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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프라하 여행 01: 알폰스 무하 박물관 본문

여행기록/2021 여행: 유럽

체코 프라하 여행 01: 알폰스 무하 박물관

Writer Hana 2021. 8. 31.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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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여름 체코의 프라하로 여행을 떠났다. 이번 여행의 주요 목적은 바로 알폰스 무하 박물관 방문이다. 출발 전 알폰스 무하 관련된 책을 읽었다. 이국적이고 화려한 그림만이 아닌 영혼이 가득한 작품을 남긴 예술가, 우직하고 성실했던 예술가 알폰스 무하의 삶이 주는 감동이란... 

 

 

아일랜드 더블린과 체코의 프라하 중 고민하다 결국 프라하 여행을 결정했다. 오랜만에 여행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기차표와 호텔을 예약했다. 그러던 중 출발 며칠 전에 도이치반의 파업이 결정되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가 출발하는 23일 그리고 다음날인 24일까지 정상 운행을 하지 않는다. 버스도 비행기도 대체 스케줄이 좋지 않을뿐더러 가격도 지나치게 높다. 돌아오는 날에는 문제가 없으니 여행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데...

 

대체 열차 편을 찾아보니 일단 뉘른베르크나 최소한 프랑크푸르트까지는 가야 체코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다. 쾰른, 프랑크푸르트, 뮌헨처럼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고속 열차는 완전 파업이 아니라 두세 시간에 한 대씩은 운영한다. 결국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하기로 결정하고 여행 일정을 하루 앞당겨 8월 22일 일요일에 프랑크푸르트로 갔다. 시내의 30유로짜리 싱글룸이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 묵었다. 밤에 자기 전에 도이치반 어플 다시 확인해보니 뉘른베르크에서 체코의 국경도시 cheb까지 가는 레기오날 기차도 취소되었다. 아 진짜. 다행히 또 다른 루트를 찾아냈다. 뉘른베르크에 다음 역인 잉골슈타트까지 가야해서 일찍 잤다. 

 

다음날 아침 체크아웃을 하고 길을 나섰다. 호텔에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까지는 겨우 두 정거장이지만 우반 u-bahn을 탔다. 우반에 잠시 앉아 정거장 안내방송을 들으니 독일에 살고 있는데도 지금 막 독일에 여행온듯 설렌다. 

 

프랑크푸르트 역에서 무사히 기차를 탔다. 하루에 몇 대 운행하지 않아 엄청나게 붐빌 거라 예상했는데 한산했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독일 남부를 달리는 기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즐거웠다. 잉골슈타트에서 레겐스부르크까지 레기오날 기차 타고, 레겐스부르크에서 마침내 최종 목적지 프라하까지 가는 체코의 기차를 탔다. 진짜 무사히 가는구나!

 

아침 8시부터 기차 세 번 갈아타고 오후 4시가 넘어 프라하에 도착했다. 2015년 1월 그리고 2019년 환승하느라 아주 잠깐 머무른 이후 세 번째 도착한 프라하다. 

 

 

 

프라하의 길거리

기차역 밖으로 나와 구글맵을 보며 호텔을 찾아갔다. 오랜시간 기차를 타서 피곤하기도 하고, 거주지가 아닌 여행지이다 보니 확실히 긴장도는 높지만 그래도 프라하는 프라하다. 정말 아름답다. 

 

 

 

호텔 창 밖으로 보이는 모습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고 방에서 잠시 쉬었다. 그리고 올드타운쪽에 다녀오려고 다시 길을 나섰다. 기차 노선 변경 전 원래 스케줄대로라면 저녁 8시쯤 도착했어야 하는데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다. 게다가 슬슬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나타나는 것을 보니 안 나갈 수가 없지! 

 

 

 

프라하 시내 길거리

'프라하는 프라하다.'

이 말 한마디만 계속 머릿속에 떠오른다.

 

 

 

프라하 시민회관 Obecn dům

화약탑 옆에 있는 아르누보 양식의 아름다운 프라하 시민회관

 

 

 

프라하 올드타운 광장

 


 

아침 일찍 일어나 8시에 조식을 먹었다. 프라하의 좋은 점은 서유럽에 비해 물가가 낮다는 점이다. 독일에서라면 50~60 유로쯤 내야 할 것 같은 호텔에 30 유로면 묵을 수 있다. 방에서 오전 내내 쉬다가 거의 12시다 다 되어 길을 나섰다. PID 어플을 설치하고 대중교통 이용 티켓을 구매했다. 24시간 트램, 버스, 메트로 이용권이 120 코루나 (약 6,500 원). 와, 진짜 저렴하다. 내일 기차역갈 때까지 사용할 수 있겠다. 

지난 밤 잠을 푹 자고, 조식도 든든하게 먹고, 방에서 커피도 한 잔 마시고, 가족과 카톡으로 즐겁게 대화도 하고 나서 기분 좋게 호텔을 나섰다. 호텔 바로 앞 정류장에서 트램을 타고 시내로 갔다. 사실 어제 프라하에 도착해서 기차역 밖으로 나올 때만 해도 조금 긴장했다. 세 번째 오는 프라하지만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혼자 하는 여행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무언가 낙천적인 기운이 흐르고 활기찬 느낌이다. 

 

 

 

프라하의 올드 트램

'프라하는 프라하다.'

너무 아름답다

 


 

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장우진

사진 출처: 본인 소장 교보 ebook

 

이번 여행 출발 전 일주일 동안 장우진의 <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을 읽었다. 알폰스 무하는 음악가 드보르작과 함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체코 예술가다. 사실 이번 여행의 주요 콘셉트가 알폰스 무하의 작품 감상이다. 알폰스 무하는 아르누보 Art Nouveau 하면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 거론되는 작가이다. "아르누보는 미술과 삶이 결합해 주변 환경의 총체적 변혁을 요구하는 예술 운동이었다." 이 말처럼 순수미술과 상업 미술의 경계를 허물었다. 장식적이고 디자인적 요소가 주요 특징이다. 

 

무하는 1860년 7월에 체코 모라비아의 작은 마을 이반치체에서 태어났다. 법원의 하급직원이었던 아버지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귀족 자제를 가르치던 어머니 아말리에 사이에서 태어난, 그러니까 모라비아의 작은 마을과 제국의 수도 빈이 섞인 흥미로운 출생이다. 10대에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성 페트로브 수도원의 성가대 일원으로 활동하며 교육을 받았다. 어린 시절에 가톨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체코는 원래 프로테스탄트 문화가 강했던 곳인데 합스부르크가의 지배하에 가톨릭을 강요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곧 가톨릭이 뿌리를 내리고 19세기에 교회와 건축, 각종 장식 등이 고대부터 이어져온 비잔틴, 슬라브 전통, 고딕 양식 위에 바로크 골격까지 갖추게 되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처럼 법원에 서기로 취직했지만 무하의 관심은 미술뿐이었다.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기 위해 프라하에 있는 아카데미에 지원하지만 낙방했다. 그러다 스물한 살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방의 장식 화가로 취업을 했다. 그곳에서 무하는 공방의 일로 극장에 자주 드나들게 되었는데 이것이 새로운 영감이 원천이 되었다. 이뿐 아니라 빈의 유명한 화가였던 한스 마카르트와의 만나게 되었다. 그의 신화화와 역사화에 등장하는 이국적이고 상징적인 여인들이 무하에게 영감을 주게 되었고, '무하'하면 바로 떠오르는 관능적이고 여신 같은 여인 그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무하의 재능을 높이 평가한 쿠엔 백작의 후원으로 1885년부터 뮌헨의 아카데미에서, 1887년부터는 파리에서 공부했다.  하지만 나중에 쿠엔 백작의 후원이 끊기면서 재정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다행히 신문 일러스트레이터로 취업에 성공하고, 일러스트레이션 능력도 성장하게 된다. 무하는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멈추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항상. 그럼에도 빈곤한 생활이 이어졌다. 그 당시 파리는 유럽 미술의 중심지로 전 유럽에서 청운의 꿈을 품고 수많은 화가들이 몰려들었는데 무하 역시 그 수많은 이름 없는 화가 중 하나였던 것이다. 

 

성공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알고보면 인생역전의 순간이 된 전설적 에피소드 같은 게 하나씩 있는데 무하에게도 그런 일이 생겼다. 휴가 간 친구의 부탁으로 인쇄소에 갔다가 당대의 배우 사라 베르나르 주연의 연극 <지스몽다> 포스터를 그리게 되고 이것이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비잔틴 모자이크 스타일의 배우 실물 크기 포스터는 파리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국적이고 화려한 모습에 사람들은 끌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귀인이 귀인일 수 있는 것은 본인이 귀인을 만났을 때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하는 갑자기 당대 최고의 배우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주문 받았을 때 당황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구도를 잡고 물 흐르듯 작품을 완성한 것은 그가 충분히 많은 그림을 그렸고 단련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무하가 파리에서 남긴 작품의 상당수는 상업 포스터이다. 그는 시각 광고의 선구자이기도 한 것이다. 비스킷, 맥주, 초콜렛, 심지어 자전거 광고마저도 고급스럽고 환상적이다. 무하는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할 줄 아는 그림을 그렸다. 또한 상징주의의 특징으로 별이나 왕관과 같은 신비주의적 상징물을 그려 넣었다. 상업 포스터만 그린 것이 아니라 역사 일러스트레이션에도 뛰어났는데 이후의 걸작 <슬라브 서사시>의 밑거름이 되는 창작 활동이었다. 게다가 심도 있는 북 디자인에 이어 <르 파테 주기도문> 같은 영적이고 신비한 그림까지 그렸다. 보석 디자인에도 손을 댔는데 간소하고 기능적이기보다는 무하답게 복잡하고 화려하고 이국적인 것이 특징이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화려하게 꽃 핀 아르누보는 어느덧 짧은 전성기를 지나 퇴조하게 되었다. 무하는 엄청난 성공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했다고 한다. 무하의 작업실에서 이어진 화려한 파티와 모임, 곤궁에 처한 예술가나 동포 지원 등으로 돈이 술술 새어나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하는 미국으로의 이주를 결심한다. 미국에서 장식 화가 이상의 것을 원해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1903년 같은 체코 출신의 스무 살 연하 미술학도 마리 히틸로바를 만나고 1906년에 결혼하면서 드디어 무하도 안정적인 가정에 정착했다. 그는 미술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파리 시대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포스터가 아닌 체코 전통을 강조한 민속적 작품을 그리기 시작한다. 

 

무하 인생에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은데 그 중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그의 역작 <슬라브 서사시>이다. 20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대형 템페라화를 완성하기 위해 고령의 나이에 20년 동안 하루 9-10시간씩 작업을 했다고 한다. 와... 대가 Master가 걸작 Masterpiece을 완성하는 과정이 수도승의 수행 같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더없이 지루할 수도 있고 힘들 수도 있지만 얼마나 깊은 만족 gratification을 느끼며 살았을까. 숙연해지고 존경스러워진다. 

 

1939년 독일이 프라하를 침공하면서 애국 인사 중 한 명이었던 무하도 나치의 감시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인류의 보편 문제를 담고자 1936년에 시작했던 <이성의 시대>, <지혜의 시대>, <사랑의 시대> 시리즈는 결국 미완으로 남게 되었다.

 

이 책의 마지막 다섯 번째 챕터는 많은 울림을 준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무하의 생과 예술에 대해 자세히 알기 전에는 그저 예쁘고 신비롭고 화려한 그림 잘 그리는 화가로만 생각했는데, 무하는 참 영적이고 고귀한 느낌을 주는 그런 작가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화려한 포스터로 파리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의 평생 삶 자체가 성실과 끈기로 이루어져있다. 눈부신 그의 작품 뒤에 반복되는 일상의 작업이 있었던 것이다. 무하의 삶을 알기 전에는 그의 예쁜 그림이 좋았지만 이제는 무하라는 작가 자체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래서 드디어 무하 박물관에 도착. 올드 타운 근처에 있어서 찾기도 쉽다. 무하 박물관 입장료는 260 코루나 (약 14,000 원)이다. 아담한 사이즈의 기념관 같은 곳이지만 무하의 작품을 실제로 본다는 데 벅차올랐다. 

 

 

The Four Arts. Alphonse Mucha. (1898).

예술의 뮤즈를 그린 그림이다.

우측 상단부터 <Dance>, <Painting>, <Music>, <Pertry>

 

 

 

The Four Flowers. Alphonse Mucha. (1898).

왼쪽부터 <Carnation>, <Lily>, <Rose>, <Iris>

 

 

 

The Times of the Day. Alphonse Mucha. (1899).

왼쪽부터 <Morning Awakening>, <Brightness of Day>, <Evening Contemplation>, <Night's Rest>

 

 

 

Flower. Alphonse Mucha. (1897).

저 소매의 티테일한 장식이 인상적이다. 

 

 

 

Zodiac. Alphonse Mucha. (1869).

 

 

 

Salon des Cent, 20th Exhobition. Alphose Mucha. (1896).

 

 

 

Job. Alphonse Mucha. (1898).

이것은 담배 Job의 광고 포스터이다.

담배 애호가가 아니라도 이런 포스터를 보고서도 담배를 안 살 수가 없겠다.  

 

 

 

Moravian Teacher's Choir. Alphonse Mucha. (1911).

파리 시절 이후 무하는 이렇게 체코의 민속을 잘 보여주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

 

 

 

6th Sokol Festival. Alphonse Mucha. (1912).

소녀 뒤 태양과 매를 상징물로 들고 있는 여신이 든든하게 체코를 지켜주는 듯한 모습 

 

 

 

Princess Hyacinth. Alphonse Mucha. (1911).

 알폰스 무하 박물관의 티켓 배경으로 낙점된 히아신스 공주 그림

 

 

 

알폰스 무하의 책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무하의 작품 중 하나인 예술 4연작 <춤> 그림

이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무하의 작품 수는 아주 많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자세히 디테일을 봐야 해서 한 작품 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기념품숍에서 내가 좋아하는 <춤> 그림이 있는 메모장을 하나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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