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투어: 여행과 독서 기록

<지적자본론> 마스다 무네아키 지음 본문

독서기록/2021

<지적자본론> 마스다 무네아키 지음

Writer Hana 2021. 8. 9.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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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자본론: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는 미래>

마스다 무네아키

이정환 옮김

 

츠타야 서점으로 잘 알려진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CCC)의 사장 마스다 무네아키의 책이다. '경영은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디자인'이라는 관점이 이 책의 주제다.  

 

어떤 홈페이지에서 이 책에 대한 수준 높은 감상평을 보고 흥미가 생겨 구입하게 되었다. '기획'은 나에게도 중요한 주제다. 나의 그랜드 투어 페이지 운영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 지식, 기술 그리고 경험을 잘 버무려 수준 높은 콘텐츠를 창작해낼 수 있을까, 어떤 지식 자본을 어떤 형태로 제안할 수 있을까?"와 연결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적자본론

 

차례

기. 디자이너만이 살아남는다

승. 책이 혁명을 일으킨다

전. 사실 꿈만이 이루어진다

결. 회사의 형태는 메시지다

 

서장에서 기획과 그것을 위해 필요한 자유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세계 최초를 추구하기보다는 고객 가치의 극대화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세계 최초란 남보다 앞서고 싶은 인간의 심리를 충족시켜주지만 그 이면에 '아직 불완전'하다는 의미 또한 갖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기획과 관리: 마스다는 '기획'은 곧 '창조성'이고, '관리'란 회사의 상하 체계로 '보고'를 의미한다고 한다. 창조성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보고를 요구하지 않아야 하며 자유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보통 관리를 중시하는 분위기에서는 '보고-연락-상담'이라는 과정만 마치면 일을 다했고 느끼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보고 체계는 일을 원활하게 하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자유는 사실 냉엄하다. 그것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둔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마스다의 말처럼 자유롭게 존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하고, 관행을 따르고, 시스템에 순응하며 관리는 받는 쪽이 훨씬 편하다. 그래서 자유를 내던지고 관리받는 길을 선택하는데 그런 사원들에게 진정한 기획 능력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마스다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기. 디자이너만이 살아남는다

 

상품은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기능, 다른 하는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부가가치가 아닌 상품의 본질 중 하나이다.  

 

소비 사회의 단계

1단계: 물건이 부족해서 상품 자체가 귀하므로 어떤 상품이든 용도만 충족하면 판매 가능

2단계: 인프라가 정비되고 생산력이 시장되면서 상품이 넘쳐나는 시대, 플랫폼이 필요해짐

3단계: 수많은 플랫폼이 존재해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소비가 가능한 현재

→ 단순히 물건을 생산한다고 판매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답은 '제안 능력'이다. 

 

이때 필요한 능력이 '선택하는 기술'이다. 각각의 고객에게 필요할 것 같고 가치가 있을 상품을 찾아주고, 선택해주고, 제안해주는 능력을 뜻한다. 여기에서 마스다가 말하는 '디자인'의 정의가 명확해진다. 단순히 종이에 연필로 설계도를 그리는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아닌 머릿속에 있는 어떤 지식이나 가치를 눈에 보이게 '가시화'하는 행위를 총칭하는 것이다. 즉 머릿속에 존재하는 이념이나 생각에 형태를 부여해 고객에게 제안하는 작업이 디자인이다. 또한 디자인이 곧 제안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수한 디자인인가?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제안을 내포하고, 표현되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CCC의 중심 철학은 '고객 가치'와 '라이프 스타일 제안'이라고 여러 번 강조한다. 츠타야 서점은 MPS (Multi-Package Store) 형태의 플랫폼인데, 이것은 츠타야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DVD, CD, 책, 잡지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예를 들어 하드보일드 영화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도 좋아할 것이고, 그리고 그 주인공이 좋아하는 차분한 느낌의 재즈를 듣고 싶어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두를 하나의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라이프 스타일 제안이라는 이념을 MPS의 형태로 가시화하는 작업, 이것이 디자인이고 지적 활동이기 때문에 책의 제목을 <지적자본론>으로 지었다고 한다. 1, 2단계 소비 소비사회에서는 상품을 만들고 플랫폼을 구축하는 재무 자본이 가장 중요했지만 3단계에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제안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의 기반이 바로 지적 자본인 셈이다.

 

또한 디자인 감각은 상하 관계의 보고를 통해 단련되는 게 아님을 강조한다. 마스다 본인은 전문가 수준의 자동차 디자인 지식을 가지고 있고 인테리어 분야도 흐름과 경향을 대략적으로 파악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를 자동차와 예술에 빠진 아저씨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본인에게는 취미 수준이 아니라 절박감을 가지고 열심히 배우는 분야라고 한다. 이런 태도는 배울 점이다. 

 

 

승. 책이 혁명을 일으킨다

 

이 챕터에서는 CCC의 서점 이노베이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고객에게 가치가 있는 것은 서적이라는 물건이 아니라 그 안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제안이다. 따라서 그 서적에 쓰여 있는 제안을 판매해야 한다." 기성 서점의 단순한 진열 방식을 비판하며 "긴 휴가를 앞두고 유럽으로 여행을 갈 계획을 세웠다고 치자. 그럼 어느 코너로 가야 할까. 서점 안쪽의 여행 가이드북이 진열되어 있는 코너일까. 그런데 신간 잡지에도 프랑스나 이탈리아 지역이 특집으로 다뤄졌을지 모른다. 아니, 유럽을 무대로 삼은 소설도 참고가 될 수 있다"라고 그가 생각하는 지식 디자인이 무엇인지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한다.

 

이렇게 CCC에서는 제안하는 내용에 따라 서점 공간을 구축한다는 아이디어로 2011년 도쿄에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 개관했다. "유럽을 여행한다면 이런 문화를 접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건강을 생각한다면 매일의 식사를 이런 식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는 제안 코너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지식 디자인을 위해서는 입고된 상품을 단순히 진열하는 행위뿐 아니라 기본 지식과 감각이 있어야 한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기획하는 능력이 없다면 매력적인 제안이 나올 수 없다. 

 

그 후 새로운 지점 개관, 다케오 시립 도서관 이노베이션 등 활동 영역을 확장했는데 이를 통한 CCC의 존재 의의는 "컬처 인프라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참 멋진 꿈이다!

 

 

전. 사실 꿈만이 이루어진다

 

한 번 기획을 잘했다고 그것이 끝이 아니라 꾸준히 이노베이션을 해야 한다. 

 

이 챕터에서는 인터넷 시대에 실물 매장이라는 플랫폼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긴 우리는 아마존 아이디 하나로 거의 모든 것을 온라인 주문할 수 있다. 더구나 지금같이 사회적 거리두기가 중요하고 대면을 꺼리는 시대에 인터넷 구매 플랫폼은 더욱 성장할 것이다. 이 책은 팬데믹 한참 전에 출판되었지만 이렇게 오프라인 매장 위기의 시대이기 때문에 이는 더욱 절박한 질문이 되었다. 

 

마스다는 어떻게 오프라인 매장의 매력을 창출할지 그 방법을 찾아낸 것 역시 '기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답은 인터넷과 현실의 시너지를 찾는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 택배를 이용한 대여 서비스 같은 경우이다. 인터넷의 장점은 상품 진열 공간에 제한이 없고 유지 비용이 오프라인 운영에 비해 낮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은 온라인 매장이 가지지 못하는 장점이 두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즉시성'이다. 요즘 배송이 아무리 빨라져도 온라인 주문은 클릭과 동시에 바로 상품을 받을 수 없다. 특히 바로 입수하지 못할 경우 가치가 떨어지는 상품, 예를 들면 조리식품이라면 단연 오프라인이 유리하다. 두 번째는 '직접성'이다. 예를 들면 서가의 장서를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오프라인 서점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이 깊이감을 알 것이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서 어마어마한 책에 둘러싸인 기분, 서가를 탐험하는 재미, 그리고 직접 책을 만져 종이의 질감을 느끼고 새 책의 냄새를 맡는 즐거움... 마스다는 이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 제공을 생각해냈다. 편안하게 앉아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으며 서점 주위의 직장인들이 지적 생산성이 높아지도록 또는 개인 서재가 되도록 하는 것이 그가 그린 그림이다. 

 

 

결. 회사의 형태는 메시지다

 

그렇다면 이런 지적 자본을 다루는 회사의 형태는 무엇인 좋은가? 그는 전통적인 수직 체계가 아닌 클라우드 형태의 병렬 조직으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안에서 자유를 가지고 회사의 축적된 지적자본인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기획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전통적 체계에서 중시하는 효율성을 거론하며 그것은 행복은 다르다고 말한다.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면 효율적이고 편리하다. 숲 속을 걷는 일을 효율적이고 편리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편안하고 행복하다. 지적자본을 대차대조표에 숫자로 나타낼 수 없듯이 고객의 행복감을 수량화하기는 어렵다. 기획회사는 고객의 행복을 목표로 해야 하기 때문에 효율성에만 얽매이면 안 된다. 효율성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유일한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회사 이름이 culture convenience club인데 이 양립 불가해 보이는 culture와 convenience의 균형이 목표라고 한다.

 

"자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그것을 얻으려면 신용이 필요하다.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인간은 비로소 자유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이것이 마스다가 마지막으로 강조하는 바인데 깊은 울림을 준다.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멋진 마인드다. 

 

 


 

마스다 무네아키의 제안 아이디어, 지적자본의 디자인에 공감

 

 

여행 작가인 나의 경우 새로운 곳에 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현지의 숙소, 교통, 치안, 가볼 만한 장소를 알기 위해 정보를 알려주는 여행 안내서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요즘은 인터넷에 정보가 넘쳐나서 굳이 책을 사지 않아도 된다. 온라인의 수많은 블로거들에게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행을 단순히 새로운 장소 방문해서 사진 남기기에 그치지 않고 풍요롭게 완성시켜준 것은 그 지역과 관련된 역사, 인문 또는 예술 서적이었다. 예를 들어 인도 여행 전에는 허경희의 <인문학으로 떠나는 인도 여행>을 읽으며 힌두 문화에 대해 기본 지식을 얻었다. 터키 여행을 준비할 때는 김형오의 <술탄과 황제>를 읽으며 역사 도시 이스탄불의 모습을 상상했다. 서정민의 <두바이 CEO 창조경영>을 읽고 역동적인 매력이 넘쳐나는 두바이에 꼭 가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또한 이진숙의 <러시아 미술사>를 읽고 나서 눈 오는 겨울 러시아를 상상하며 상트페테르부르크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 스스로가 제안을 한 셈이었다. 이런 방식을 서점에 도입해서 관련 지역을 떠오르게 하는 음악까지 곁들인다면 금상첨화다. 이것을 기획해 실행한 것이 마스다의 츠타야 서점이다. 지금이야 흔한 방식이지만 츠타야가 실행에 옮긴 선구자였다.

 

또한 특별한 능력이 필요 없는 기계적 진열 방식과 달리 식견과 교양이 요구되는 고도의 편집 작업이기도 하다. 내가 유럽 여행에 관심 없고, 잘 알지 못한다면 혹은 단순히 좋아하기만 할 뿐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통찰력이 없다면 이것으로 수익을 창출해낼 수 없다. 

 

 

나의 그랜드 투어 페이지에서 어떤 지적자본을 디자인할 것인가?

 

 

나에게 이 책의 가장 큰 의미는 나의 그랜드 투어 페이지 운영 방식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주었다는 것이다.

 

1. 지금 같은 팬데믹 시대에 국가 간 또는 대륙 간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여행기가 매력적일 수 있다. 

 

특히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북쪽은 육지지만 막혀서 완전히 고립된 지정학적 위치의 우리나라는 마치 해외여행이 생소했던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다. 어떤 것에 대해 제재가 없고 얻기 쉬우면 사람들은 간절히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장벽이 생기면 없던 열정마저 솟아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특히 억누를수록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힘이 강해진다. 정말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답답할 수가 없는 시기이다. 우리나라에 아름다운 장소가 수없이 많지만 국내 여행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 여행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일상에 벗어남'인데 한국이 일상생활의 터전이니 여유 시간은 외국에서 보내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럴 때 상대적으로 국경을 건너기 쉬운 유럽에 거주하기 때문에 쉽게 글감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비교적 덜 알려진 곳을 찾아가 보고 그곳에 대한 방문기를 쓸 수도 있고 이게 새로운 제안이 될 수도 있다.  

 

2. 나의 여행기는 여행 정보보다 간단한 인문·사회 지식을 곁들인 개인적 감상 위주이다.

 

이미 여행 정보는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또한 성의 있게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는 글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거기에 나까지 같은 정보를 보탤 이유는 없다. 홈페이지 또는 블로그는 장문의 텍스트에 가장 적합한 플랫폼인데 이를 통해 내가 제안하고자 하는 바는 여행 정보보다는 '느낌' 그리고 '감상'이다. 그리고 단순히 어디 가서 어떤 기분을 느꼈다는 감상이 아니라 역사, 심리, 미술사, 사회 과학 같은 기본적인 지식을 곁들여 깊이를 더한다. 예를 들어 두바이 여행기는 많은 사람들이 딱딱하게 여기는 정치나 경제 부분에 대해 같이 다뤘고,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관 기행문에서는 미술 자체보다 '매력'과 '미'에 대해 더 많이 썼다. 룩셈부르크 여행기는 마치 원색을 사용하지 않은 수채화처럼 감상만 가득하다. 

 

최신 여행 정보를 가득 제공하고 화려하게 연출된 사진을 많이 사용하면 당장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을 많이 끌어모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개인적 감상 위주의 기행문이라는 방향으로 가는 이유는 장기적 시각에서 봤을 때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기획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누가 됐든 개인의 감상은 세상에 단 하나뿐이고, 비슷할 수는 있어도 같을 수는 없다. 다시 읽게 되는 여행기는 기본적인 글쓰기 실력을 갖춘 상태에서 그 사람의 독특한 시각이 잘 나타난 글이다. 

 

만약 똑같은 장소에서 풍경을 그리라고 한다면 100이면 100 똑같은 그림은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이 여러 장의 그림을 그린다해도 다 다를 것이다. 이처럼 여행기 역시 한 장소에 있었다고 해도 본 것은 같을지언정 감상과 그 표현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여행의 목적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을 확인하는 과정이 아닌 그 존재로부터 어떤 느낌을 얻는 것이다. 눈으로 보고, 입으로 먹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난 다음 이것을 기록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감상과 더 나아가 얻게 된 통찰력이 있다면 함께 언어로 나타내는 것이다. 

 

3. 여행기와 독서를 혼합한 이유는?

 

이 두 가지가 내가 가진 지적 자본의 핵심이다. 나에게 여행과 독서는 뗄 수 없는 존재이고 내가 잘 다룰 수 있는 분야의 혼합이다. 독서를 통해 가진 지식이나 감상을 가지고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다. 또는 어떤 하나의 주제와 여행지에서의 경험을 버무려 글을 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은 무엇에 매력을 느끼는지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면 여행지에서 마주친 어떤 그림이나 어떤 사람으로부터 답을 얻을 수 있다. 책에서 읽은 매력에 대한 내용을 여행지에서 접한 그 무언가와 접목해볼 수도 있다. 또는 알랭 드 보통이 <영혼의 미술관>에서 제시한 심리치유적 미술 감상 방식을 응용하여 여행이라는 퍼포먼스 도구를 통해 현재 내가 가진 삶의 화두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도 있다.

 

4. pleasure 그리고 gratification

 

독서 기반으로 여행을 통해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pleasure'가 아닌 'gratification'이다. 지적자본을 디자인해 얻고자 하는 최종 목표인셈이다. 이는 긍정심리학으로 유명한 마틴 셀리그만이 그의 저서 <Authentic Happiness>에서 제시한 행복과 관련된 개념이다. pleasure는 감각의 충족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향 좋은 커피, 재미있는 영화와 유튜브, 맛있는 음식, 알딸딸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술과 같이 바로바로 감각을 즐겁게 해 주는 것들이다. 가장 큰 특징은 그 즐거움이 빠르게 사라진다는 것이다. gratification은 장시간 꾸준히 지속되는 만족감을 뜻한다. 오랜 시간의 노력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하거나 지속적 몰입을 통해 자신의 목표를 이뤘을 때 찾아오는 만족감이다. pleasure가 없는 삶은 너무 건조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행복감을 느낄 수가 없기 때문에 pleasure와 gratification이 골고루 필요하다.

 

여행을 통한 즉각적인 감각의 충족은 중요하다. 일상을 벗어났을 때 가질 수 있는 즐거움이 여행의 기본 목적이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체크인하고 보딩 타임 기다리는 설렘, 감각적인 인테리어의 호텔, 새로운 레스토랑, 길거리의 소소한 풍경까지. 하지만 여행 후 금방 연기처럼 사라져 버려 그 즐거움은 지속되지 않는다. 이렇게 여행이 지나간 후에도 허탈감이 아닌 그 여행을 오랜 시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내가 추구하는 바이다.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여행이 gratification 충족의 수단이 되게 할 수 있는가?" 에 관해서이다. 그 방법이 바로 나만의 독특한 시각을 담은 여행기를 작성해 실제 삶의 에너지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기획'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네이버 블로그 기반으로 활동하는 A 여행 작가를 존경한다. 그분은 나와 다르게 개인적인 이야기보다는 정보 제공 위주의 글을 쓰는 작가다. 실제로 여행정보 관련 책 몇 권을 출판한 경력도 있다. 나와 방향이 다름에도 존경하는 이유는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지만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 여행을 통해 gratification을 달성한 여행 작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A 작가는 롱런하고 있다. 내가 그녀의 글을 처음 본 것은 2013년에 인도 여행을 준비할 때였다. 이후 8년이 지난 아직까지 꾸준히 양질의 포스팅을 하고 있고 심지어 여행업이 직격탄을 맞은 팬데믹 시기에도 나름대로 방향 설정을 해서 본업에 충실하고 있다. 그녀에게 여행은 단순히 감각을 충족시키고 지나가는 취미가 아니다. 직업이자 생계수단이고 이는 여행이 수익이 되도록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함을 의미한다. 즐거울 수만은 없는 이 과정을 통해 직업적 자부심과 마켓에서의 실력(수익)이 동시에 성장했을 텐데 그 과정에서 grafication을 느끼지 않기란 어렵다. 나와 같은 독자들은 그녀가 올린 글과 사진을 편하게 즐기면서 읽지만 하나의 포스팅을 위해 자료를 정리하고 글을 다듬는 과정을 꾸준히 하는 것은 오랜 수련과도 같은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정말 존경스러운 일이다. 한때 바짝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이 글의 주제인 지적자본에서는 약간 벗어나지만 말이 나왔으니 무엇보다도 그녀는 멘탈이 참 건강한 사람으로 느껴져서 좋다.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바람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은 반복 작업, 인내, 꾸준함보다는 즐거움, 즉시성, 열린 마음 이런 가치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그저 개인의 성격 특성일 뿐 틀린 것이 아닌데, 우리 사회에서 여행을 많이 다니면 허세에 취해 현실에 불성실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쉽다. 일은 제대로 하냐, 그래서 돈은 언제 모으고, 집은 언제 사려고. 분명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관이 확고함에도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보니 주변의 평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본의 아니게 여행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은연중에 자신이 '틀리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음을 인정받으려고 한다. 심리학적 용어로 자기 방어 기제가 발동되는 것이다. 드물지만 자기 방어의 정도가 지나치면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그 자신이 반대로 타인의 삶을 부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A 작가의 글에서는 그런 불안감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전전긍긍하는 느낌이 없고, 자기변명이 없고, 자신은 항상 아무 문제없이 행복하다는 식의 과장도 찾아볼 수가 없다. 또한 그 누구보다 여행 전문가일 텐데 한 수 가르치겠다는 고압적인 자세도 전혀 없다. 그런 건강한 태도가 정말 보고 배울 점이다. 

 

 

이 책을 통해 기획의 관점을 가지고 나의 그랜드투어를 이끌어 나갈 방향에 대해 다시 한 번 정리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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