 본 러시아 항공사 중 로시야 항공이 최고다. 비행기 탈 때부터 밝은 미소로 "good morning" 인사를 건네는 승무원을 보니 기분이 좋다. 기내식도 적당한 양과 적당한 맛. 커피도 이 정도면 훌륭하다. 오늘은 지난 3월 초 뒤셀도르프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오던 비행보다 더 한산하고 여유로웠다.

약 두 시간 반의 비행이 짧게 느껴졌다. 잊지 못할 행복한 여행이었다. 일정이 틀어져서 중간에 독일에 다시 갔다가 왔지만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가치를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멋진 인연을 만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든든했다. 낭만적이고 평화로웠던 겨울 기차 여행은 포근했고, 관광지와는 거리가 먼 낯설고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좀 더 넓혀줬다. 내가 아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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