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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들의 역사> 유아정 지음 본문

독서기록/2021

<아름다운 것들의 역사> 유아정 지음

Writer Hana 2021. 7. 19.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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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것들의 역사: 20년 차 기자가 말하는 명화 속 패션 인문학>

유아정

 

패션잡지 기자 출신의 작가가 인문학과 미술사 자료를 기반으로 40개의 패션 키워드를 다루는 책이다.

입담 구수한 출연진들의 토크쇼를 듣는 듯한 구어체인데 마치 2000년대에 유행했던 각종 여성 처세술, <여자 OO하라>는 식의 실용서를 읽는 듯한 문체다. 하지만 역사적 내용을 고증하는 부분을 보면 '얼마나 많은 자료를 찾고 정리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문체는 실용서지만 내용은 인문학에 가깝다.

나는 예쁘고 아름다운 것이 좋다. 어릴 적부터 화려한 것을 좋아했다. 꽃무늬, 밝은 색, 화려한 드레스 이런 것에 끌렸다. 문구점에서 종이 인형을 사면 예쁘고 화려한 드레스 옷은 내 차지고, 나와 취향이 정반대인 언니는 고급스럽고 심플한 정장 옷을 가졌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예쁜 것을 보면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예쁜 것들을 수준 높은 지식과 함께 소개해주는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만 골라 정리해봤다.

 

아름다운 것들의 역사

사진 출처: 본인 소장 교보 ebook


 

 

 

1. 미소에 숨겨진 비밀 '치아'

 

시녀에 둘러싸인 외제니 황후의 초상, 프란트 빈터 할터. (1885).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예로부터 밝고 건강한 미소가 미인의 조건이었고, 붉은 입술에 하얀 치아는 얼굴을 훨씬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요소였다. 하지만 수많은 그림 속 왕족이나 미녀들이 활짝 웃지 않는다. 그림 속에 웃고 있는 여성이 한 명도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의 시각 문화학 교수 바네사 브라운은 "이는 난 당신보다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이라며 "사람들이 누구와 교류하고 싶을 때 활짝 웃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표정"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듣기 좋은 설명일 뿐 실제로는 충치 때문이었다고 한다. 20세기 초까지만 하도 본인의 치아를 평생 유지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이는 왕족이나 평민이나 마찬가지였다. 부유하고 신분이 높은 계층에서는 의치를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동물의 뼈 나중에는 도자기 소재로 개발되었다. 입을 열고 웃을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특권'이었는데 지금은 참 좋은 시대다.




 

3. 만고 불변의 진리 '블랙'

 

블랙이 매력적인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유행을 타지 않고 실용적이며 어울리지 않는 장소가 드물다. 또한 저렴한 가격의 제품이라도 컬러 자체만으로 고급스러워 보인다. 또한 블랙 드레스 한 벌로 여성이 얼마나 아름답고 섹시해지는지 우리는 영화, 드라마, 광고, 잡지에서 수없이 봤다. 여기까지는 지극히 진부한 검은색의 매력이다. 이 파트를 읽으며 나는 검은색의 주의할 점에 대해 생각했다.

분명 검은색은 멋진 색이고 하얀색과 더불어 패션의 기본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 않은 법. 남녀를 불문하고 검은색 의상만 착용하면 사람이 어두워 보일 수 있다. 어렸을 때의 나는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색을 좋아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검은색 옷만 옷장에 가득 차게 되었고 한창 멋 부리기 좋은 20대에 주로 검은색 옷을 입고 다녔다. 코코 샤넬처럼 남다른 패션 감각이나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20대에 잘 풀리는 일이 없고, 마음이 무거워서 그랬는지 검은색 옷을 입어야 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은색을 입어야 날씬해 보이는 것 같았다. 블라우스도 검은색, 카디건도 검은색, 심지어 잘 입지 않는 원피스마저 검은색, 외투도 검은색. 검은색 아니면 어두운 갈색.

마음이 어두워서 어두운 색만을 편하게 여겼는지 아니면 어두운 색만 찾다 보니 인생이 어두워진 건지 인과관계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인생이 밝아지기 시작한 서른 초반부터는 다시 밝은 색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 지금은 옷장을 열어보면 어린 시절처럼 꽃무늬 원피스와 화사한 색상의 의상이 가득하다. 핑크 계열의 옷이 너무 많아 이제는 의도적으로 노란색이나 초록색 계열 등 다른 색의 옷을 사려고 하고 있다. 이 역시 인생이 풀리기 시작해서 밝은 색을 찾게 되었는지, 밝은 색을 찾게 되어 인생이 풀리는지 인과관계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어두운 색만 찾는 것은 밝은 인생을 꾸려나가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에게 어설픈 위로나 문제 해결을 위한 방향 제시보다 "밝은 색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세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밝은 색 옷이 당장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울할 때 시폰 소재의 화사한 원피스를 입고 나가서 서점 한 바퀴 돌거나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만으로도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반대로 지나치게 기분이 과열되거나 들떠 있을 때는 어두운 색으로 보완해주면 좋다. 이렇듯 인생에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5. 아름다움을 정의하는 사람들 '로열패밀리'

 

요즘은 SNS 인플루언서나 연예인들의 의상이 유행을 선도하지만 최초의 패션 아이콘은 왕족이었다. 레드 카펫과 무도회장을 누볐던 왕족들이 대중의 취향과 스타일을 결정했다. 이 책에서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스코틀랜드의 메리 스튜어트, 마리 앙투아네트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한 사람들의 패션을 그림으로 소개하고 있다. 나에게 가장 인상 깊은 패셔니스타는 루이 15세의 공식 정부였던 퐁파두르 후작 부인, 즉 마담 퐁파두르다.

좌: 마담 퐁파두르의 초상, 프랑수와 부셰. (1758). 우: 마담 퐁파두르의 초상, 모리스 드 라 투르. (1775).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이 책에서는 왼쪽에 있는 부셰의 작품이 인용되었지만 개인적으로 모리스 드 라 투르의 오른쪽 초상화가 더 인상깊다. 영리하고 지성미 넘치는 마담 퐁파두르의 이미지를 더 잘 나타낸 그림이기 때문이다.   

 

마담 퐁파두르 매력적인 이유는 단지 그녀가 트렌드세터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퐁파두르 부인은 귀족 가문이 아닌 평민 출신이지만 상당히 똑똑한 여자였다. 본명이 잔 앙투아네트 푸와송 (프랑스어에서 푸와송은 '생선'을 의미한다)이었던 그녀는 루이 15세의 정부로서 오랜 시간 왕의 총애를 받았을 뿐 아니라 실제 국내 정치와 외교에도 영향을 끼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왕이라면 주변에 미인들이 가득하고 주변의 시기와 견제도 심했을 것이며 무엇보다 루이 15세는 쉽게 권태를 느끼고 항상 새로운 여자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마담 퐁파두르는 왕의 가장 사랑받는 애첩이자 최측근 비서로서 20여 년 동안 건재했다.

 

위의 그림에서 보이듯 그녀는 예술과 학문적 기질도 다분했다. 그녀의 초상화를 보면 책이나 악보를 들고 있고 배경에도 지구본, 책, 펜 같은 '지성'을 상징하는 오브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것은 설정용 배경이 아니고 실제로 루이 15세에게 권하여 예술과 철학 분야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오늘날에도 명품으로 인정받는 세브르 도자기 Sèvres Porcelain는 일명 퐁파두르 도자기라고 불리는데 그녀가 발전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남자든 여자든 스타일이 멋지고 눈길을 끄는 외모를 가졌다고 해도 눈으로만 잠시 감탄할 뿐이다. '매력적'이라는 것은 시각적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그 사람의 행동, 심리, 분위기 그리고 라이프 스타일의 총합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담 퐁파두르가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예술과 지성을 사랑했던 그녀의 삶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다. 카트린 드 메디치와 마리 앙투와네트를 제외하고 이름을 들어도 누군지 모르는 프랑스 왕비가 수두룩하다. 그 가운데 정부로서 이름이 널리 전해지는 걸 보면 정말 매력적인 역사 인물이긴 하다.

 

 

 

 

7. '핑크'에 대한 편견

 

야망을 품은 여인, 제임스 티소. (1885).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베이비 핑크 드레스 차림의 젊은 여성은 백발의 노신사와 부적절한 관계인 듯 보인다. 주변 신사들의 그들을 향한 표정을 보면 정식 혼인 관계 또는 부녀 관계는 확실히 아니다. "야망을 품은 여인 a woman of ambition"이라는 그림의 제목에서 완전히 확실해진다. 그녀는 노신사의 힘과 재력을 이용해 야망을 한껏 펼쳐보려는 에너지 넘치는 여자인 것이다. 요즘 같으면 범죄 또는 돌 맞을 일이 될 텐데 티소가 이 그림을 그린 19세기에 이런 모습은 드물지 않았다. 그런데 세상을 유혹하려는 그녀의 옷이 베이비 핑크라니? 유아정 작가가 이 그림을 고른 이유도 '야망'과 '핑크'가 언뜻 봐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핑크 하면 어린 여자아이에게 어울리는 색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또한 성인 여성과 연결 지을 때는 골 빈 인형 같은 여자를 조롱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영화 <금발이 너무해>에서 금발의 미인은 멍청하다는 편견에 시달리는 주인공 엘 우즈는 여러 차례 핑크색 의상을 선보인다. 심지어 영화 마지막에는 무려 핫핑크색의 정장을 입고 학생 변호인 자격으로 법정에 등장한다. 그리곤 컬 파마 직후에 비를 맞거나 머리가 물에 젖으면 파마는 곧 풀려버린다는 미인이라는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으로 피고인의 무죄방면을 이끌어낸다.

야망, 야심, 유혹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절제되면서도 관능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블랙 드레스에 고혹적인 레드 립스틱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블랙 드레스에 레드 립스틱으로 치장하면 드러내 놓고 "나는 야망 있는 여자다"라는 분위기를 풍길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겁 많은 신사들은 도망가버릴 것이다. 위 그림에서는 언뜻 야망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핑크를 사용해 부드럽고 밝고 건강한 이미지를 풍긴다. 가까이 다가가도 무해할 것 같은 유쾌함 덕분에 타깃이 되는 남성이나 대중에게 접근하기가 쉬워지는 것이다.

만약 영화 <금발이 너무해>에서도 마지막에 엘 우즈가 전형적인 변호사를 떠올릴법한 단아한 스타일로 등장했다면 역시 '고상한 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똑똑한 법이라는 편견만 강화했을 텐데, 캐릭터의 본질과 영화의 주제를 잘 살려 외모나 취향은 지성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더불의 핫핑크 정장을 입은 금발의 변호사라니, 가까이 접근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 똑똑한 변호사라기보다 옆집 언니나 누나처럼 친근하게 다가가기도 쉬울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남자든 여자든 핑크를 잘 이용하는 사람은 똑똑하다. 핑크로 치장함으로써 사람들의 방어벽을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으니 말이다.



 

9. 투쟁의 역사 '스타킹'

 

현대 여성의 패션에서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인 스타킹이 원래 남성들을 위한 것이었다니!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옛날에는 문화권을 막론하고 다리를 드러내는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지 않았다. 이 책에 따르면 스타킹은 남성들이 전쟁 시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착용하던 가죽 덮개를 기원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4세기쯤에 성직자들이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하얀 스타킹을 신기 시작했고, 7세기 무렵에는 프랑스 남자 귀족들 사이에서 금실로 화려하게 수놓아진 스타킹이 유행했다고 한다. 또한 실크를 이용해 직접 손으로 짠 고급 아이템이라 왕족들 간에 선물로 주고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무릎길이의 A라인 스커트와 살구색 스타킹은 가장 손쉽게 여성스러워 보일 수 있는 조합이다. 그렇지만 나는 스타킹이 불편한다. 특히 그 까끌까끌한 착용감.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었을 때 제일 싫었던 점이 바로 매일 신어야 하는 검정 스타킹이었다. 예쁘지도 않고 불편하기는 또 어찌 그리 불편하던지.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다니며 출근하던 시절에는 펄이 들어간 검정 스타킹이나 꽃무늬가 수놓아진 검정 스타킹에 부츠를 즐겨 신던 시절이 잠깐 있었다. 하지만 예뻐지기 위해서는 수고를 해야 한다는 말은 나에게는 스타킹이 해당할 정도로 스타킹은 쉽지 않다.



 

11. 더 우아하고 더 돋보이게 '모자'

 

조지아나 공작부인의 초상화, 토머스 게인즈버러. (1787).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평범한 의상도 모자와 함께라면 드라마틱한 분위기로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는 듯하다. 위 그림의 공작부인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검은색의 차양이 넓은 모자를 비스듬히 썼을 뿐인데 너무나 스타일리시하다. 만약 모자가 없다고 상상하면 밋밋할 것 같다.

그림 속 조지아나 공작부인은 키이라 나이틀리가 출연한 <공작부인: 세기의 스캔들>의 실존 인물이다. 당시 영향력이 어마어마한 트렌드 세터였다고 하고 그녀가 초상화가 공개된 후 많은 여성들이 '공작부인 모자'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초등학생 때 피아노 레슨 받으러 가는 길에 아동복집 한 곳이 있었다. 4학년의 어느 여름날 레슨 받으러 가는 길에 흰색 바탕에 꽃무늬가 있는 예쁜 원피스를 보게 되었다. 같은 무늬의 모자와 세트로 디스플레이되어 있었는데 한눈에 마음에 들었다. 꼭 갖고 싶어서 길을 지날 때마다 눈을 뗄 수가 없었고, 얼마 후 엄마에게 마음에 드는 옷이 있는데 사달라고 했다. 엄마가 가보자고 해서 들뜬 마음으로 함께 갔는데 나에게 맞는 사이즈는 다 팔리고 없었다. 그때의 실망감이란... 이렇게 재미있는 기억이 남아있는데 어린아이의 눈에도 원피스에 매치되는 모자가 스타일리시해 보였던 것이다.




 

16. 욕망의 이중적 얼굴 '장갑'

 

가면, 조제프 데지레 쿠르. (1843). 출처: https://gallerix.org/storeroom/4082/N/7368/

유아정 작가는 이 그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미있게 해석한다.

"요염한 눈빛, 살짝 치켜올린 마스크 그리고 섬세한 하얀색 양피 장갑까지... '유혹의 정석'이라는 책이 있다면 표지 모델로 당장 당첨이다. 1843년 조제프 데지레 쿠르가 그린 이 초상화 속 여인은 가면무도회에서 마음에 드는 남성을 만났음에 틀림없다. 그러니까 얼굴을 감추는 것이 제1의 규칙인 가면무도회에서 얼굴을 드러내는, 그야말로 '반사회적' 행동을 당당히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녀는 이다음에 흰 장갑을 슬며시 벗어놓고 자리를 뜰게 분명하다. 마치 신데렐라가 우리 구두를 벗어놓고 무도회장을 떠난 것처럼 말이다. 물론, 신데렐라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라지만."

고고학자들은 인류가 이미 구석기 때부터 장갑을 사용했다고 밝혔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장갑은 고대 이집트 투탕카멘 왕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그리스 호메로스의 작품에도 장갑이 등장하고,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 때 장갑을 끼고 요리를 한 기록도 남아있다고 한다. 로마인들도 요리를 하기 위해 그리고 전투를 하기 위해 장갑을 꼈다고 한다. 여성용 장갑이 급속히 유행하게 된 것은 프랑스 앙리 2세의 왕비인 카트린 드 메디치의 영향이 가장 컸다는 게 정설인데 장소, 시간 그리고 의상에 따라 착용해야 하는 장갑에 대한 복잡한 예절이 존재했다고 한다.



 

 

18. 여인들의 천국 '백화점'

 

봉 마르쉐, 펠릭스 발로통. (1898).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세계 최초의 백화점이라는 파리의 봉 마르쉐 백화점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이 백화점은 1852년 아리스티드 부시코 Aristide Boucicaut에 의해 설립되었고 이후 루브르, 사마리텐느, 프랭탕 등의 백화점이 줄줄이 등장했다고 한다. 1870년의 카탈로그를 살펴보면 속옷, 겉옷, 액세서리, 머리 장식품, 침구, 가구, 식기, 실내 소품, 장난감 등 안 파는 것이 없던 종합 쇼핑센터였다. 가장 큰 변화는 물건에 가격표가 붙어 가격 흥정을 위한 실랑이를 벌일 필요가 없고, 구매자가 진열된 상품을 자유롭게 만져볼 수 있게 되었다. 직원들도 요즘처럼 고객에게 친절하도록 교육받고 환불제도도 그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백화점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고객 서비스와 상술이 이미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백화점은 여성들에게 행복의 장소이다. 지갑을 열게 만드는 예쁘고 멋진 물건이 잔뜩 모여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예쁘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면서도 백화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적 엄마와 이모를 따라 영등포 신세계 백화점에 자주 갔었는데 좋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다. 아마도 답답한 구조가 한몫하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형 백화점이 건축학적으로나 실내 장식으로나 아름답다고 말하기 어렵지 않은가. 인사동의 쌈지길, 청담동, 여자대학교 앞 등의 수많은 개성 넘치는 매장에 비하면 너무 단순하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백화점이든 1층은 좋다. 쇼핑이나 눈요깃거리 때문이 아니고, 백화점 1층의 화장품 코너를 지날 때 코를 찌르는 향수와 메이크업 제품의 향에 마치 공항 면세점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이다. 여행 목적으로 공항에 갈 때 출국 심사 마치고 탑승 전 설레는 마음으로 면세점 한 바퀴 도는 경험 누가 즐겁지 않을까.




 

24. 맞춤복의 미학 '오트 쿠튀르'

 

바바라 림스키 코르사코프 부인의 초상, 프란츠 사버 빈터할터. (1864).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오트쿠튀르'는 고급 맞춤복을 의미한다. 오트쿠튀르의 시초는 영국 출신의 찰스 워스와 동업자 오토 보베르가 '워스 & 보베르'라는 이름의 가게를 프랑스 파리에 개점한 때로 본다. 이 오트쿠튀르가 성장한 시대적 배경이 재미있다. 프랑스혁명으로 신분제도가 폐지되어 누구나 입고 싶은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계화와 상품의 규격화로 기성복이 발달했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상류층은 어떻게든 평범한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자신의 지위를 보여줄 무언가를 추구하면서 오트쿠튀르가 발전했다. 자신의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다른 계층과 구분하고 싶어 하는 것은 시대에 관계없는 사회적 본능의 일종인 듯하다.

워스는 똑똑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이런 시류를 읽고 사업을 발전시켰으니 말이다. 이 책에 따르면 그는 고객에게 재료비와 인건비에 더해 '디자인'이라는 무형의 가치에 대해서도 값비싼 대가를 요구했다고 한다. 스노비즘을 이용해 고객들에게 파리에서 가장 비싼 청구서를 보내고 고가 정책을 고수했는데 이게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또한 VIP 마케팅의 기술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의 고객은 왕족과 귀족의 여성들이었는데 아무리 돈이 많아도 정식으로 추천받거나 소개받은 여성만 고객으로 받아들였다. 고객이 그를 만나기 위해 대기실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는 일도 다반사였는데 항의하면 워스가 옷을 만들어주지 않을까 봐 참았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에 의하면 이것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눈속임을 잘해서가 아니라 정말 고급 패브릭을 활용하는 재능이 뛰어나고 제작 능률성도 남달랐기 때문이란다. 엄청난 양의 드레스를 계획에 따라 차질 없이 제작해냈고, 독창적인 디자인을 고안해내고, 태피터 벨벳 실크 등 소재 선택도 남달랐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스타일 창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러한 워스의 옷을 섬세하게 그림으로 표현했던 사람이 위 그림 림스키 코르사코프 부인의 초상화를 비롯한 수많은 상류층 여성들의 초상화를 그린 프란트 빈터할터이다.




 

25. 편견에 맞선 붉은 '립스틱'

 

립스틱은 마법의 아이템이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급하게 치장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을 때 간단히 사람을 변신시켜주는 아이템 세 가지는 진주 귀걸이, 향수 그리고 립스틱이다. 이 셋 중 하나만 갖춰도 바로 분위기 변신이 가능하다.

어렸을 때 엄마 화장대에서 가장 눈길이 갔던 것은 다른 무엇보다 립스틱이었고, 어서 어른이 되어 립스틱이 바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립스틱을 바른 내 얼굴은 실제로 볼 수 없고 거울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데도 립스틱이라는 존재와 립스틱을 바르는 행동 자체가 여자들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하다. 내가 가장 즐겨 바르는 립스틱은 Mac 제품이다. 화장수와 로션 같은 기초 스킨케어 제품은 고가나 중저가나 효과에서는 별 차이를 모르겠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색조 화장품은 가격이 조금 더 높을수록 품질이 더 좋은 경우가 많다. Mac의 경우 고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렴하지도 않다. Mac의 장점은 립스틱의 기본이라 할 있는 색상, 지속성, 촉촉함의 삼 박자가 고루 갖춰졌기 때문이다. Mac보다 약간 비싼 샤넬도 사용하긴 하는데 Mac보다는 지속성이 떨어진다.

이 책에 따르면 이렇게 여성들이 립스틱을 마음껏 사서 바를 수 있는 시기는 얼마 되지 않았다. 15세기의 영국 사제들은 입술 칠하기를 '사탄의 작품'이라 비난했고, 빅토리아 시대에는 립스틱이 매춘부나 무대의 배우에게만 허락된 부도덕한 행위로 여겨졌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들의 립스틱에 대한 열망을 잠재울 수야 있었겠나. 19세기에 프랑스 화장품 회사 겔랑 Guerlain이 최초의 고체용 상용 립스틱을 개발했고, 1915년에 미국의 발명가 모리스 레비 Morris Levy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총알 모양의 슬라이딩 튜브를 만들어내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덕분에 나 같은 평범한 여자들도 원하는 색상과 원하는 타입의 립 제품을 마음껏 바를 수 있게 되었다.

 

 

 

27. 은밀한 사교의 장 '목욕탕'



오늘날 많은 문화권에서 매일 세수를 하고 샤워하고 머리 감는 것이 일상적인데 이는 현대의 문화이다. 중세는 물론이고 화려한 파티문화와 패션이 발달했던 바로크·로코코 시대에도 사람들은 씻지 않았다. 1500년에서 1839년 사이의 예의범절 책이던 '시빌리테'의 프랑스어 사본 100여 편을 조사해보니 18세기 중반까지 씻기 대상에 손과 얼굴, 머리카락이 간신히 포함된다는 결과가 있다고 한다. 18세기 중반을 넘어서야 발이 나오고 1820년에 이르러 몸도 욕실에서 씻으라는 주문이 등장한다고 한다.

 

 

카라칼라 욕장, 로센스 알마 타데마. (1899).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하지만 안 씻었던 것은 아니고 오늘날과 같은 정도의 청결함이 당연시되던 때도 있었는데 바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절이었다. 집안에 작은 욕조와 세면대가 주택의 중요한 구조 중 하나였고, 오늘날 우리가 유적지에 가면 볼 수 있듯이 공중목욕탕 문화도 상당히 발달했었다고 한다.

위 그림의 카라칼라는 로마에서 두 번째로 컸던 공중목욕탕이었다. 한 번에 1,600명의 손님을 수용할 수 있었고, 오늘날의 최고급 스파 못지않게 다양한 부대시설들도 갖췄었다고 한다. 그림의 세 여인은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완벽한 차림새를 하고 있는데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모습이다. 마치 우리 엄마가 사우나에 정기적으로 다니며 동네 아주머니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된 것처럼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한 것 같다.




 

32. 패션의 완성 '신발'



남자들의 물건 '하이힐'.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 니콜리 게겐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성은 하이힐을 신은 여성에게 더 호의적이라고 한다. 동일한 신체 조건을 가진 4명의 여성이 10cm, 5cm 그리고 단화를 번갈아 신은 채 장갑을 떨어뜨렸을 때 180명의 남성 중 93%의 남성이 10cm 힐을 신은 여성에게 장갑을 돌려주려고 쫓아갔다. 5cm 힐을 신은 여성에게는 52%, 단화를 신은 여성에게는 43%만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여성인 나는 이 실험의 결과가 직관적으로 이해되는데 아무래도 하이힐을 신으면 앞발에만 힘이 가중되어 몸의 굴곡진 라인이 돋보이는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행동이 여성스러워진다. 10cm가 아니라 5cm 힐만 신어도 운동화를 신고 있을 때처럼 빠르고 힘찬 걸음, 즉 테스토스테론형 걸음이 나올 수가 없다. 자동으로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몸동작이 나온다.

하이힐은 오늘날 여성성의 상징 같은 물건이지만 사실 남자를 위한 물건이었다. 스타킹의 역사와 함께 새로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이다. 하이힐의 기원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논란거리지만 많은 학자들이 9세기 페르시아 기수의 신발을 최초로 보고 있다고 한다. 이후 힐은 유럽에서 남성들이 승마를 할 때 신었다. 또한 힐은 키를 더 커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어서 권위와 힘을 상징하기도 했다.

획일적인 교복에서 벗어나 대학생이 되었는데 나는 예쁘게 꾸미고 다닐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패션 감각 뛰어난 학생들이 많은 그리고 집단 효과에 의해 자동으로 예뻐 보일 것만 같은 여자대학교의 학생이었는데도 말이다. 붐비는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반 걸려 학교에 가고, 수업 마치면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보다 더 먼 곳인 분당까지 과외를 갔다. 그리고 하루 일과를 마치면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려 집에 도착했다. 이럴진대 샤랄라한 스커트에 하이힐은 꿈도 못 꿨다. 주로 셔츠, 청바지에 캔버스화를 신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생활을 했다. 그 당시 과외 갈 때 친구들한테 농담처럼 "나 비즈니스 하러 간다"라고 말하고는 했는데, 외모는 방치에 가까웠지만 내 사업하는 사람처럼 과외라는 일을 대하는 내 태도는 지금 생각해도 훌륭했다.

하지만 20대 여성으로서의 외모 가꾸기에 미련이 있어 그랬는지 졸업하고 취업을 한 이후 거의 매일 치마만 입고 하이힐을 신었다. 그때 키 168cm, 몸무게 50 kg의 연예인 프로필 몸매의 소유자 내 친구 김 모 양은 나의 작은 키를 부러워했었다. "야, 니 키에 7cm 하이힐 신으면 딱이지. 내가 7cm 신으면 나보다 키 큰 남자 만나기가 어려워." 친구가 부러워하는 아담한 키와 하이힐로도 나의 20대 시절 연애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 시절 신었던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하이힐 한 켤레가 있다. 유명한 브랜드는 아니고 학교 근처 신발 가게에서 사서 졸업 이후 신었던 밝은 갈색 에나멜 구두였다. 그런데 그냥 갈색이 아니고 아주 가느다란 펄이 전체에 고루 퍼져 있어서 햇빛이나 조명을 받으면 마치 금빛 은하수 같았다. 게다가 신발을 신으면 보이지 않지만 신발 안쪽은 강렬한 레드 컬러였다. 하이힐을 신으면 곡선의 몸매를 돋보이게 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예쁘다고 생각한 신발을 신으면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넘친다. 내가 더 매력적인 것 같은 느낌, 아마도 이런 심리적 효과가 하이힐의 진짜 힘이 아닐까? 남아있는 사진이 없어서 아쉽다.

 

 

 

34. 당신은 좌파 혹은 우파


정치 성향에 대한 것이 아니고 사진을 찍을 때 왼쪽과 오른쪽 중에 어느 쪽을 더 많이 카메라에 드러내는지에 관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카메라가 있어서 이렇게 찍어보고 저렇게 찍어봐서 마음에 드는 것을 남기면 되지만 제작하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초상화에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호주 멜버른대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1,500점의 초상화 등의 그림을 분석한 결과 여성의 68%, 남성의 56%가 왼쪽 얼굴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여성은 거의 70%가 왼쪽이다.

좌: 모나 리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15c. 출처: https://terms.naver.com/ 백일몽, 가브리엘 로셰티. (1880). 출처: https://en.wikipedia.org/(우)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속의 인물인 모나 리자뿐 아니라 수많은 그림 속 인물들이 왼쪽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왼쪽을 더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술 해부학자인 조용진 교수에 따르면 그림을 그리는 뇌는 주로 우뇌인데, 모델이 왼쪽 얼굴을 화가에게 보이면 모델의 눈, 코 , 입은 망막의 오른쪽에 상이 맺히고 뒷덜미와 왼쪽 귀는 망막의 왼쪽에 상이 맺힌다. 뇌는 눈에 보이는 모습의 좌우를 각각 따로 인식해서 뇌 속에서 종합하는데, 오른쪽 뇌로 들어온 왼쪽 측면상 즉, 눈, 코, 입 등이 잘 그러지는 것이다. --- 무슨 말인지 구조적으로는 이해되는데 직관적으로 와닿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현대에 그림뿐 아니라 사진에서도 왼쪽 편향이 더 두드러지는 이유는?

개인적인 의견으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눈으로 받아들이는 정보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글'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우리는 글을 읽을 때 왼쪽 상단부터 오른쪽 하단으로 정보처리를 하도록 평생 훈련받아 왔다. 그림 역시 1차적으로는 시각 정보이기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 정보를 해석하는 것이 두뇌에 가장 편리한 방법일 것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우리는 사람을 볼 때 눈부터 보지, 헤어 스타일부터 보지는 않는다. 눈이야말로 그 사람에 대해 많은 정보를 여과 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를 그림이나 사진에도 적용해보면 왼쪽 상단의 눈부터 보고, 코와 입을 포함한 전체적 얼굴의 이미지 그리고 다음으로 오른쪽의 머리나 주변 장식으로 시선이 갈 텐데 이것은 0.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일어나는 과정일 것이다. 오른쪽 상단부터 보고 왼쪽으로 넘어가면 무의식 중에 뇌가 불편함을 느낄 수 있어서 우리는 왼쪽부터 정보처리를 할 수 있는 왼쪽 편향 인물 사진이 더 아름답다고 '세뇌'된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옛날에 우리 조상님들은 오른쪽 상단에서 왼쪽 하단 순서로 글을 썼지만 그때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소수라 때문에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35. 귀 끝에서 영롱히 빛나는 '진주 귀걸이'



액세서리 중 가장 아름다운 진주.

크리스털, 다이아몬드, 루비 등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은 많지만 이만큼 진주 귀걸이 한 세트, 진주 목걸이 하나만으로 사람을 분위기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또 있을까?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1665). 출처:Google Arts & Culture.

판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널리 알려진 작품인데 비해 그림에 대한 배경 정보가 거의 없다고 한다. 모델이 누구인지,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등. 분명하고 확실한 정보는 사람을 '설득'하지만, 불분명하고 애매한 것은 '매혹'한다. 이 그림이 한층 더 매력적인 이유일 것이다. 새까만 바탕 덕분에 그림 속 여성의 밝은 피부톤과 커다랗고 영롱한 눈이 대비되어 더욱 신비롭게 보이는데, 만약 그녀가 진주 귀걸이가 아닌 다른 귀걸이를 착용했다면? 그 어떤 화려한 귀걸이를 했다 해도 분명히 이처럼 신비롭지 않을 것이다. 진주는 정말 독특하다.

액세서리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나도 선물 받은 주얼리들을 제외하고 두 쌍의 진주 귀걸이는 내 돈 주고 구입했다. 진주가 아름다운 이유는 심플하지만 고급스럽기 때문이다. 클래식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예외 없이 진주를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게다가 진주를 착용하면 피부가 맑아 보이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 펄이 섞인 립글로스만 발라줘도 순식간에 우아한 레이디로 변신이 가능한 그야말로 마법의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 여성들은 메이크업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주 귀걸이를 착용한 여성은 많이 봤다. 이 정도로 진주는 스타일을 가꾸는 사람에게든 아닌 사람에게든 사랑받는 아이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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