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투어: 여행과 독서 기록

<여신의 역사> 베터니 휴즈 본문

독서기록/2022

<여신의 역사> 베터니 휴즈

Writer Hana 2022. 6. 9. 18:17
반응형

<여신의 역사>
부제: 비너스, 미와 사랑 그리고 욕망으로 세상을 지배하다
베터니 휴즈

 

여신의 역사. 베터니 휴즈


저자는 무려 40년 동안 아프로디테-비너스 여신이 남긴 자취를 따라 사이프러스 섬에서부터 중동 지역의 고고학 발굴터, 발트해, 카스피해, 런던까지 현지답사를 다녔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발견한 것들을 책으로 냈다. 비너스 하면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미인, 파티 퀸, 예쁜 여자, 그리고 속옷 브랜드 이런 이미지가 전부다. 하지만 왜 고대의 인간은 아프로디테 (그리스식 이름)-비너스 (로마식 이름)를 숭배하게 되었는지,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그녀에게 기도를 하고 그녀를 위한 축제를 열었는지 보면 그렇게 단순하게 볼 대상이 아니다. 종교는 어느 날 마법처럼 짠 하고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당대 인간의 필요와 소망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여신 숭배도 마찬가지다.


여신의 탄생: 인류의 욕망이 수면 위로 드러나다

비너스를 그린 그림하면 거품에서 태어나는 모습, 바다에서 걸어 나오는 아름다운 나체의 여인 그림이 가장 유명할 것이다. 실제 아프로디테-비너스 숭배의 기원은 지중해의 사이프러스 섬에서 시작되었다. 다산을 상징하며 강렬한 성적 특성을 지니는 인물상이 그곳에서 많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신화가 옳은 한 가지는 아프로디테는 정말 바닷길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모든 생명의 근원은 물이라고 정말 생명력은 물과 뗄 수 없다.


사랑과 파괴의 욕망을 관장하는 무시무시한 힘

아프로디테-비너스는 복잡한 존재다. 그녀는 두 번 탄생했는데 한 번은 사이프러스의 바다에서 다산과 생식을 상징하는 고대의 신으로, 다른 한 번은 더 동쪽 (현재의 중동 지역)에서 전쟁의 여신으로 추앙받았다. 사랑과 생산의 여신이 전쟁의 여신이기도 하다고? 직관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이해가 된다. 욕망과 충동이란 것은 사랑을 향한 욕망이든 전쟁을 향한 욕망이든 같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던가. 또한 실제 사랑이란 행복감만 주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주기도 한다.

중동 전역에서 전쟁의 난폭한 열정이 여성의 모습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수메르의 이난나, 아카드와 바빌로니아의 이슈타르, 페니키아의 아스타르테 이렇게 세 여신이 대표적이다. 활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젊은 여자로 자주 묘사되는 이 여신들은 원래 금성 (비너스)이라고 부르는 행성과 연관된 천상의 존재들이라고 한다. 금성은 실제 일관된 경로로 이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전쟁하면 남성적 이미지와 연결되는데 왜 이성, 용기, 뛰어난 전략을 통한 전쟁에서의 승리를 주관하는 남신이 아닌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여신의 모습으로 묘사하게 되었을까? 어쩌면 실제 전쟁이란 마초들이 상상하듯 그렇게 멋지고 로망 가득한 것이 아니라 예측 불가한 공포를 안겨주고, 일상의 평화를 철저히 파괴하며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추악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 밑바닥을 보여주는 현장이라는 것을 고대인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이러한 인간 본성은 남녀의 구별이 없는 법인데도 농경과 사유 재산 축적이 시작되고 부계 사회로 넘어가면서 남성을 그렇게 묘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까?

 

중동지역 전쟁의 여신들

좌: <관능적인 이슈타르> 기원전 1130년경. 이란 수사의 엘람 제국 유적지에서 출토
우: <버니의 부조> 또는 <밤의 여왕>. 기원전 18세기경. 바빌로니아 출토


저자가 시리아 남서부의 한 도시를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알아사드 정권의 대대적인 공습으로 수많은 문화 유적이 파괴되었고, 부스라 박물관에 있던 아프로디테 여신상 조각도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공습으로 집을 잃은 시리아 난민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런 사태를 직접 겪고 나자 아프로디테의 조상이었던 여신들의 무시무시한 힘을 이해했다고 한다. 빛과 어둠을 함께 지닌 살벌하고 끔찍한 신. 이러한 여신들이 길을 떠나 서양으로 넘어간 후 변하고 마침내 아프로디테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변화의 시작점은 터키 아나톨리아 아래 지중해에 있는 키프로스 또는 사이프러스 cyprus라고 불리는 섬이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섬답게 다양한 문화가 섞인 곳이다. 저자가 방문한 할라 술탄 테케 고대 도시 발굴터에서 아이를 돌보는 여신 등 다양한 여신상과 화려하고 경이로운 장신구들이 출토되었고, 향수 작업장도 발굴되었다고 한다. 출산과 양육, 장신구로 외모 치장, 향수. 아프로디테-비너스를 잘 나타내주는 키워드다. 이 부분을 읽을 때 키프로스에 꼭 여행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프로스에는 청동의 원료가 되는 구리가 풍부하고 구리 채석장 근처에서 여신을 기리는 사원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불과 야금술은 아프로디테 숭배에서 중심이 되는 요소인데 재미있는 점은 전쟁의 이미지와도 연결되고, 이러한 이유로 아프로디테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와 결혼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정말 그럴듯하다. 신화라는 게 인간의 머릿속에서 뜬금없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구나.


생기 넘치고 관능적인 아프로디테 숭배의 현장과 만물을 뒤섞는 여신의 본성

기원전 1150년 경 청동기 문명 쇠퇴했다. 미케네 문명이 붕괴하고 크레타섬과 유럽 본토의 주민들은 에게해를 건너 동쪽과 북쪽으로 이동했고 이때 그들이 숭배했던 여신도 함께 이동했다. 그때 사이프러스에서 만들어진 인물상과 신전에도 변화가 생겼다. 사람들이 섬겼던 세 여신이 하나로 혼합된 것이다: 사이프러스의 자연신 + 성애와 전쟁을 주관하는 동양의 여신 + 다산과 인간관계를 상징하는 그리스 여신

현재 사이프러스 팔레오 파포스에서 몇 킬로 떨어진 곳에 공군 기지가 들어서 있다. 하지만 한때 세계에서 가장 신성한 아프로디테 성소가 있던 곳이다. 그곳의 호화로운 유물들은 끊임없이 약탈당했지만 지금도 발굴 작업이 진행되는 중이다. 현재까지 생기 넘치고, 강렬하고, 관능적인 모습의 여신이 새겨진 항아리를 비롯해 약 4천 개의 유물 발굴되었다고 한다.

아프로디테는 단순한 사랑의 여신을 넘어선 훨씬 더 강력한 '믹시스'의 화신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인은 믹시스가 만물을 융합하는 촉매라고 믿었다. 세상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친분과 성교, 관계와 연결, 협력을 장려하는 것이다. 여성과 남성이 육체적으로, 문화적으로, 감정적으로 어울리도록 권장한 아프로디테, 크고 작은 경계를 넘어 관계를 맺도록 인간을 자극하는 역할이다.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만들고 시민 공동체의 화합을 격려한 것이다.

'만물을 뒤섞는' 본성을 지닌 데다 바다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육지를 떠나 탁 트인 바다로 나아가는 배를 수호하는 신으로도 알려졌다. 그래서 아프로디테 사원은 항구 도시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이다. 실제 항구 도시의 아프로디테 신전은 매춘 장소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신성한 행위로 여겨졌는데 당대인의 상식으로 성은 죄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교의 억압을 받기 전 성을 신성시했던 고대의 신라가 떠오른다.

고대 문화에서 아프로디테는 가볍고 자유로운 육체적 만남을 도울 뿐만 아니라 결혼과 임신을 돕고 보호하는 신이기도 했다. 고대 아테네는 국가가 나서서 아테나와 아프로디테를 신성시했는데 도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시민의 결혼과 결혼의 유지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아프로디테 판데모스 신전 건설했고, 민주적 개혁가 클레이스테네스의 지시로 한 면에는 아테나 여신, 다른 면에는 아프로디테 여신을 새긴 동전이 발견되었다. 고대 국가의 정부도 남녀의 화합을 통한 결혼, 근본적으로 출산을 통한 인구수 유지가 중요한 정책 목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긴 인구가 많아야 세금을 걷고, 전쟁에 동원할 테니. 이렇게 국가 중심적인 관점에서 출발하면 해결책이 되지 못하지만 고대인들은 현대인들보다 훨씬 똑똑했던 것 같다. 결혼과 출산을 '시민의 의무'라고 호소해봐야 국가를 위해 아이 낳는 사람은 없다. 대신 고대 정치인들은 일단 '이성과 어울리는 즐거움'을 장려했다. 치솟는 부동산값, 불안정한 일자리, 감당 안 되는 사교육비 이런 걸 떠나서 일단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과 즐거움을 느껴야 뭘 해도 할 것이 아닌가.


비너스와 무한한 제국: 로마 세계관의 중심에는 늘 비너스가 있었다

아프로디테는 고대 로마에서 비너스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로마 시절에 비너스를 기리는 축제가 일 년에 네 번 열렸고 카이사르를 비롯한 로마의 권력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이로 볼 때 비너스는 평온한 시기를 보냈던 것 같다.

 

루벤스. 비너스의 축제. 1635년 경. 출저: 교보 e북



동양의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탐낸 여신의 권력

아프로디테는 북아프리카와 중동, 특히 이집트에서 꾸준히 인기를 누렸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내륙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나오는 고대 무역 도시 나우크라티스에서 아프로디테 숭배 관련 유적과 유물 출토되었다. 그리고 이집트의 여신 같은 존재하면 클레오파트라 7세가 빠질 수 없다.

"알렉산드리아를 고향이라고 불렀던 클레오파트라 7세는 성애와 권력의 현신인 여신과 자신의 연관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다. 이 이집트 여왕은 자기가 고대 그리스·로마의 아프로디테-비너스와 이집트의 이시스를 하나로 합친 존재라고 자처했다. 클레오파트라 7세는 황금빛 샌들을 신고, 향수를 짙게 뿌리고, 금빛이 도는 곱슬곱슬한 적갈색 머리카락을 목덜미로 늘어뜨려 살아 있는 비너스처럼 꾸몄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보다 더 인상적으로 클레오파트라를 묘사한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플루타르코스이다. 그의 저작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보면 영화같은 장면이 있다. 클레오파트라는 파티광 안토니우스를 만나러 타르수스로 가면서, 디오니소스를 만나러 가는 아프로디테처럼 꾸몄다고 한다.

"뱃머리에 황금을 칠한 배에 자줏빛 돛을 펼치고, 피리 연주와 어우러진 플루트 소리에 맞춰 은으로 만든 노를 저어 왔다. 그녀는 그림 속 아프로디테처럼 꾸미고서 번쩍이는 금박으로 장식한 차양 아래에 누워 있었다. 양옆에는 큐피드를 닮은 미소년들이 서서 부채로 바람을 솔솔 불어주었다. 아름다운 시녀들은 바다 요정 네레이스와 우미의 여신이 입는 드레스를 입고서 뱃전 울타리에 서 있었다. 배에서 풍겨 나온 다채로운 향기가 강기슭까지 흘러갔다. 강어귀 양쪽에서 포플러 나무가 그녀를 맞이했고, 그 장관을 구경하러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붐비는 인파가 시장에서 쏟아져 나왔고, 마침내 집정관 자리에 앉아있는 안토니우스만 홀로 남았다."

이 이집트의 여왕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유혹의 여왕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현대적 관점으로 보면 이미지 메이킹의 프로인데 아프로디테는 클레오파트라를 통해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중세의 비너스: 성모 마리아의 모습으로 살아남다

기독교가 확산되면서 욕망, 성애, 갈등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비너스는 추앙이 아닌 탄압의 대상되었다. 하지만 4천 년이나 된 여신을 완전히 파멸시키기는 불가능했고 모습을 바꾸어 불굴의 생명력 유지했다. 바로 동정녀 마리아의 모습으로. 창조, 갈등, 사랑, 임신과 출산, 통일, 남녀의 화합, 문화의 수호는 인간의 삶의 지극히 일상적인 부분인데 없앨 수가 있겠나.


르네상스를 빛낸 비너스: 인문주의자들의 뮤즈가 되다

아프로디테-비너스는 르네상스 시대에 인문주의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5-1486년. 출처: wikicommons

사이프러스에 도착한 그 유명한 순간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21세기 현대인의 관점에서 문제될 것이 없는 이 작품이 당시에는 무척 센세이셔널했던 것 같다. 서양 고전 미술 역사상 최초로 여성의 나체를 실물 크기로 그렸고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 모방, 참고, 패러디의 대상이고 마케팅에 이용되고 있다.


흥행 보증수표가 된 비너스: 전능한 신에서 억압의 상징으로 전락하다

아프로디테-비너스는 단순히 생명력이 질기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 그 시대 최고의 흥행 보증수표였다. 예를 들어 세련된 문화를 자랑하던 베네치아에서 정치적 상업적으로 영향력 확대되었고, 베네치아 주민들이 신화를 지어내 비너스와 베네치아를 연관 지었다. 물이 도시인 베네치아와 물에서 태어난 여신이라...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4년. 출처: 교보 e북

점차 비너스는 풍만한 몸매를 드러내놓고 감상자의 시선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고대의 전능한 신은 점차 모델로 삼을 만한 '인간'으로 여겨졌고, 인간 여성의 아름다움의 이상으로 여겨졌다.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1637-1638년. 출처: 교보 e북

더 나아가 아프로디테-비너스는 하류 계층의 매춘부와 동일시되었다.

처음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도와 사랑의 힘이라는 긍정적인 면만 보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새로운 관점을 지적해준다. 여성을 혐오하여 피그말리온 자신이 원하는대로 결점도 목소리도 없는 완벽한 여성을 조각한 데서 알 수 있듯 여성을 남성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낸다는 사고방식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유럽이 식민지 건설에 나서며 아프리카 대륙 원정을 떠나고 이러한 사고방식은 확장되었다. 그리고 아프리카 원주민 여성을 '검은 비너스'라며 선정적으로 묘사하기에 이른다. 예를 들어 영국인들은 코이코이족 출신의 사르키 바트만을 데리고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입장료를 받고 전시하여 구경거리로 만들었다고 한다.

한때 혈기 왕성하고 막강한 힘을 가졌떤 여신은 지배 계층에 이용당하는 존재가 되었다. 남성의 시선을 자극하는 대상으로, 오리엔탈리즘을 바탕으로 한 식민 지배를 조장하는 대상으로 이용당했다. 그리고 그저 부채나 회중시계, 장갑 보관함을 장식하는 데 사용되었다.


아주 현대적인 여신: 우리는 왜 비너스를 기억하는가

아프로디테 원리는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인간이 관계를 맺고 인생을 경험으로 가득 채우게 하는 열정의 원리이며, 때로는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짜릿한 삶을 살다가 잠시 긴장을 풀고 최대한 휴식을 즐기게 하는 열정의 원리였다. 의욕 넘치는 인간들의 마음속에서 태어난 여신은 욕망과 그 욕망의 충족을 후원하는 존재가 되었다.

저자는 2장에서 이렇게 말했는데 이야말로 아프로디테-비너스가 추앙받는 근본적인 이유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것, 활기가 넘치는 것을 보면 우리는 끌린다.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전하여 삶이 편리해졌다 해도 결국 생명체인 우리는 같은 생명체와 어울리고 교류해야만 행복을 느끼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프로디테-비너스가 현대인인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기도 하다.

여성의 입장에서 남성과 잘 어울리고 싶다면, 인기를 얻고 싶다면, 나이 먹어서도 여자의 외모만 보는 짐승이라고 남자를 비난할 일이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인간 본성과는 한참 거리가 먼 도덕적 명분을 부르짖어봐야 연애는 꼬이기만 할 뿐이다. 원시시대부터 사냥과 전투 (전쟁)에 참여해온 남성들에게 시각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신체 감각이다. 이것이 자손을 낳아 기를 배우자를 고를 때 역시 적용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여성의 외모는 관계의 지속적인 유지와는 큰 관련이 없지만 관계의 시작에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남자들이 엄청나게 심오한 미적 감각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저 여성적인 느낌, 그리고 건강함을 원하는 것이다. 아프로디테-비너스는 상상 속의 여신이지만 인간이 그녀를 묘사한 조각이나 그림을 보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조합한 완벽한 미인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밝은 피부에 건강한 (풍만한) 몸을 가졌다. 주로 누드로 표현됨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분위기다. 바로 이것이다. 건강함, 활기. 이것에 끌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여자들이 열광하는 '귀티'는 사실 여성의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귀티가 나려면 말수가 적고, 행동이 재빠르기보다 한 박자 느려야 하며, 무엇보다 표정의 변화가 많지 않고 감정 컨트롤에 능해야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신라 이부진 회장, 영국의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정도 되겠다. 예의 바르고 감정 통제에 능하며 상식적일 것 같고 한눈에 봐도 귀족적 분위기에 귀티가 넘쳐흐른다. 사업을 하거나 사회적 리더가 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활기, 명랑함, 밝은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연애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남자가 다가가기 어려운 여성이다. 사냥 본능이 강한 남자가 트로피 와이프를 원해서 작업에 성공해도 결국 시간이 흐르면 활기 넘치는 다른 여자에게 눈 돌리게 된다. 가정을 버릴 생각이 전혀 없는데도 유흥업소에 가는 남자, 정치인의 아내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재클린을 두고도 금발 여성이라면 사족을 못 썼던 존 F. 케네디, 현모양처 옥타비아누스를 두고도 평생 클레오파트라에 빠졌던 안토니우스까지. 타인의 행복을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귀티나는 여자의 애정 생활이 행복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반면 수도 없이 남자를 갈아치우며 원하는 방식으로 연애를 하거나 남자들이 절절매는 여자를 보면 상식적이지도 않고, 그렇게 예의 따지지도 않으며 이기적이고 감정 표현에 능하다. 귀티와는 거리가 한참 멀고 같은 여자 입장에서는 비호감인 경우가 많다.

아프로디테-비너스 여신은 심각하지 않고 밝고, 화사하고, 남자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놀기 좋아할 것 같은 이미지를 풍긴다. 남자가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해도 너무 웃기다며 배꼽 잡고 뒤로 넘어갈 것 같은 이미지. 그보다 근본은 바로 신체적 정신적 건강함과 생명력이다. 잔혹한 전쟁의 여신으로, 변덕스러운 여신으로, 천박하고 경박한 여신으로, 관음의 대상으로 탄압받기도 했지만 결국 인간이 생명체이기 때문에 '생명력의 매력'에 끌리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가면을 쓰고 자신을 억제해야 하는 주중에 주말을 기다리듯, 전투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축제에 열광하듯 말이다.

반대로 조직을 이끄는 역할을 하거나 지극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어야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아프로디테-비너스의 성향을 줄여야 한다.




ⓒ 2022. @hanahanaworld.tistory.com all rights reserved.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