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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각/2022년

정치인에게서 배우는 매력: 보리스 존슨

Writer Hana 2022. 10. 21.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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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 정치인에게서 매력을 배운다고? 보리스 존슨의 스피치를 보며 매력과 설득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생각해 보았다. 정치인과 연예인은 대중의 호감으로 먹고사는 직업이다. 대중의 호감을 얻는 데 성공하여 권력이나 부를 쟁취한 정치인 또는 연예인은 마케팅의 달인이자 매력의 달인이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 시작된지도 벌써 9개월 가까이 된다. 국제정치를 포함한 정치란 선악의 프레임으로 보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각자의 입장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세계사에 기록될 영원불변한 역사적 사실은 국가 존립 자체가 위협당하는 일이 없음에도 푸틴의 군대가 일방적으로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공격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침략이 시작되기 오래전부터 이미 냉기류가 흘렀고 우크라이나는 나름대로 서방의 도움을 받기 위한 행보를 보였다. 그중 대표적인 대상이 역사적으로 러시아 잡기에 남다른 능력을 보여준 영국이다. 우크라이나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던 영국의 보리스 존슨은 파티 스캔들로 총리직에서 물러났고, 그 후임자인 리즈 트러스마저 어제 2022년 10월 20일 자로 사임을 발표하는 등 영국 국내 정치와 경제는 혼란의 연속이지만. 

 

어제 리즈 트러스의 사임과 그녀의 문제점에 대해 일기를 쓰다가 지난 2월에 작성하고 비공개로 해둔 보리스 존슨에 대한 글을 정리해서 발행하기로 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우리는 정치인 하면 하는 일 없이 국고만 축내는 존재, 탐욕스러운 존재, 권력에 눈이 멀어 못할 짓이 없는 존재, 말과 행동이 다른 가증스러운 존재라고 여긴다. 이는 한국이나 외국이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사람들은 정치인 또는 정치권력 가까이 있는 인물에게서 매력을 느낀다. 쑥스러워서 팬임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존 케네디 대통령에 열광하던 사람들, 공식 직책은 없었지만 대통령에 맞먹는 영향력을 발휘했던 에비타 페론 아르헨티나 전 영부인 추앙, 노무현 대통령을 구세주처럼 따랐던 노사모 회원들 등.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정치인은 우리 같은 보통 시민과 무엇이 다를까? 이 포스팅에서 정치인의 공과(功過)는 논하지 않는다. "매력이란 무엇인가"의 관점에서 정치인 또는 권력 근처에 있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연예인과 정치가야말로 매력으로 대중을 유혹하여 먹고사는 직업이고 매력을 연구하기 가장 좋은 직업군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YQu1oyYgyuQ

 

2월 1일 당시 BBC인가 알 자지라에서 생방송으로 봤다. 10분도 걸리지 않는 짧은 스피치인데 나도 모르게 집중해서 '재미있게' 봤다. 

 

1. 말의 내용: 서론 본론 결론이 확실, 짧고 간결함, 쉬운 단어 사용

 

좋은 스피치, 좋은 글의 정석을 보여준다.

일단 감사 인사로 가볍게 출발한다. 그리고 "마린스키 궁전에 다시 오게 되어 좋다, 키예프에 다시 오니 판타스틱하다, 5년 전과 달리 이 도시 많이 바뀌었네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라며 친근하게 시작한다. 그러다 각 잡고 "But we have to face a grim reality."라고 한다. 엄중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며 진중하게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와의 우호 관계 강조, 구체적인 지원 내용, 러시아에 대한 경고 등 짧지만 핵심 사항이 알차게 포함된 스피치이다. 

 

또한 알아듣기 쉽다. 영어 종주국 출신으로서 뽐내듯 어렵고 전문적인 단어를 섞어 말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수능을 준비해 본 학생이라면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의 단어와 문구들이다. 게다가 비속어나 은어 없이 표준어만으로도 재미있게 말한다. 

 

간단한 사항도 어렵게 꼬아서 말하거나 장황설을 늘어놓다가 정작 요점이 무엇인지 끝끝내 알 수 없는 글과 스피치가 많다. 또 요즘 온라인의 글이나 영상을 보면 사람들의 말이 상당히 거칠어졌다. 예를 들어, 음식을 만들며 재료를 넣을 때 "때려 넣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조진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강해 보이거나 쿨해 보인다고 착각하는 듯한데 정서가 얼마나 각박한지 드러날 뿐이다. 이런 식의 표현 없이 표준어와 짧은 말로도 쿨해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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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말을 하는 자세: 강단 있는 말투, 안정적인 시선과 몸동작

 

보리스 존슨은 서두르거나 조급해하는 기색 단 한 번도 없이 천천히 말을 한다. 사람을 빨아들일 것만 같은 달변가나 유명 강사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집중해서 듣게 된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강조하고 싶은 포인트에서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거나 목소리 톤을 강하게 한다. 

 

또한 말을 할 때 그의 시선과 몸동작이 안정되어 있다. 보리스 존슨의 우크라이나 방문 하루 전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회의에 참석한 외교관들과 비교된다. 그곳에서 발언한 각국의 유엔 주재 대사들은 어땠을까? 원탁에 앉아서 말을 하는데 대부분은 시종일관 고개를 푹 숙인 채 원고만 바라보며 읽다 한 번씩 회의장을 볼 뿐이었다. 게다가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보는 사람마저 불편하고 긴장감이 들게 한다. 확실히 관료와 정치인은 다르다. 

한 국가의 리더 정도 되면 당연히 연설 원고를 작성해주는 보좌관이 있고, 사람에 따라 연설 코치를 두고 있는 경우도 있다. 보리스 존슨 역시 가끔 원고를 보지만 모든 동작이 자연스럽다. 기자들과 카메라를 볼 때는 시선을 또렷하게 고정한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지도 않고, 한 번씩 우에서 좌로 쭉 눈길을 옮기며 능숙한 시선 처리를 보여 준다. 사람이 긴장을 하면 손과 팔이 가만히 있지 못하는데 그런 모습도 전혀 없다. 

 

 

3. "나"는 없다, 신념과 할 일에 집중하는 태도 

 

기계적으로 총리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정말로' 우크라이나는 영국의 친구이고, '정말로' 물적 지원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도울 것이며, '정말로' 러시아는 쓸데없는 분쟁을 만들면 대가를 치를 거라는 신념에 푹 빠져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본인이 하려는 말을 진심으로 믿고, 본인이 하는 말에 푹 빠져 있으면 듣는 사람은 반드시 설득당한다. 영혼 soul이 가득한 사람은 매력을 감출 수 없다.  

게다가 듣는 사람을 한 수 가르치겠다는 거만함이나 코끝이 하늘에 닿을 것만 같은 위압스러운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그냥 옆집 아저씨 같은 모습 아닌가.

 

스스로 주관과 신념이 강하다고 여기며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본인 입으로 "주관이 강하다"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진실을 말하자면 근본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갖추기 위해 크게 짖을 뿐이다. 자기 방어를 위해 고집을 드러내는 걸 가지고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사람을 유혹할 수도 설득할 수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진짜로 건강한 주관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상태를 의식하지도 않고, 의식해도 드러낼 필요성을 못 느낀다. 진짜로 강한데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있나? 이는 엄청난 매력이 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신경 쓰지 않는 사람,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식 없이 그저 자신이 믿는 신념에 푹 빠져 있는 사람, 그게 진짜로 이루어질 것처럼 말을 하는 사람. 인간은 그런 존재에 끌린다. 그렇기 때문에 선동도, 유혹도, 설득도 가능한 것이다. 세상에 이름을 알린 정치인치고 자신이 추진하고자 하는 일과 신념에 푹 빠져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예를 들어 푸틴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사람이 죽어나가도 전쟁은 자신 인생의 과업 Life's Task라고 믿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하긴 어렵지만 타인의 목숨이나 평화보다 자신의 의무(라고 믿고 있는 착각과 망상) 완성이 진심으로 최우선 순위다. 

그밖에 우리가 우습게 여기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연설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 그들이 연설하는 장면을 보면 언어를 몰라도 '아, 저 사람 에너지가 가득하네. 야, 말 시원시원하게 하네' 이렇게 느낀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걱정하는 모습도 불편해하는 모습도 전혀 없다. 전형적으로 자신이 믿는 세계에 빠져 대중 유혹에 성공한 자들이다. 

말의 내용, 말하는 태도, 나 자신이 아닌 내가 하는 일에 집중하는 마인드 이렇게 세 가지 만으로 한 단계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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