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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천 여행: 신포시장, 자유공원, 차이나타운, 월미도 본문

여행기록/2023 여행: 한국

동인천 여행: 신포시장, 자유공원, 차이나타운, 월미도

Writer Hana 2023. 12. 17.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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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동인천으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신포 문화의거리에서 즉석떡볶이를 먹은 후 자유공원과 차이나타운을 걸었다. 그리고 마지막 코스로 월미도에 갔다. 동인천은 맛있는 것과 화려한 볼거리로 놀기 좋은 장소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근대 역사의 특별한 현장이다. 

 

 

 

한국에 온 지 일주일 째 되는 날이다. 조카가 이모 이모부 오면 동인천 월미도에 꼭 같이 가고 싶어 했다. 언니네 동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동인천에 갈까 말까 고민했다.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올 듯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즉흥적으로 가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동인천역 2번 출구로 나와서 신포 시장으로 향했다. 조카가 좋아하는 꽈배기를 사기 위해.

 

 

 

신포꽈배기

 

조카가 좋아하는 신포꽈배기

신포 시장 입구에 있다.

 

 

 

늘봄분식

 

 

 

즉석떡볶이

 

신포 문화의거리에 있는 분식집인데 언니네 단골이라고 한다. 얼마 만에 먹는 즉석떡볶이야! 기본 2인분과 라면사리와 튀김을 추가로 시켰는데 셋이 먹어도 남는 양에다 맛도 좋다. 남편은 따로 돌솥비빔밥을 시켰는데 역시 맛있다고 했다.

 

 

 

신포동 길거리

 

배부르게 즉석 떡볶이를 먹고

자유공원으로 향했다.

 

 

 

신포동의 골목길

 

점점 온천지가 아파트화 되어가는 시대에

정겹고 무언가가 그리워지는

그런 길거리 풍경이다.

 

 

 

자유공원

 

 

 

자유공원

 

인천항이 내려다보이는 자유공원

 

이곳에서 우리는 말없이 인천항을 내려다보았다. 문득 인천에서 직장 생활하던 때가 떠오른다. 그리고 한국에 온 지 벌써 일주일이라니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는 생각에 아쉬웠다. 일 년에 두 번 비즈니스 타고 한국 오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하하.

 

- 자유공원에 대하여 

"인천을 대표하는 공원중 하나인 자유공원은 1888년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다. 응봉산(鷹峰山) 또는 응암산(鷹岩山)이라 불리는 자그마한 동산 위에 자리 잡은 이 공원은 처음 만들어질 당시 만국공원이라 불렸다. 이는 인천항 개항 이후 인천으로 몰려든 서양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살던 만국지계(萬國地界) 안에 공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계(地界) 또는 조계(租界)는 원래 19세기 후반 중국의 개항 도시에 있었던 외국인의 거주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열강들이 중국에 진출하는데 근거지가 되었던 곳이다. 응봉산 아래 이곳에서도 외국인들이 살며 자체적인 행정권과 경찰권을 행사했기 때문에 지계라 부른 것이다. 만국지계는 달리 각국지계(各國地界)라고도 불렸기에 이 공원은 각국공원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었다. 14만 평이나 되는 넓은 면적의 만국지계에는 미국이나 영국 등 여러 나라의 서양인들이 살았는데, 그 위치는 일본인이나 청국인들이 모여 살던 일본지계와 청국지계 옆에 있었다. 일본지계가 7천 평, 청국지계가 5천 평 정도였던 것에 비하면 만국지계는 무척 컸던 셈으로, 이곳을 여러 개의 구역으로 나눠 구획정리사업을 하면서 이 공원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병합시킨 뒤 이들 조계는 일본의 압력으로 없어지게 돼 1913년 4월 만국조계에 이어 같은 해 11월에는 청국조계도 없어지고 말았다. 그 뒤 일제는 지금의 인천여상 자리에 자신들의 신사(神社)를 세워 그곳을 동공원(東公園)이라 부르면서, 그 맞은편에 있는 만국공원의 이름을 서공원(西公園)이라고 바꾸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서공원은 다시 만국공원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겪고 난 1957년 이승만 정부는 우리의 건국기념일인 개천절에 이곳에 맥아더 동상의 제막식을 가지면서 공원의 이름을 자유공원으로 바꿨다."

출처: 인천광역시 홈페이지 https://www.incheon.go.kr/IC040312/1516781

 

 

 

어느 예쁜 카페

 

자유 공원에서 풍경감상하고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차이나타운

 

 

 

차이나타운

 

오... 뭔가 정말 베이징 후통 같은 느낌인데?

 

차이나타운에 와본 적도 없고 잘 몰라서 막연히 관광 목적으로 조성된 동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로 중국인들과 화교들이 살았거나 현재도 살고 있는 장소이자 약 130년 전에 자장면이 탄생한 곳이었다!

 

- 차이나타운에 대하여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이듬해 청나라 조계지가 설치되면서 중국인들이 현 선린동 일대에 이민, 정착하여 그들만의 생활문화를 형성한 곳이다. 화교들은 소매잡화 점포와 주택을 짓고 본격적으로 상권을 넓혀 중국 산둥성 지역에서 소금과 곡물을 수입, 193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1920년대부터 6·25 전쟁 전까지는 청요리로 명성을 얻었는데 공화춘, 중화루, 동흥루 등이 전국적으로 유명하였다. 한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외환 거래규제, 무역 규제, 거주자격 심사 강화 등 각종 제도적 제한으로 화교들이 떠나는 등 차이나타운의 화교사회가 위축되었으나 한중수교의 영향으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오늘날에는 역사적 의의가 깊은 관광명소로서 관광쇼핑, 특화점, 예술의 거리 등 권역별로 변화하고 있으며 풍미, 자금성, 태화원, 태창반점, 신승반점 등이 중국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화교 2,3세들로 구성된 약 170 가구, 약 500명이 거주하고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인천차이나타운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301681&cid=40942&categoryId=35446

 

 

 

 

 

 

탕후루

 

나도 먹어봤다, 탕후루

 

요즘 우리나라 10대 여학생들에게 마라탕 식후 탕후루 간식이 인기코스라고는 들었다. 딸기 탕후루를 처음으로 먹어봤는데 이거 무슨 맛으로 먹는 거지? 딸기가 냉동이기도 하고 먹기도 힘들어서 한번 경험으로 됐다. 

 

 

 

인천차이나타운

 

금요일 밤인데

어쩜 이리 한산하지?

 

 

 

인천차이나타운

 

인천차이나타운 맛집이라는 연경

 

우리는 저녁을 먹은 상태라 아쉽지만 화려한 불빛 구경만

 

 

 

중국차이나타운

 

황제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나타나는 선린(善鄰)문

 

차이나타운이 속한 이 동네의 지명은 선린동이다. 선린은 "이웃 또는 이웃나라와 사이좋게 지냄. 또는 그러한 이웃나라"라는 뜻으로 우리가 흔히 국제관계에서 선린우호관계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선린동, 선린문 이름은 참 좋다.

 

 

 

십이지신상

 

십이지신상

 

금요일 밤인데도 길거리에 사람이 많지 않고, 심지어 문을 열지 않은 가게도 많았다. 오늘 무슨 날인가? 게다가 동화마을은 깜깜했고, 조카가 좋아하는 소품샵도 문을 닫았다. 아쉽다. 다음에 다시 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미도

 

 

 

월미 문화의거리

 

얼마 만에 월미도인지

 

금요일 밤인데

여기도 왜 이렇게 한가하지?

 

 

 

월미도에서 보이는 영종도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월미도에 가끔 왔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주 어릴 때. 월미도에서 놀다가 배를 타고 영종도에 가서 산 낙지를 먹었던 추억이 있다. 그때 인천공항 건설 전이라 영종도는 완전 깡촌이었는데. 지금은 어느새 우리나라의 관문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제물포가 개항된 이래 인천은 현재까지도 세계를 향한 우리나라의 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예전부터 든 생각이지만 인천은 가진 자원에 비해 관광업이 발달하지 않아 안타깝다. 문화, 역사, 자연, 쇼핑 등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데. 

 

 

 

월미도

 

 

 

고양이

 

 

월미도의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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