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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프라하 여행 02: 클레멘티눔, 말라 스트라나, 노비 스베트 본문

여행기록/2021 여행: 유럽

체코 프라하 여행 02: 클레멘티눔, 말라 스트라나, 노비 스베트

Writer Hana 2021. 9. 4.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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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흐려도 프라하는 프라하다. 정말 아름답다. 예정에 없던 클레멘티눔을 방문해서 프라하의 아름다운 전망을 감상했다. 언제나 낭만적인 말라 스트라나 거리를 지나 노비 스베트를 찾아냈다. 못 찾고 돌아가야 하는 줄 알았는데 아름다운 노비 스베트의 전망 포인트를 발견한 기쁨!

 

 

알폰스 무하 박물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다시 올드 타운 광장으로. 날씨가 흐려도 프라하는 역시 프라하다. 길거리의 건축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호강하는 도시다.

 

 

프라하 올드 타운 광장의 명물, 천문 시계와 틴 성당.

다음 목적지는 프라하 국립미술관이 있는 골츠킨스키 궁전이었다. 그런데 안내원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엥? 홈페이지에서 미리 확인했을 때 그런 공지가 없었는데. 옆 건물에서 다른 전시를 볼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길래 일단 고맙다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오지 뭐 이런 생각으로 일단 밖으로 나왔다. 광장 벤치에 앉아 새로운 목적지를 찾기 위해 구글맵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그때 클레멘티눔 국립 도서관이 눈에 띄었다. 아하, 여길 가면 되겠구나. 사진으로 보니 스트라호프 수도원의 도서관처럼 고풍스러운 홀도 있었다. 

 

클레멘티눔 Klementinum 국립 도서관에 도착했다. 올드 타운 광장에서 걸어서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곳에 있다. 입구로 보이는 곳에 들어가서 방문하려 한다 했더니 안내하는 젊은 남자분이 여기는 가이드 투어로만 들어갈 수 있고, 다음 투어를 위해 약 20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얼떨결에 투어 비용 300 코루나를 지불하고 기다리게 되었다. 그 안내원 남자와 한참 이야기를 했다. 유머감각이 있고 말도 잘하는 파블로는 알고 보니 아버지가 페루 사람이고 어머니가 체코인인 체코 국적의 사람이었다. 코로나 이후 한국 관광객이 없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즐겁게 나눴다. 내가 동아시아 사람인데도 거부감 같은 것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이번 프라하 여행에서 유일하게 사람과 나눈 제대로 된 대화였는데 잠깐이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역시 사람에게는 멋진 장소와 맛있는 음식도 중요하지만 살아 숨 쉬는 사람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오후 3시가 되어 체코식 억양이 상당히 강한 영어를 구사하는 예쁜 가이드를 따라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투어 멤버는 나를 제외하고 전부 영어 또는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유럽 사람들이었다. 사실 투어 자체는 실망스러웠다. 인터넷에서 직접 찾아봐도 알아낼 수 있는 도서관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설명을 듣고, 특별할 것 없는 몇몇 장소를 둘러본 것이 전부다. 무엇보다 가장 기대했던 바로크 도서관 홀에 직접 들어가 볼 수도,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다. 아주 잠깐 바깥에서 훑어보고 떠나야 했다. 다행히 좋은 점이 딱 한 가지 있었는데 탑에서 프라하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300 코루나는 이 전망을 감상한 값이라 생각해두겠다. 

 

 

 

프라하 시내

저 멀리 틴 성당과 천문 시계탑이 보인다. 

 

 

 

프라하 성

 

 

 

프라하 성 확대 사진

​붉은 지붕의 도시 프라하

날씨가 흐려도 그림 같은 풍경의 프라하

 

 

 

프라하 올드 타운 광장의 스타벅스

투어 끝나고 카페인 충전을 위해 스타벅스에 갔다. 이렇게 새로운 식음료점 검색하기 귀찮고 피곤할 때 맥도널드나 스타벅스 같은 미국의 프랜차이즈 브랜드에 고마운 마음뿐이다. 콜드 브루 라떼 한 잔 주문해서 2층 창가 소파에 앉았다. 아, 향 좋은 콜드 브루를 즐기며 로맨틱한 프라하 구시가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좋구나. 사실 유럽은 아시아만큼 스타벅스 지점이 많지 않다. 독일 서부의 경우 뒤셀도르프, 쾰론, 본 같은 도시에 한 두 지점이 있을 뿐이다. 대신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개성 넘치고 커피 종류도 가지각색인 베이커리 커피숍이 많다. 난 두 종류의 커피숍 모두 좋아한다. 

 

유명 프랜차이즈의 경우 한치의 오차도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맛이 표준화되어 있어서 처음 가보는 지점이라도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따로 사전 공부를 할 필요도 없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에서는 직접 계산대에서 주문하고 바로 결제하면 되지만 개인 커피숍의 경우 대부분의 유럽 카페에서 그렇듯 착석한 후 테이블에서 주문하고 결제도 다 마신 후 테이블에서 한다. 이렇게 문화적 차이가 있는데 스타벅스 이용방법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어서 귀찮을 일이 없다. 반면에 개인 커피숍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래도 주인의 개성이 커피 향과 인테리어에 잘 드러난다는 점일 것이다. 카페를 단순히 카페인 보충하는 곳이 아닌 하나의 여행 장소로 생각한다면 현지의 독특한 카페를 찾아가 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 이렇게 편리함과 독특함이라는 주요 차이가 있다.  

 

 

 

프라하 올드 타운 길거리

커피 마시고 느긋하게 쉬다가 다시 밖으로

 

 

 

체코의 대표 빵, 일명 굴뚝빵이라 불리는 뜨르들로

나의 첫 유럽 여행은 2015년 1월이었는데 출발점이 바로 이 프라하였다. 바로 위 사진과 똑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각도로 찍은 사진이 있다. 여행이 끝나고 나중에 그 사진을 포함한 프라하의 사진을 보니 그림 같은 도시 풍경이 감탄스러웠다. 그런데 여행 중에는 도대체 왜 프라하가 낭만적인 도시라는 건지, 무엇이 아름답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월의 중부 유럽에는 우리나라처럼 칼바람 부는 강추위는 없지만 화창한 날도 거의 없다. 아주 추운 건 아닌데 매일 우중충한 날씨, 새로운 직장에서의 시작을 앞두고 있었지만 또 다른 해결해야 할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 시점. 그리고 혼자 하는 여행이 더 이상 재미있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때 프라하에서의 즐거운 기억은 단 하나, 호스텔에서 같은 8인실에 머물던 베트남 여자, 터키 남자, 스웨덴 남자에 나까지 네 명이서 즉흥적으로 팀을 결성해 프라하의 야경을 보러 돌아다닌 것이었다. 혼자가 아니어서 무섭지 않고, 함께 웃고 떠들고 사진 찍으며 즐거워하던 시간, 나의 여행 역사에서도 기억에 남을 순간이다.

 

두 번째는 2019년 11월에 비행기 환승 장소로 잠깐 들렀다. 평생의 반려자와 다시 찾은 프라하는 짧은 일정이 무척 아쉬울 정도로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남편이 바빠서 혼자 프라하에 여행을 오게 되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삶에 만족스러워서 그런지 프라하가 아름답다. 아니 오면 올수록 더 아름다워 보이는 도시이다. 

 

 

 

까를교

프라하에는 랜드마크라고 할 만한 건물도 많고, 명소도 많지만 그래도 굳이 대표 장소 하나만 꼽으라면 그래도 이 "까를교" 아닐까? 블타바 강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까를교. 역시나 사람이 많다. 

 

 

 

까를교에서 보이는 프라하 성

 

 

 

프라하 말라스트라나의 거리

프라하는 프라하다.

​너무 아름답다.

 

 

프라하의 서점 Shakespeare a Synove s.r.o.

말라 스트라나에 있는 Shakespeare a Synové s.r.o.라는 서점인데, 영어로 하면 Shakespeare and Sons이다. 체코어는 물론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어 등 각종 유럽 언어로 된 책을 파는 곳이다. 마치 구멍가게의 입구 같은 문을 통과해 들어가면 조용하고 아늑한 세계가 펼쳐진다. 1층에 세 구역 지하에도 크게 두 구역이 있는데 빈티지 스타일의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곳곳에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서 머무르며 책을 읽을 수도 있다.

 

 

 

프라하의 서점 Shakespeare a Synové s.r.o.

왼쪽은 1층, 오른쪽은 서점의 지하층

 

 

프라하의 아름다운 길거리

프라하는 걷기만 해도 볼 것이 많은 아름다운 도시다. 

 

 

 

프라하 말라 스트라나 구역

 

잠시 말라 스트라나 구역을 구경하고 계획대로 노비 스베트 Nový Svět로 향했다. 인스타그램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예쁜 마을의 사진을 우연히 봤는데 그곳은 바로 노비 스베트였다. 말라 스트라나 바로 옆 프라하성이 있는 흐라드차니 구역에 있다. 이곳은 경사진 곳이라 먼 거리는 아니지만 한참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프라하성까지만 가보고 그 보다 더 들어가 보는 것은 처음이라 더 그랬다. 

 

 

프라하 노비 스베트

그래! 바로 여기야, 사진에서 본 곳이 바로 정확히 이 베이지색과 핑크색 집이야!

 

그런데 높은 곳에서 여기를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이었는데 어디로 가야 그 포인트를 찾을 수 있지? 프라하성을 지나고나면 길거리에 인적이 드물고 이 노비 스베트 거리에 들어선 이후 한 두명만 지나쳤다. 게다가 이제 곧 어두워질 시간이라 그냥 호텔로 돌아갈까 생각했다. 도대체 그 포토 스폿은 어디인 거지? 아무리 돌아다녀도 찾을 수가 없다. 가장 높은 지대에 도착했는데 큰 찻길과 트램 철로가 있는 곳이었다. 흠... 이번에 못 찾고 가는 건가?

 

다행히 트램역은 가까이 있어서 돌아가는 길이 걱정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가 올라온 반대편에서 노비 스베트 길거리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저기를 따라가 볼까? 음... 계단 끝에는 아까 내가 지나갔던 길인데. 그런데! 아, 드디어 알겠다 찾았어!!! 사진을 찍는 포인트는 큰 찻길 아래쪽 작은 수풀 안에 있었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노비 스베트 포토 스팟

무슨 어려운 시험 합격한 것은 아니지만 가고 싶던 장소 포기하려다 결국 찾아내서 성취감까지 느껴졌다. 그렇게 신나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진짜로 호텔로 향했다. 트램 안에서 편하게 앉아 구경하는 프라하 역시 너무 아름다웠다.

 

 

 

프라하의 트램 정류장

 


 

짧은 3박 4일의 여행을 마치고 집에 가는 날이다. 아침 일찍 7시 30분에 일어나서 든든히 배를 채웠다. 사람들 참 부지런하다. 7시 30분에 문을 여는데 벌써 식당이 바글바글하다.  

 

 

 

하룻밤 30유로짜리 호텔에서 이 정도 수준의 조식이라니, 프라하 물가 참 좋다.

카푸치노 한 잔으로 여유 있게 마무리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씻고 짐 정리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그리고 어제 구입한 24시간짜리 티켓으로 트램을 타고 기차역까지 갔다.​

 

 

프라하 국립 박물관 건물

시간 여유가 있어서 기차역 옆 프라하 국립 박물관 건물을 보기 위해 걸어갔다. 아니 집에 갈 시간이 되니까 날씨가 화창 해지네??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가 남은 체코 코루나 현금 탈탈 털어서 물, 샌드위치, 그리고 남편 줄 선물로 코젤 다크를 샀다. 

 

 

프라하 중앙역 1층의 고풍스러운 모습

 

 

 

프라하에서 레센스부르크까지 타고 간 기차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여행 마치고 집에 가는 시간이 아쉽지 않았었다.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만족감을 가지고 집에서 씻고 쉬며 사진을 정리하는 시간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막상 기차 타고 집에 가려니 아쉬움이 밀려왔다. 

 

<오랜만에 경험한 나 홀로 여행의 즐거움>

처음에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 타고 출발하며 오랜만에 혼자 여행하는 설렘을 느꼈는데 막상 프라하 역에 도착해서는 약간 주눅 들었다. 유럽이기는 해도 내가 거주하는 도시가 아닌 낯선 곳이고, 세 번째 와보는 거라고 해도 대략적인 방향 감각만 있을 뿐 특정한 장소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구글맵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곳이다. 도착해서 호텔에 짐을 풀고 올드 타운으로 가는데 유럽인 관광객으로만 바글바글해서 깜짝 놀랐다. 이후 집에 가는 시간까지 길거리에서 한국어는 물론 중국어 일본어도 들리지 않고 동아시안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못 봤다. 사람들은 보통 여행을 가서 "여기는 한국 사람 하나도 없다" 또는 "아시아인 보기 어렵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보통 만족감의 표시 또는 나는 아시아인이 없는 곳에 여행 온 아시아 사람이라는 자랑의 표현쯤 된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한국에서 한국 사람들과 한국어를 사용하며 살아가니 일상에서 탈출한 여행의 시간에 한국사람이 없고 한국어가 들리지 않는 환경을 원할 수밖에 없다. 여행에서 기대하는 당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이상했다. 전혀 안면이 없어도 나와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에서 오는 안도감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 자신이 아시아인이라는 자의식만 머릿속에 가득 찼다. 

다음날 푹 자고 일어나서 조식 맛있게 먹고 남편 그리고 가족과 즐겁게 카톡 대화를 한 후 길을 나섰다. 그렇게 심기일전(?)하고 나와서 내가 동아시아인이라는 자의식 레벨 0으로 세팅하고 완전히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다른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는 장소라고 해도 나의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 싶으면 전혀 눈치 보지 않고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체코는 아니지만 유럽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낯선 기분이 덜 들기도 하고 무엇보다 겁먹은 쥐처럼 사소한 자극에 도망칠 준비를 하는 게 아니라 프라하라는 아름다운 도시를 즐기기 위해 왔다는 본래 목적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마음가짐이 세상만사를 다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 실제로 도움이 되고 삶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 불교의 일체유심조 철학은 위대하다. 세상 모든 것은 나에게서 비롯되기 때문에 내가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으면 남들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 인간은 의외로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남에게 관심이 없다. 이 옷이 너무 튀는 거 아닐까? 이런 부분이 남들에게 두드러져 보이지 않을까? 사실 거의 아무도 신경 안 쓴다. 심지어 사적으로 알고 지내는 지인조차도 나의 신상정보를 기억 못 하는 경우가 있어 우리를 가끔 놀라게 하지 않는가? 이렇게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의식을 지우고 나니 오래전 배낭 하나 매고 인도, 터키, 태국을 거침없이 돌아다녔던 때처럼 잠자던 모험심이 스멀스멀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트램 안내 방송에서 내가 전혀 모르는 체코어를 듣는데 낯선 곳으로 여행 왔다는 생각에 설레기까지 했다.

 

이런 자의식 심리를 이해하면 반대로 이용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역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고 싶다면 내가 의식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활기찬 사람이다, 나는 차분한 사람이다' 이런 식으로. 말과 생각에는 힘이 있어서 내가 그렇게 말하고 오랜 시간 생각하면 정말 그렇게 된다. 

 

<코로나 시국의 여행>

 

지구인들 눈에 한국 사람도 그냥 중국 사람처럼 보이는데 여행할 때 위험하지 않을까? 이것은 말하기가 조심스럽고 한 마디로 이렇다 저렇다고 누구도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다. 미디어와 SNS에서 동양인은 여행 가면 인종 차별당한다 또는 나는 아무 일도 안 겪었다 말하지만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전부 확률상의 '개인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수학 공식처럼 'A라는 국가를 방문하면 동아시아인 인종차별을 한다' 또는 'B라는 곳은 동양인 인종차별이 전혀 없는 좋은 곳이다'라는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없다. 복불복이라 보는 것이 맞다. 인종차별을 당한 적이 없다면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않는 강한 멘털의 소유자 또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반대의 경우라면 그 사람이 무엇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다.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외부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결론을 내리려 드는 것은 오만한 행동이다. 

 

다만 우리가 인식해야 할 점은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대부분의 장소가 다 사람 사는 곳이라는 점이다. 미디어라는 매체는 일단 '이야깃거리'가 되는 주제만 다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일 없이 평화롭게 살아가는데 이것은 대중의 이목을 끌 여지가 없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것이라 다루지 않는다. 특이하거나 흥미롭거나 놀랍거나 드문 상황만을 미디어가 다루는 것이고, 인종 차별로 인한 심각한 사건도 그중에 하나다. 당장 나만해도 미국 관련된 뉴스를 보면 도대체 저긴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나라인데 어째서 현재도 변함없이 강대국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분명 나는 미국에 거주해본 적이 없고 심지어 여행으로 가 본 적도 없는데 타인들의 경험만을 가지고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규정해버리기보다는 대략적 이미지만 가지는 것이 미래의 편견 없는 경험을 위해서 좋을 것이다. 

 

또한 무엇이 인종차별인지 개인만의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 진짜 인종차별이라 말하려면 동양인이기 때문에 숙박을 거부당했다든지 부당한 검문을 받아다든지 똑같은 시설을 이용하는데 동양인에게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요구한다든지 가장 위험한 경우로써 물리적 위협에 노출된 경우다. 이런 경우에는 나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대응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행동에 나서면 된다. 하지만 단지 나를 보고 킥킥거리는 것, 명백한 인종 차별 표현이 아닌 아시아식 인사 "니하오" 또는 "곤니찌와"같은 말을 들어서 가던 길 멈추고 싸우려 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사람이 말을 할 때는 어투와 분위기라는 것이 있어서 정말 나에게 인사를 하는 건지 놀리는 건지 아무리 둔해도 다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멋진 장소를 즐기러 여행 와서 직접적 위험이 없는데 단지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로 싸우면 실제로 얻을 이익이 무엇인가. 물론 개인에 따라 그런 것을 참고 넘어갈 수 없다고 하면 말릴 생각은 없다. 넓은 시각에서 보자면 아시아인은 놀려도 크게 문제 일으키거나 반응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해서,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만만해서 그런 현상이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굉장히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라면 여행 동선과 대응 방식을 철저히 계획하거나 현지 관련된 여행자 주의 사항 자료를 찾아보고 준비를 하는 게 낫지 타인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에 지나치게 의존할 필요는 없다. 가벼운 미소를 지어줄 사람들과 마주치겠지하는 긍정적 기대를 품은 채 긴장 풀고 바른 자세로 내가 여행 온 목적에 집중하는 게 나의 준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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