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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록/2022 여행: 유럽

아일랜드 더블린 여행: 라이언에어, 아일랜드에 대하여

Writer Hana 2022. 5. 19.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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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대표 저가항공사인 라이언에어 Ryanair를 타고 더블린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저렴한 가격으로 유럽 어디든 갈 수 있어서 이용하기 좋은 항공사다. 아일랜드 여행을 가기 전에 외교관이 쓴 <아일랜드 그곳이 알고 싶다>를 읽었다. 저항의 역사, 정신적 구심점인 가톨릭 그리고 이민의 역사를 간단히 정리했다. 아일랜드인들은 오랜 억압의 역사 속에서 살길을 찾아 밖으로 나가 이민 성공 신화를 썼다. 생명력 넘치는 이 부분이 매력적인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를 떠오르게 한다.   

 

 

2022년 3월 더블린 여행

 

 

라이언에어 Ryanair는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저가항공사이다. 1984년에 아일랜드에서 창립되어 본사는 더블린에 있다. 현재는 취항지가 무려 225군데에 이르고 보잉 737-800 기종을 400대 이상 운영 중이다. 라이언에어의 장점은 단연 저렴한 가격이다.  

 

원래 더블린에는 작년부터 한번 가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독일에서 더블린 왕복 티켓이 겨우 26유로, 그러니까 약 3만원인 것을 보고 고민 없이 결제했다. 물론 아무런 서비스가 포함되지 않은 순수 좌석 값과 세금이다. 좌석 아래에 둘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가방은 허용되지만 기내용이라도 캐리어를 가지고 가거나 일정 사이즈 이상의 짐을 가져가려면 그때부터 표값이 확 올라간다. 이번에는 2박 3일 일정이라 짐이 적어서 기본만 있으면 된다.   

 

 

쾰른 본 공항

공항이 텅텅 비었다. B구역에서 보딩 패스를 받고 여권 심사를 마친 후 에스프레소 한 잔 마셨다. 여권 심사... 그렇다. 아일랜드는 쉥겐존이 아니다. 출발할 때까지도 이걸 모르고 있었네?

 

텅 빈 공항에 우리가 탑승할 게이트에만 사람이 많은 것으로 보아 거의 만석이지 싶었다. 기본표를 구입하면 좌석을 선택할 수 없다. 우리는 일행이라 같이 웹 체크인을 하는데도 랜덤 지정이 적용돼서 결국 따로 앉게 되었다. 단거리 비행이라 상관없지만. 다행히 우리 둘 다 가운데 좌석은 피하고 통로 좌석 당첨이다. 

 

 

 

보딩 시작

 

 

 

라이언에어 보잉 737-800 여객기

저 꼬리에 있는 노란 하프 모양의 로고가 마음에 든다. 이 하프 문양은 아일랜드의 대표 맥주 브랜드인 기네스에서도 사용한다. 너도나도 다 사용하는 아이리쉬 하프는 13세기부터 아일랜드 주권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그야말로 아일랜드 그 자체를 의미하는 로고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하프가 아일랜드를 상징하게 된 것일까? 

 

1185년 4월 노르만이 아일랜드를 침략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영국의 존 왕자가 이곳을 방문했다. 왕실 사제이자 역사가인 Gerald of Wales를 대동한 그때의 방문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존은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들은 (아일랜드인)은 야만스럽다. 거적데기 같은 옷을 입고, 머리와 수염은 지저분하며 예의가 없다. 그리고 게으르고 야만스럽다." 

 

이때 아일랜드인들이 보여줄 수 있는 문명화(?)된 기술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하프 연주 실력이었다. 그리고 존 왕자 역시 그들은 야만적인 사람들이지만 선진 문화라 여겨지는 하프 연주 실력만큼은 훌륭하다고 인정했다. 이를 통해 하프가 아일랜드의 상징이 되었다. 꾸준히 여러 사람이나 단체에 의해 아일랜드 민족주의 상징물로 사용되었다. 

 

 

 

라이언에어 객실. 더블린에서 쾰른으로.

저가항공사인데도 좌석 간격이 이렇게 충분하다.

 

여행 마치고 집에 올 때는 창가석에 앉았다. 체크인할 때 랜덤 지정된 좌석이 B열인 걸 보니 실망스럽게도 중간 좌석이다. 그런데 막상 보딩 해보니 내가 앉은 열의 창가석과 통로석 다 비었고 나 혼자다!!! 전체가 만석인 것은 아니지만 내 뒷줄은 세 명이 꽉 찼고, 다른 줄도 보면 최소 둘 이상은 앉아있는데. 오예! 그러고 보면 어디에서 출발하든 독일에 들어갈 때 항상 자리운이 좋다. 이번에도 창가석에 앉아 바깥 구경하며 쾌적한 비행을 할 수 있었다.

 

 

 

아일랜드 더블린 공항

더블린 공항에 도착했다. 

파란 하늘이 보인다!

 

그 입국 심사관 질문이 많기도 하다. 여기 거주하는지부터 시작해서 어디에 머물 거냐, 여기에서 뭐할 거냐, 독일에서는 뭐하냐 등등. 다 대답하고 도장받고 밖으로 나왔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 편도 티켓은 1인당 8유로이다. 하지만 왕복 티켓은 10유로이고 우리는 더블린에서 겨우 이틀만 머물기 때문에 왕복 티켓을 사서 시내로 향했다. 티켓을 사는데 우리가 머물 호텔의 주소를 보고 어느 정류장에서 내려야 하는지까지 친절하게 알려줬다. 유머러스한 운전기사가 승객들 마스크 잘 썼는지, 안전 벨트 맸는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출발했다. 시내까지는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더블린 시내

리피강 River Liffey이 더블린 시내를 흐른다.

 

더블린의 첫인상은 평범한 현대적인 도시라는 것이었다. 여행 전에는 아일랜드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영국과 원수 같은 관계이고, 경제난을 이기고 성장해서 셀틱 호랑이라 불리며 1인당 평균소득이 세계 톱 10안에 든다는 정도.

 

출발 전에 우리나라 외교관인 곽삼주가 쓴 <아일랜드 그곳이 알고 싶다>를 교보문고 e북으로 주문해서 앞부분만 읽어봤다. 외교관이 쓴 아일랜드 개관서라 여행에 필요한 정보보다는 아일랜드라는 나라를 큰 그림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다. 이 책은 아일랜드의 역사와 정신세계, 현재의 정치·경제·사회에 대한 것을 다룬다. 후반부는 외교관이 쓴 책답게 우리나와의 관계 그리고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을 논하는데 읽지는 않았다. 겨우 2박 3일 머물며 얼마나 경험을 하겠냐마는 아예 모르고 가는 것보다는 낫고 이번 기회에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도 좋은 일이다. 

 

 

 

곽삼주 <아일랜드 그곳이 알고 싶다>

출처: 교보 e북

 

 

아일랜드의 역사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끊임없는 외침에 대한 저항, 가톨릭 그리고 이민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1. 외침에 대한 저항의 역사

 

기나 긴 역사에서 바이킹, 노르만의 침략에 시달렸는데 하이라이트는 영국의 지배와 그로 인한 갈등이다. 투쟁을 통해 자치권을 얻기도 하고 영국에 완전히 합방되기도 하다가 1921년이 되어서야 아일랜드 자유국이 출범했다. 1937년 아일랜드 신헌법이 제정되고 최종적으로 1949년에 영연방에서 탈퇴하여 아일랜드 공화국이 탄생했다. 아일랜드는 유럽 연합의 회원국이지만 NATO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이렇게 독립을 이루고도 북아일랜드에서 분쟁이 이어졌고 1972년에 영국군이 아일랜드의 시위대에 발포하여 13명이 사망한 '피의 일요일' 같은 비극적인 사건도 발생했다. 1998년이 되어서야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이 체결되었고 평화 분위기가 흐르면서 2011년 영국의 국가 원수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아일랜드를 방문했다. 

 

아일랜드는 권력의 핵심이 총리에게 있는 의원 내각제 체제를 가지고 있다. 아일랜드의 두 양대 정당은 공화당 (Fianna Fail, 게일어로 '운명의 전사')과 통일당 (Fine Gael, 게일어로 '아일랜드 민족')인데 모두 신페인당 (Sinn Fein, 게일어로 '우리 자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공화당과 통일당이 다른 소수 정당과의 연정으로 번갈아가며 집권하고, 신페인당이 제1야당의 역할을 해왔다. 재미있는 점은 아일랜드 정당들이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들처럼 '보수' '진보'같은 이념 스펙트럼에 따른 좌우 구별이 아니라 1920년대에 독립이라는 목표를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 즉 방법론에 따른 입장차가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2. 아일랜드인의 구심점 가톨릭과 그들의 사회적 특성

 

아일랜드인들에게 정신적 구심적 역할을 한 것은 종교인 가톨릭이고, 특히 성인 패트릭이 그 중심에 있다. 패트릭은 원래 영국인인데 16살에 인신매매단에 의해 아일랜드에 노예로 팔려왔다가 영국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영국에 도착 후 꿈속에서 신의 계시를 받고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방 군주와 아일랜드 사람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며 포교활동을 했다. 이 패트릭 성인을 묘사한 그림을 보면 아일랜드의 또 다른 상징인 클로버를 들고 있다.  

 

아일랜드인들에게 가톨릭이 구심점이 되었던 이유는 바로 아일랜드를 식민 지배한 영국의 국교가 개신교로 대별되었기 때문이다. 가톨릭은 독립운동의 상징이었고 정비되지 못한 국가의 시스템을 대신해 사회 복지나 교육 등 실질적인 국가 행정 역할을 했다. 지금은 권위가 많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아일랜드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톨릭과 관련하여 박삼주 외교관은 흥미로운 견해를 보여준다. 아일랜드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슷한 점이 있는데 바로 위계질서에 순응적이고 겸손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경우 가톨릭의 영향으로 보인다고 주장한다. 가톨릭 조직 및 성직자의 높은 권위와 문제는 내 탓이라는 원죄론에 따라 그러한 태도를 갖게 되었을 거라고 본다. 목가적이고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추구하며 행복해하는 이들을 직접 보면 우리나라처럼 "소확행"이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트렌드인 것 같다고 말한다.

 

또한 오랜 억압과 차별의 역사 때문인지 아일랜드 국민들은 지배층에 대한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항의와 불만 표출을 통해 잘못된 정책을 시정해 나가는 경우가 드물다. 그저 자기들끼리 구시렁거리는 형태의 간접적 불평 표시에 그치는 모습이 내면화되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논란거리가 생겨도 조직적 시위나 비판적인 담론이 잘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에 오랫동안 약자로 설움을 당해서 국제 사회에서 다른 약자를 지지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보다 팔레스타인에 우호적이다.

 

억압받는 사람들에게는 입담으로 썰을 푸는 것이 한을 달래는 방법 중 하나이다. 그래서 민담과 구전이 발달했다. 나는 이번에 더블린으로 여행가기 전까지 희대의 문제남 오스카 와일드가 Oscar Wilde가 영국인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그는 아일랜드인인데 이 책을 읽어보니 지금 시대에도 '말' 때문에 수없이 구설수에 오를 그 같은 인물이 태어난 배경이 이해가 된다. 

 

 

3. 근성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이민

 

이렇게 놓고 보면 아일랜드도 우리나라처럼 기본적으로는 권위에 순응하고 참다참다 못 참을 수준이 되면 들고일어나는 소위 '에스트로겐 기질'의 나라인 듯 보인다. 하지만 이민의 역사 부분으로 넘어오면 180도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유대인이 아니라 아일랜드인이 사실상 현재 지구 상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진정한 인플루언서다. 현재에도 지구상 슈퍼파워로 인정받는 국가 미국, 그 미국을 움직이는 인물은 대다수 아일랜드 이민자의 후손이다. 

 

아일랜드 이민의 역사는 이민자를 받아들인 스토리가 아닌 '떠남의 스토리'가 핵심이다. 1845년 감자 대기근 때 영국은 무관심과 방치 정책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굶어 죽게 생긴 아일랜드인들이 조국을 등지고 살길을 찾아 떠났다. 2019년 말 기준 국내 인구가 5백만 명이 되지 않은데 비해 재외 거주 동포는 무려 7천만 명으로 본토 인구의 10배가 넘는다. 

 

현재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24명의 미국 대통령이 아일랜드계와 관련이 있다. 이름만 들으면 알법한 유명한 미국 정치인,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권력자 중에 아일랜드와 관련된 인물들이 많다는 것에 놀랄 정도였다. 

 

이주한 모든 아일랜드인이 성공하고 부유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근성과 생존력 하나는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소설 속의 허구 인물이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떠오른다. 우리는 영화에서 스칼렛을 연기한 비비안 리 때문에 스칼렛 오하라가 미인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원작 소설에서 그녀는 전형적인 미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남자들이 벌떼처럼 꼬인다. 활기 넘치는 매력적인 여자이기 때문이다. 오하라 가족은 아일랜드 이민 가정 출신이다. 소설 속에서 자수성가했고 묵직한 돌같은 이미지를 가진 그녀의 아버지도 그렇고 스칼렛도 그렇고 어디에 떨어뜨려놔도 살아남아 잘 먹고 잘 살것 같은 생명력은 보여준다. 전쟁통에 혼자 힘으로 만삭인 멜라니를 데리고 타라로 피난을 가는 모습이나 타라에 도착해서 미친 듯이 무를 뽑아 먹으며 다시는 굶주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모습 등. 전쟁이 끝난 후 사업가로 성공한 독한 모습보다 그런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다. 아무튼 스칼렛 오하라야말로 진짜 아일랜드인들의 거칠고 강하고 생명력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전형이다. 

 

스칼렛 오하라는 실존 인물이 아니지만 실제 있을 법한 생명력 있는 그녀의 동족들은 오늘날에도 미국에서 권력을 잡고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 

 

 

 

더블린의 맑은 날

아직은 바람이 조금 차가운 3월 초의 더블린

 

 

 

 

※ 참고: The Irish Emigration Museum: How the harp became the symbol of Ireland, 곽삼주 <아일랜드 그곳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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