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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 지음 본문

독서기록/2021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 지음

Writer Hana 2021. 7. 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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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의 미술관: 예술은 우리를 어떻게 치유하는가>

알랭 드 보통

김한영 옮김, 1판 4쇄

 

- 목차 -
서문
방법론
사랑
자연

정치

 

영혼의 미술관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현대 세계에서 예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럼에도 예술과의 만남은 항상 기대한 바대로 이루어지진 않는다. 유명한 그림이나 명성 높은 전시회를 보고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때도 있다.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아는 거장의 작품, 예컨대 피카소를 작품을 보면서도 '도대체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무엇이 훌륭한 거야? 왜 나는 아무 느낌도 없을까?' 이런 감상만이 머리에 가득할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은 문제의 뿌리가 일차적으로 개인에게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주류 예술계가 예술을 가르치고, 팔고, 보여주는 방식에 있다고 말한다. '예술을 위한 예술'로써 신비한 영역에 머무르게 둘 것이 아니고, 예술은 도구일 수 있고 우리에게 어떤 이익을 줄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보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선 '도구로서의 예술'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도구는 소망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신체의 연장물이다. 칼은 우리가 무언가를 잘라야 하는데 그럴 수 없어서 나온 무능함의 결과물이듯이, 예술은 우리의 심리적 취약점에 대한 결과물일 수 있다. 예술의 가장 보편적이고 설득력 있는 일곱 가지 기능은? 

 


방법론

 


예술의 일곱 가지 기능: 기억 / 희망 / 슬픔 / 균형 회복 / 자기 이해 / 성장 / 감성

1. 기억

"우리는 기억하는 데 서툴다. 우리의 마음은 난처하게도 사실적이든 감각적이든 중요한 정보를 잘 잊어버린다. 글쓰기는 분명 망각의 결과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이고, 미술은 그다음으로 중요한 방편이다."

인류는 기억하고 싶은 것을 그림으로 남겼다. 문자가 발명되기 전 그림으로 기록을 했고, 위대한 왕이나 인물의 행적을 그림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현대에는 그림이 카메라로 대체되었고 둘 다 시각 예술이다. 나 역시 기억하고 싶은 순간, 감동적인 순간, 특별한 순간에 카메라를 꺼내 든다. 예를 들어, 여행할 때, 파티를 할 때, 우연히 멋진 장면이나 유명한 사람과 마주쳤을 때, 무언가를 했거나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남겨야 할 목적 등 다양하다. 이렇게 보면 미술은 편리한 도구이다. 알랭 드 보통은 이에 한 단계 더 나아가 장면의 무작위적 기록이 아니라 개성과 본질을 포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르메이르는 모델이 지닌 성격의 핵심을 포착했다. 이는 단지 한 개인의 기록이 아니라, 그녀가 구체적이고 특별한 기분에 사로잡혔을 때 어떠한지 보여주는 이미지다."

2. 희망

"가장 지속적으로 인기를 누리는 미술의 범주는 쾌활하고, 즐겁고, 예쁜 것들이다. 봄날의 초원, 뜨거운 여름 한낮의 그늘, 전원 풍경, 미소 짓는 아이들. 취향과 지성을 겸비한 사람들은 이 말에 눈살을 찌푸릴지 모르겠다."

"예쁘장함을 사랑하는 마음은 종종 저급하고 심지어 '나쁜' 반응으로 간주되지만, ... 우리가 예쁜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그림에 표현된 실제 대상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모네가 그린 연못이 있는 정원은 그 자체로 즐거우며, ..."

 

수련 연못, 클로드 모네. (1899). 출처: https://terms.naver.com/

알랭 드 보통오 이 <수련 연못>을 책에서 제시하고 있다. 이 그림은 장엄한 역사를 묘사한 것도 아니고 사회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좋은 그림이다. 클로드 모네의 이름값 때문이 아니라 이 그림을 보면 예뻐서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이유 두 가지가 있다. 첫 째, 예쁜 그림은 현실의 문제들을 무시한 채 감상벽만 채워준다는 것이다. 둘째, 예쁘장함만을 좋아하면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켜 주변의 부당함을 비판하고 경계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은 이것은 기우라고 한다. 현시대는 과도한 우울함이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사람들은 세상의 부조리함도 알고 있다. 세상을 너무 밝게 보는 사람들 탓에 생기는 문제는 별로 없다. 그보다 끊임없는 고민거리가 우리의 희망을 빼앗아가기 때문에 이를 지킬 도구가 필요한데 그림이 제격이다. 예를 들자면 삶이 고단할수록 우아한 꽃 그림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이상적 이미지를 일반적인 현실의 잘못된 묘사로 간주하지 않고 즐길 줄 알아야 한다."

3. 슬픔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의외로 중요한 기능들 중 하나는, 고통을 보다 잘 견디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데 있다고 한다.

승화: 슬픔이 예술을 만날 때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천하고(이 단어는 번역이 좀 이상하다) 보잘것없는 경험이 고상하고 세련된 경험으로 변환되는 심리적 변형 과정이라 한다. 

 

숭고: 낭만주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숭고함. 삶의 고난은 웅대하고 진지하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하고, 웅장한 대양이나 대륙 묘사 앞에서 일상의 초조와 근심 무력화시킨다고 한다.  

4. 균형 회복

너무 진지하거나 너무 명랑하거나, 너무 바쁘거나 너무 심심하거나 이렇게 균형을 잃었을 때 예술이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자신이 삶에서 놓치고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찾아내 그와 관련된 예술작품을 선택해서 감상하면 된다. 예를 들어, 과도한 업무에 치여 정신없는 삶을 살고 있다며 균형 잡히고 잘 정돈된 미니멀한 스타일의 집안 인테리어를 고려해볼 수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조용하고 졸린 행정업무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면 플라멩코 음악, 프리다 칼로의 그림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사람마다 다른 미적 취향을 가진 이유를 설명할 수도 있다.

개인뿐 아니라 집단 그리고 사회 전체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예술로 보완할 수 있다. 삶이 더 복잡하고 인공적이 되고, 실내에서 더 많이 생활함에 따라 자연을 소재로 한 미술과 건축이 인기 있다. 또한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어떤 예술작품이 인기를 얻었는지 살펴보면, 그 시대의 특수한 불균형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알랭 드 보통은 책 42, 43페이지에서 가마 속으로 불순물이 들어가 표면 전체가 얼룩진 조선 시대의 달항아리를 '겸손'이라는 주제와 함께 소개한다. 

조선 백자 항아리. 책 43 페이지

"그 결함들은 항아리가 신분 상승을 향한 경주에 무관심하다고 시인할 뿐이다. 거기에는 자신을 과도하게 특별한 존재로 생각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지혜가 담겨 있다. 항아리는 궁색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존재에 만족할 뿐이다. 세속의 지위 때문에 불안해하는 사람에게 또는 이런저런 집단에서 인정받고자 안달하는 사람에게, 이런 항아리를 보는 경험은 용기는 물론이고 강렬한 감동을 줄 수 있다."

"바탕은 진실하고 착하지만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방어하려고 되레 오만이 습관처럼 쌓인 사람이 이 달항아리를 찬찬히 살펴본다면 어떨까."

 

우리는 보통 "하얗고 소박하고 선비 같고 어쩌고" 할 텐데 알랭 드 보통의 해석 방식은 참신하면서도 운치 있다. 

5. 자기 이해

예술에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타인과 소통하게 해주는 능력이 있어서, 우리는 주변에 어떤 작품을 둘지, 인테리어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과 오브제가 나를 나타내 준다? 

6. 성장

낯선 작품 또는 거부감이 드는 작품을 보면 방어 의식이 발동된다. 예를 들어 '나는 종교화를 보면 위선적으로 보여서 역겨워', '나는 아프리카의 조각품을 보면 아프리카의 사회적 문제가 떠올라서 싫어', '귀족은 다 도둑이라 귀족을 그린 그림은 내 취향이 아니야' 이런 식의 방어적 태도는 자신의 발전을 저해할 뿐이다.

일단 특정한 상황에서 느끼는 낯선 감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큐레이터는 관람자들이 전시된 작품들을 이미 좋아할 것이고, 약간의 지식을 알려주면 더 좋아할 거란 착각을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일단 해야 할 작업은 그림 또는 화가와 나의 연결고리 찾기. 자신에게 낯설거나 불쾌했던 그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질적인 것과의 연결점을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심리적으로 견고해지고 한층 성장하게 된다고 한다. 이것을 현실의 삶에 적용하면 내가 좋아하지 않고, 잘 모른다는 이유로 심리적 방어벽부터 세우지 말고, 알아가고 인식을 확장하며 성장하라는 것이다.

 

7. 감상

 

습관은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지만 이 습관화로 인해 익숙하지만 주의 깊게 교감할 만한 것들을 마음에 새기지 않게 된다. 예를 들어 맥주캔의 생김새에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예술작품으로 표현된 맥주캔은 익숙한 물건을 다시 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캔의 생김새, 브랜드 로고의 아름다움 등을 감상하며 그냥 지나치던 것들을 감상하게 된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보다 다정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라." 맥주 캔 하나 자세히 감상한다고 인생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시각을 수많은 사물, 상황, 분위기, 사람에 적용하면 큰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꼼꼼하게 세부 사항을 관찰하는 능력은 나에게 부족하기도 하다. 큰 그림과 숲은 잘 보는데 꼼꼼하지 못해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림 감상 방식은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또한 예술은 우리가 가까이서 놓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우리가 말하는 화려함은 주로 다른 곳에, 즉 모르는 사람의 집에, 잡지에 나온 파티에, 돈과 인기를 거머쥐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의 삶에 있다. 우리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접 누릴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유혹에 노출되는 것은 미디어가 지배하는 사회의 본질상 자명한 일이다." 라며 화려한 이미지의 홍수 속에 갈 길을 잃은 현대인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렇게 화려한 이미지가 문제이지만 역설적으로 이미지가 영혼을 치료하기도 한다며 이때 미술 작품 감상이 도움이 될 것이라 조언한다. 

 

"이미지는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큰 원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에게 해독제를 건네주어 면목을 세우기도 한다."라며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의 <차 마시는 여인>을 제시한다. 

 

 

A Lady Taking Tea, Jean-Baptiste Simeon Chardin. (1735).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소박한 옷차림, 소박한 찻잔 세트, 소박한 가구에 심지어 배경은 텅텅 비었다. 하지만 이 그림을 보며 편안함을 느끼고 일상의 진정한 가치를 의식하게 된다. 사실 우리의 삶은 흥미진진함,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아니 오히려 매일 두근두근거리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심장에 무리가 올 것이다.

 

시각의 영향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상상 이상인 듯하다. 그런데 이 시각의 영향을 반대로 영혼을 달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발상은 신선하다. 그리고 삶은 바로 이곳에 있다. 멀리서 찾지 말자.

 

 

우리는 무엇을 훌륭한 예술로 간주하는가?

 

 

무엇이 훌륭한 예술인가에 관련된 개념은 저절로 형성되지 않는다.

 

해석의 방식

기술적 방식: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이 훌륭한 이유는 '스푸마토' 기법을 도입했기 때문이라 보는 것이다.

정치적 방식: 본인이 추구하는 정치적 가치에 충실한 그림인지 살펴보는 방법이다.

역사적 방식: 그림은 과거의 복식, 건축, 경제, 사회, 종교 등 한 시대를 시각적으로 풍부하게 보여준다.

충격가치적 방식: 우리가 당연시하는 제도나 가치에 도전장을 내미는 충격적 작품이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치유적 해석 방식: 이 책이 중점적으로 다루는 방식이다. 이 책의 원제목이 <Art as therapy>이기도 하다. 예술은 심리 치유에 도움이 된다. 

 

"예술에서 무언가를 얻었다면 이는 그 예술을 이해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깊이 있게 탐구했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이나 국가 이데올로기가 아닌 인간관계, 직장 생활, 사랑, 돈처럼 현대인의 삶에서 중요한 주제를 다룬다. 

 

 

예술 작품을 어떻게 전시해야 하는가?

 

 

"학술적 범주에 집착하는 태도는  감성적 질서와 통찰력을 이끌어내 유지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 미술관은 교회와 사원이 개척한, 변형적이고 구원적인 예술의 힘이라는 개념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미술의 기원이라 여겨지는 선사 시대의 벽화와 오랜 시간 인류의 미술사를 이끌어온 종교 미술은 모두 기원·구원·소원 성취, 즉 심리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학술적 구분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심리치료의 관점에서 작품을 배치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고통의 전시실 / 자비의 전시실 / 두려움의 전시실 / 사랑의 전시실 / 자기 이해의 전시실 이렇게 말이다. 

 

이 부분까지가 예술의 기능과 어떻게 감상하고 삶에 적용할 것인지 '기술적 이론'이고, 이다음부터는 사랑, 자연, 돈, 정치 이렇게 우리의 삶과 밀접한 네 가지 주제를 미술 작품과 관련지어 '심리치료적 실용'으로 다룬다. 

 

 

 


 

이 각론 파트에는 주옥같은 감상법이 많이 소개되어 두고두고 반복해서 읽게 되는 부분이다. 자기 계발, 심리, 역사 등 인문학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미술 작품을 통해 와닿게 이야기해준다. 

 

 

사랑

 

우리는 사랑은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낭만주의 시대에 살고 있어서 더 잘 사랑하고 더 좋은 연인이 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이 바람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은 아무 노력이 필요 없는 '감탄'이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에 더 좋은 사랑을 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숙고하고 연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말에 예의 바르게 귀 기울이는 능력, 인내심, 호기심, 회복력, 관능, 이성 같은 것. 이때 예술이 도움을 줄 수 있다. 예술 작품의 도움으로 우리는 사랑을 할 때 발생하는 어려움을 인식하고 소중한 사랑을 지키고 유지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자연

 

멋진 자연 풍경은 우리를 매혹하지만 그것들이  왜 우리에게 중요한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이때에도 예술이 도움을 준다. 또한 자연을 묘사한 작품을 보며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이고,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교훈을 준다. 

 

 

 

예술 작품이 자본주의 개혁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인식을 제시한다. 그리고 돈을 버는 방법이 아닌 쓰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예를 들어 메디치 가는 막대한 자본으로 아름다운 건축물 창조했다. 반면에 호주의 성공한 사업가는 눈에 거슬리는 전혀 아름답지 않은 대저택을 지었다. 확연히 비교되는 모습을 보며 취향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또한 알랭 드 보통은 현명한 지출이 중요한데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아닌 소비자의 취향이 문제라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급자는 소비자가 지갑을 열기만 하면 무엇이든 만들어 바치므로 전적으로 생산자 책임이라기보다 그런 안목 없이 저질의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개개인이 아닌 대중은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지도 않고, 본인과 같이 최상급의 심미안을 가지고 있는 인구수는 극히 적다는 사실을 알랭 드 보통은 모르는 것 같다.  

 

 

정치

 

예술과 개인이 아닌 예술과 집단의 관계를 출발점으로 한다. 예술은 약자의 편에 서서 정치적 변화를 촉구하기도 하고, 권력자들의 손에 의해 통치의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만큼 예술은 감정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정치 미술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예로 들자면 점점 공격적이고 조급 해지는 현대인에게 평온함과 용서를 독려하는 작품을 제시하자고 한다. 그러면 뉴스를 볼 때 덜 고함을 지를 것이고 인터넷에 악플이 적게 달릴 것이라고 한다. 

 

또한 예술은 한 나라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당연히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을 강조하기 위해 좋은 점을 보여주는 것도 정치 미술의 임무라고 주장한다. 자부심은 인간의 기본 감정이고 중요한 문제이다. 정치 미술은 자부심을 느낄 줄 아는 능력을 빗나가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 또한 예술의 임무라고 한다. 

 

 

 


<미술을 감상하는 방식>

 

이 책에서 제시하는 심리치유적 미술 방식은 신선하고 훌륭한 방법이다. 미술 방법론과 서양 및 기독교의 역사도 잘 모르는데 그림을 봤자 지루하기만 할 뿐 아무런 감동도 없다. 느낌 위주로, 현재 자신이 가진 문제와 연결 지어 감상하는 것은 좋은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기술적 · 역사적 지식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도 있다. 모든 작품을 심리치유적 방식으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클림트의 <키스>처럼 복잡한 배경 지식 없이도 나름대로 감상 가능한 그림이 있지만 고전 예술의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파리스의 심판>을 보며 그리스 신화 내용을 모른다면 그 그림이 의미가 있을까?

 

 

파리스의 심판, 루벤스. 1639년 경. 출처: 네이버 미술백과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위의 그림을 보면 '음... 왼쪽에는 남자 두 명이 있고, 오른쪽에는 나체의 여자 세 명이 있군. 그런데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남자 한 명이 손에 뭘 쥐고 있는데 세 명의 여자가 그걸 갖고 싶어 하는 것 같네? 유혹하는 장면인가?' 이 정도로 그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배경 지식이 있다면 이 그림은 결코 가볍지 않게 된다. 

 

<파리스의 심판>은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의 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결혼과 가정의 여신 헤라,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 그리고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이렇게 그리스의 대표 세 여신이 한 자리에 모여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 겨루게 되었다. 이때 파리스가 심사위원으로, 그러니까 최종 결정권자로 지정되었고 헤르메스가 보조 위원이 되었다. 승자에게는 황금 사과가 수상된다. 

 

세 여신들은 헤르메스에게 반대급부를 제시하며 자신을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선정해달라고 거래를 시도한다. 헤라 여신은 신 중의 신 제우스의 아내로서 여왕답게 부귀영화와 권세를, 아테네는 전쟁에서의 승리와 명예를,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줄 것을 약속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남자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권력, 자존심, 예쁜 여자' 이렇게 세 가지다. 결국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선정했는데 이는 결국 남자가 원하는 세 가지 중에서도 궁극점은 바로 예쁜 여자를 차지하고자 하는 욕망이라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남자의 본성이 이러할진대 예쁜 여자 밝힌다고 남자들을 비난할 일만은 아닌 듯하다.  

 

한 단계 나아가 연애 문제로 고민이 있는 여성이라면 이 그림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통찰력을 제공해주는 그림이 된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어서 잘해보고 싶거나 이미 연인 사이인데 지지부진하다면 남자가 원하는 세 가지 '권력(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의 남성성이라고 볼 수도 있음), 자존심, 예쁜 여자' 이 세 가지 중 무엇이 빠졌는지 살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남자를 남자로 인정해주지 않고 얕보는 것은 아닌지. 자존심이 강한 남자인데 사소한 것도 그냥 넘지기 않고 물고 늘어져 사람을 피곤하게 하지 않는지. 성형 미인처럼 예뻐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을 방치 상태에 가깝게 두지 않았는지. 물론 요즘 각광받는 가치관에 따라 내가 가장 소중하고 나는 특별한 존재이고 내 기분이 가장 중요하며 내가 우주의 중심이라면, 그렇게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살펴볼 필요도 없고 굽힐 필요도 없다. 다만 그렇게 되면 연인 또는 부부 관계 또한 쉽지 않을 것임을 예상해야 한다.  

 

이에 더해 루벤스는 바로크의 거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림 속 인물들의 역동적인 포즈, 또렷한 명암 대비, 현실이 아닌 신화라는 고전적 제재와 같은 바로크의 특징도 금세 인식이 될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배경 지식이 조금만 있으면 그림 하나에서 무한한 배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는 기술과 개인적 감상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미술의 궁극적인 목적>

 

p. 230 "인간과 예술의 교감에서 기대할 수 있는 궁극적인 야망은 예술의 가치들을 세속에서 실현시키는 법을 발견하는 것이다." 예술에서 현실에 도움이 될 가치를 발견하는 것, 교훈적 목적에 동의한다. 이는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이 예술 그리고 미술의 궁극적인 목적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미술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장식'으로써의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네의 환상적인 <수련 연못>과 수많은 꽃 정물화를 보며 반드시 교훈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미술 작품은 현실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하지만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 주고 아름다움 자체를 보여주는 작품도 많다. 

 

우리가 집에 꽃화분을 두고, 향수를 사용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감동적인 영화를 보는 것은 반드시 심리 치료와 교훈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냥 즐겁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대인은 이미 일상생활에 지쳐있고 피곤하다. 항상 바쁘고 정신없는데 미술작품 감상마저 무언가를 배워야 할 교육의 시간이 되어야 하고 생산성을 강조한다면 그야말로 지쳐 나가떨어질 일 아닌가.

 

 

<번역에 대하여>

 

이 책은 '예술'과 '미술'이라는 용어를 섞어 사용하고 있다. 원제목이 Art as therapy인데 Art는 예술, 미술 둘 다 해당하지만 주로 미술의 개념으로 쓰인다. 게다가 예술이라 하면 미술뿐 아니라 음악, 문학, 무용, 영상, 사진 등 다양한 분야를 총칭하는데 이 책은 회화와 조각 같은 미술 작품만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번역에 따라 책 내용을 간추릴 때 위에서 예술이라는 말을 주로 썼지만 '미술'로 통일해서 번역해야 옳다고 보인다.

 

또한 언어는 사회의 반영이기 때문에 영어와 우리말은 같은 내용을 의미해도 기술적인 표현 방식이 다르다. 원작자의 의도를 최대한 살린 직역 또는 독자를 배려한 의역 중 무엇이 더 절대적으로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원작자의 의도를 살린다고 기계처럼 직역을 해버리면 원작자의 의도는 둘째치고 책 자체가 읽기 난해해질 수도 있어서 어느 정도 의역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한 번 읽고 갸우뚱해져서 두 번 세 번 읽게 되는 문장들이 많아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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