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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에 필요한 정치력 또는 처세술: 영국 최단기 집권 총리 리즈 트러스를 보며 본문

일상 생각/2022년

사회생활에 필요한 정치력 또는 처세술: 영국 최단기 집권 총리 리즈 트러스를 보며

Writer Hana 2022. 11. 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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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총리 리즈 트러스 Liz Truss가 취임 43일 만에 사임 발표를 했다. 영국 역사상 최단기간 집권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고 물러나게 되었다. 영국의 총리씩이나 되는 사람도 정치력이 부족해서 쫓기듯 물러나는 판인데 평범한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정치 실력의 중요성은 긴 설명이 필요 없다. 그녀에게서 반면교사를 삼아야 할 정치의 기술 또는 처세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Rish Sunak & Liz Truss. source: bbc.co.uk

 

 

사회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한 정치 능력, 처세술, 마케팅 실력

 

 

우리는 흔히 사내 정치질이라면서 천박한 행태 취급하는데, 그런 사람 치고 똑똑하게 앞길을 헤쳐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자신은 순수하고 정직해서 실력이 있음에도 승진에서 밀렸거나 일이 잘 안 풀린다고 주장하는 사람 열에 아홉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복잡한 것은 질색이고 귀찮다. 원하는 바를 적극적으로 성취하려는 에너지도, 방해가 되는 사람을 당차게 제치고 나갈 기운도 없다. 변화에 적응하기 귀찮다. 그리고 상처 받았다며 힐링과 위로를 찾아 나선다. 

2. 경쟁자와의 실력 차가 크지 않다. 실제 엄청난 실력이 있다면 반드시 눈에 띄게 되어 있다. 

 

육상이나 수영처럼 기록을 재는 스포츠 종목이 아니고서야 실력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분야는 거의 없다. 비슷비슷한 퍼포먼스들, 비슷한 콘셉트의 카페들, 크게 차이가 없는 기능의 제품들... 그뿐인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기업의 총수도 정치 상황에 휩쓸려 사업 차질을 겪는 지경이다. 그런데도 요즘 사람들, 특히 젊은 여성들은 일과 업무 실력으로만 승부를 보겠다며 본인 싫은 일은 절대 안 하려고 한다. "뭐? 처세술? 나는 실력으로만 승부 본다!"라는 배짱은 김연아 급의 압도적 탁월함을 가진 경우에만 통한다. 또는 이순신 장군처럼 도저히 대체할 수 없는 실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비대해진 자기 방어 의식은 좀 빼야 한다. 현실 돌아가는 상황을 냉정한 눈으로 파악한 후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 

 

평범한 우리가 사회 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정치력, 조금 순화해서 처세술, 더 고상하게 말하자면 마케팅 실력을 갖춰야 한다.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면 행동과 실천이 아닌 상황 파악에 시간과 공을 들여야

 

 

어제(2022년 10월 20일) 영국 총리 리즈 트러스가 집권 43일 만에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단 7주라는 짧은 기간 안에 벌써 영국 총리가 두 번 바뀌었다. 코로나 파티 스캔들로 사임한 보리스 존슨에 이어, 리즈 트러스가 토리 당수로 뽑히면서 총리가 되었지만 그녀 역시 불명예 사임하고 인도 이민 가정 출신의 리시 수낵이 총리가 되었다. 

 

표면적 이유는 경제 정책의 실패이다. 그런데 실패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정책을 발표만 했을 뿐인데 혼란이 발생한 것이다. 

10월에 감세안을 내놓자마자 시장이 극단적인 반응을 보였다.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파운드화는 달러 대비 똥값이 되었다. 리즈 트러스가 내놓은 수습 방안은 재무 장관을 경질하고 제레미 헌트를 새 장관에 임명하는 것이었다. 이에 더해 감세 정책을 의미하는 '미니 버짓'을 백지화했다. 하지만 기자로부터 "[총리직이] 능력 밖의 일이냐 out ot depth"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리더십에 대한 의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이 임명한 내무장관 수엘라 브레이버먼이 자진 사퇴하며 한 방 먹었다. 후폭풍을 잠재우지 못하고 결국 본인의 사퇴로 마무리를 장식했다. 신념에 따른 성장 중시 경제 정책을 시도했지만 결국 압박에 사퇴를 결정한 것이다.

 

누구로부터의 압박일까? 부자를 위한 정책이라며 노발대발하는 대중의 압박도 있었고 야당의 압박도 있었다. 서구 매체의 뉴스를 보고 리즈 트러스가 물러난 근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자신의 지지기반인 보수당 자체를 통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부의 압박도 피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언론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듯 단순히 정책 실패로 접근하는 것은 피상적이다. 정책이 실패한다고 모든 지도자가 물러나는 것도 아니다.  

 

혼돈의 시기에 신임 총리로서 그녀가 제일 먼저 했어야 하는 일은 성급한 경제 정책 발표가 아니었다.

 

- 성급하게 행동하기 전에 조직을 파악하고 지지 기반부터 다져야

- 강한 주관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행동'보다 '사태 파악'에 공을 들여야

 

이게 미니 버짓 만들기보다 시급한 일이었다.

 

CNN의 영국 특파원 설명으로 보자면 리즈 트러스는 토리당 내에서조차 입지가 튼튼하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성급하게 임팩트가 큰 결정을 내렸으니... 어떤 국가의 어떤 당이든 같은 당이라 원팀이라 생각하면 착각이다. 어디든 내부 계파 간 경쟁이 있기 마련이다. 리즈 트러스는 백인과 연장자 당원들의 지지를 발판으로 당수가 되었다. 어쩐지 보리스 존슨이 사임을 발표하고 당수 선출 과정에서 지지도 조사를 보면 원래 리시 수낵이 1순위이고, 리즈 트러스는 2위였는데 왜 갑자기 리즈 트러스가 당수로 뽑혔나 나도 궁금했었다.

 

이렇게 특정 계파의 지지로 당의 총수가 되었는데 멍청하게 자기를 지지했던 소위 자기 사람만 요직에 앉혔다. 전형적인 내편 챙기기 행보다. 어떤 보수당 원내 의원이 인터뷰에서 앞으로 누가 새 총리가 되든 뭉쳐야 한다고 in unity 말했다. 이게 무슨 뜻인가. 그냥 운이 없고 시절이 하 수상해서 영국 역사상 최단기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내부에서조차 기반이 튼튼하지 않았다. 대중의 반발과 야당의 압박을 예상하여 여당이 합심해 정책을 밀어붙이고, 총리에 대한 끈끈한 신임을 보여주는 것, 아니 방어가 가능했을까? 

온 지구가 코로나 부정적인 전망으로 넘쳐난다. 코로나 충격에서 이제 좀 일어나려 하는데 고유가, 물류 대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인한 경제 침체 등. 모두가 부정적인 전망만 내놓고, 모두가 먹고 살기 어려워졌다고 아우성이다. 이런 시대의 총리라면 면죄부를 줄 수 있지 않을까? 무슨 소리. 위기 상황이라고 모든 지도자가 거기에 휘말려 낙마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위기에 빛나는 그녀의 선배 윈스턴 처칠 같은 인물도 있지 않은가.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만 해도 별다른 위기 없이 임기를 마쳤으면 누군지도 모르게 잊혔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세계사 주요 장면에 이름이 남게 되었고 정치학과 리더십 분야에서 전쟁 리더십의 훌륭한 사례로 연구될 것이다. 

 

리즈 트러스의 경우를 보며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거나 승진할 때 갖춰야 할 처세술을 배울 수 있다. 

 

성급하게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서서히 사회적 관계부터 다져야 한다. 새로 알게 된 사람들과 친해지기 전에 또는 아무도 말로 하지 않는 조직의 암묵적 룰과 문화나 실세가 누구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자신을 드러내곤 한다.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고, 주관적 신념을 드러내고, 아니면 어색한 분위기를 못 견뎌 사생활과 전 직장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다. 아무리 직장이 친목의 장이 아닌 공적인 일터라 해도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먼저 최소한 인간적인 신뢰나 지지를 얻는 것이 우선이다. 일찌감치 자신을 드러내면 최악의 경우 파악당하고 이용당할 뿐이다. 또한 개인의 주관이란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서 '비호감'을 살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신입 사원이 그 분야에 좀 안다고 지식과 주장을 거침없이 드러낸다면 그것을 예쁘다고 좋아할 동료나 상사는 흔치 않은 게 현실이다. 

 

물론 리즈 트러스의 경우 많은 토리 당원과 이미 공적·사적으로 친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총수로서 당 전체를 단합하여 자신의 텃밭을 확실히 다지는 일을 간과했다.  

 

또한 자신이 다뤄야 할 사태 파악에 시간과 공을 들여다 한다. 지지 기반 다지기의 연장선상이기도 하다. 흔히 새로운 업무를 맡거나 승진을 하면 맡은 업무 영역에 관해 강력한 권위를 갖게 된다고 여긴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성급하게 권위부터 휘두른다면? 더군다나 지지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상황 파악까지 못하고 신념만 밀어붙인다면? 이래서 실력 발휘하기도 전에 도태되는 것이다.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어도 정확한 진단과 분석 없이 효과 있는 시행 방법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급한 만큼 공론화하여 다양한 의견 수렴하고 예상대는 결과를 예측해 볼 시간도 없다.

 

한 국가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파악하는 데 그녀가 총리직에 있었던 43일도 부족한 시간이다. 그런데 이 짧은 시간에 미니 버짓을 만들고 재무 장관까지 교체되었다. 

 

 


 

같은 보수당 출신 선배 여성 총리들과 비교를 해보자. 역사에 크게 부각되지 않을 테레사 메이 전 총리, 반대로 역사에 길이 이름이 남을 마가렛 대처 전 총리와 비교해 리즈 트러스의 정책 결정 및 실행 능력이 형편없다거나 그녀가 추구하는 기조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언론에서는 정책상의 허점을 지적하느라 바쁘지만 이는 피상적인 접근이다. 리즈 트러스의 진짜 잘못은 정치력과 처세술의 부재다. 

 

CNN 특파원이 리즈 트러스는 집권 기간이 너무 짧아서 "Legacy"가 없다고 말했다. 즉 정치인으로서 이런 공이 있고, 저런 과가 있다는 논란거리조차 없을 정도로 그냥 한 일이 없다는 뜻이다. 정치인에게 최악의 평가다. 똑똑하고 신념도 있는 그녀가 정치력이 조금 뛰어났다면 그래도 내년 총선까지는 총리직을 유지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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