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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방콕 여행: 아유타야 투어, 방콕 카오산 로드

Writer Hana 2022. 3. 26.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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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역사를 체험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유타야 투어는 빠질 수 없는 코스다. 아유타야는 동남아의 강대국으로 부상했던 시절 시암 왕국 the Siamese Kingdom의 수도였다. 버마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유적의 잔해가 남아 찬란했던 시절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게 한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타고 아유타야의 전성기 시절로 직접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유타야 투어 후에는 다시 방콕으로 돌아와 카오산 로드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겼다. 

 

 

12월 25일


알람 맞춰 놓은 대로 5시 50분에 일어났다. 룸메이트들이 자고 있어서 조용히 씻고 옷 입고 6시 20분쯤 숙소를 나섰다. 투어 픽업 장소한 홍익 여행사 앞으로 갔다. 가는 길에 카오산 로드의 세븐일레븐에서 햄버거와 딸기우유를 샀다. 17 바트.

밴을 타고 아유타야로 출발했다. 내가 거의 마지막 픽업이라 조수석에 앉아서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방콕에서 아유타야까지는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기차와 버스를 타고 아유타야까지 가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는 자유 여행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찌는 듯한 더위에 자전거 개별 투어라니... 짧은 시간 안에 편하게 주요 장소를 모두 가볼 수 있기 때문에 투어를 선택했다. 투어 그룹에 한국인은 나뿐이었고, 대부분 서양인이었다. 방문 장소에 도착하면 가이드가 간단히 소개 설명을 한다. 그러고 잠시 자유 시간을 가지는 형식의 투어였다. 



아유타야 Ayutthya, 아유타야 역사 도시 Historic City of Ayutthaya

아유타야는 수코타이에 이어 1350년부터 1767년까지 시암 왕조의 두 번째 수도로 번영했던 곳이다. 시암 왕국의 시조인 우통 왕 (라마티보디 1세 Ramathibodi 1)이 라마야나에 나오는 코살라 왕국의 수도인 아요디아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이후 무려 417년 동안 33명의 왕이 통치를 이어갔다. 그동안 아유타야는 외교와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세 개의 강이 아유타야 섬을 감싸고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 요충지여서 가능했다. 또한 시암만 the gulf of Siam에 자리 잡았지만 조수 간만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도시를 방어하기 용이했고, 계절성 홍수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당시 크메르 왕조의 힘이 강했는데 변방의 아유타야가 성장하여 현재의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까지 영토를 확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1767년 버마 (미얀마) 군의 공격을 받아 파괴되고 폐허가 되어버렸다. 현재 남아있는 사원의 대부분은 왕조가 성립되고 150년 내에 지어진 것들이라고 한다. 아유타야의 훌륭한 점은 도시의 주요 구조물은 도로, 운하 및 해자가 체계적인 도시 계획에 따라 건설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아유타야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 태국정부관광청, 유네스코

 

 

 

1. Wat Yai Chaya Mongkol / Wat Yai Chai Mongkhon

 

아유타야 왓 야이 차야 몽콜 입장권

아유타야 투어에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바로 이 왓 야이 차야 몽콜이다.

태국어의 왓 Wat은 사원 또는 절을 의미한다. 

 

 

 

왓 야이 차야 몽콜

이 사원은 종모양의 저 쩨디 (탑)의 높이가 어마어마해서 눈에 띄었다. 

 

이곳은 1357년에 우통왕이 스리랑카에서 유학하고 온 승려들을 위해 세운 사원이라고 한다. 이러한 승려들을 파 깨오 Pa Kaeo라고 불러서 이 사원은 왓 파 깨오 Wat Pa Kaeo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저 거대한 쩨디는 1592년에 나레쑤언 왕 King Naraesuan이 미얀마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세운 것이라고 한다. 

 

 

 

거대한 쩨디와 부처상

옆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커다란 부처상을 볼 수 있다. 중심의 커다란 쩨디를 주변의 작은 쩨디가 감싸고 있는 균형 잡힌 모습이다. 

 

 

 

그림을 그리는 멋쟁이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멋쟁이 여성 분이 있어서 허락받고 사진을 찍었다. 

 

 

 

2. Wat Maha That

 

두 번째로 간 곳은 왓 마하 탓이다. 마하 탓 Maha That은 '위대한 유물'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아유타야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들 중 하나로 부처의 사리를 안장한 곳이라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아유타야 왓 마하 탓의 보리수 부처 머리상

애초에 이 사원을 지을 때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이렇게 또 다른 위대한 유물이 이곳에 있다. 바로 보리수나무에 끼어 있는 부처 머리상이다. 버마 군이 침략했을 때 전리품으로 불상의 머리 부분만 가져갔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아유타야 유적지에 머리 없는 부처상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이 부처 두상은 희한하게 아유타야에 남게 되었다. 머리만 나무에 낀 부처라니 듣기에는 이상하지만 실제로 보니까 무섭다기보다 경건한 기분이 들었다. 부처보다 몸이 위에 있으면 안 된다고 해서 투어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보리수 옆에 쪼그리고 앉아 사진을 찍었다. 

 

전쟁 당시 침략을 당한 아유타야의 처참함은 말할 수 없겠지만 몇 백 년이 지난 지금은 전 세계에서 수없이 많은 방문객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이스탄불 여행할 때 마르마라 해가 보이는 게스트 하우스에 묵은 적이 있다. 나 홀로 여행이었지만 바다 뷰를 보기 위해 거금 들여 트리플 룸에 머물렀다. 이른 아침 일출을 보고, 커피를 마시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던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곳은 이렇게나 평화로운데 오스만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전 때 이 성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왓 마하 탓

 

 

 

왓 마하 탓의 유적

 

 

 

왓 마하 탓의 쁘랑

많은 쁘랑이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다.

폐허라기에 너무 아름다운 왓 마하 탓

 

 

 

3. Phra Buddha Sai Yat

 

쁘라 부다 사이 얏 와불상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길이가 42 미터나 되는 부처의 와불상

앞에 서있는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와불상의 큰 규모가 한눈에 파악된다. 

 

 

 

4. Wat Phu Khao Thong

 

아유타야 왓 푸 카오 통

높이 50미터로 아유타야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이는 특이한 구조의 탑이라고 하는데 아래 기단부는 미얀마 스타일이고 상부 탑은 태국 스타일이다. 동남아 건축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으니 해설이 없었다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왓 푸 까오 통은 라메쑤언 왕 시절 1387년에 최초로 지어졌다. 하지만 1569년 버마 왕이 아유타야 정복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새로운 탑 건설을 지시했다. 그래서 사진에서 보듯 3층의 기단이 세워졌으나 버마인에 의해 완성되지는 못했다. 이후 시암의 왕 쏨뎃 프라 나레쑤언 마하랏 King Somdet Phra Naresuan Maharat은 1584년에 다시 버마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리고 기단을 해체하지 않고 그 위에 태국 스타일로 상부 탑을 세울 것을 지시하게 된 것이다. 1584년은 사실 그가 왕위에 오르기 전인 왕세자 신분의 시절이었다. 그만큼 버마로부터 벗어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역사를 보면 적이 세운 건축물을 처리하는 다양한 방식을 보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복궁을 떡하니 가리고 있던 일제의 조선총독부 건물을 완전히 해체했고, 인도 뉴델리의 꾸듭 미나르 유적지는 북부 인도를 점령한 이슬람 왕조가 힌두교 사원을 부수고 그 잔해로 새로운 건축물을 세웠다. 그런데 태국의 왕은 적이 세운 기단 위에 탑을 세워 마치 적을 누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왓 푸 카오 통의 계단

자 올라가 볼까?

 

실제 보면 계단이 너무 많은 것도 아니고 가파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찌는 듯이 더운 날씨에 점심 전이라 이제 다들 지쳤나 보다. 우리 투어 그룹에서 나하고 영국인 남자 이렇게 둘 만 이곳에 올라갔다.

 

 

 

왓 푸 카오 통에서 보이는 주변 모습

더워도 이곳은 올라와볼 만하다.

주변의 넓은 평원을 보고 있으니 인도의 파테푸르 시크리가 떠오른다. 

 

 

 

왓 푸 카오 통 기단부

 

 

 

왓 푸 카오 통의 불전

탑 옆에 불전이 있는데 그곳에서 아름다운 황금빛의 부처상을 볼 수 있다.

 

 

 

5. Wat Phra Si Sanphet

 

점심 식사를 한 후 오늘 투어의 하이라이트 왓 프라 시 산펫에 갔다. 오후가 되니 더 덥고 햇살도 더 뜨거웠다. 양산을 가져가길 정말 잘했다. 

 

 

 

드넓은 왓 프라 시 산펫

왓 프라 시 산펫은 아유타야 왕궁 내에 있는 왕실 사원으로 아유타야 전성기 시절 가장 큰 규모의 사원이었다고 한다. 원래 이곳은 초기 우통왕 때 왕가 거주 구역으로 지어졌다. 보롬 트라이 로카낫 왕 King Borom Trai Lokanat 제위 시 1448년에 왕실의 거주 구역을 더 북쪽으로 옮기고 이곳은 신성한 사원이 되었다. 왕실의 사원이었기 때문에 승려들이 거주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방콕의 왕궁 내에 있는 왕실 사원 왓 프라 깨우 (에메랄드 사원)는 이를 모델로 한 것인데 현재 태국 사람들에게 왓 프라 깨우가 가장 신성한 사원이듯, 왓 프라 시 산펫은 아유타야 사람들에게 가장 신성한 사원이었다. 어느 국가든 정신적 지주라는 것, 참 중요한 요소다. 

 

사원에는 16미터 높이의 황금으로 된 불상이 있었는데 1767년에 버마 군이 침략으로 이 사원 역시 파괴하면서 불상의 금을 녹여 모두 가져갔다고 전해진다. 구글에 보면 금의 양이 343kg이라고 하고, 우리나라 두산 백과에는 170kg이라고 하지만 태국 정부 관광청 공식 웹사이트에 따르면 143kg 정도였을 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버마 군의 무시무시한 파괴 행위는 영국이 베이징의 원명원을 파괴한 것처럼 안타깝고 그지없다. 그런 면에서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이 독일을 공습하면서 쾰른 대성당을 타격에서 제외시킨 것에 경의를 표한다. 

 

 

 

왓 프라 시 산펫 유적

 

 

 

왓 프라 시 산펫의 모습

자유 시간이 주어졌을 때 덥지만 열심히 돌아다녔다. 

 

 

 

왓 프라 시 산펫의 아름다운 쩨디

왓 프라 시 산펫의 하이라이트이자 아유타야 전체의 하이라이트인 세 개의 쩨디에는 아유타야 시절 왕들 중 3명의 유골이 보관되어 있다. 

 

 

 

다른 각도에서 본 쩨디

 

 

 

신비로운 쩨디

아유타야 투어에서 가장 인상 깊고 아름다운 왓 프라 시 산펫

 


 

다시 방콕으로


방콕에서 망고 주스 같은 열대과일 주스가 마시고 싶었는데 길거리 돌아다녀도 보기가 어려웠다. 카오산 로드 위쪽 골목 걸어가다가 어떤 아프리카인 남자가 생과일주스 컵을 들고 가길래 어디서 샀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 일행이 나에게 너무나도 성의 있고 친절하게 가는 길을 알려줬다.

 

 

 

길거리 코코넛 스무디

드디어 길거리 코코넛 스무디를 마셨다. 한 번에 다 못 먹을 정도로 많은 양인데 우리나라 돈으로 겨우 1,200원이다.

 

 

방콕 파쑤멘 요새

요새라기보다 예쁜 무대 같은 곳이다.

 

 

 

방콕 차오프라야 강

방콕의 생명줄, 차오프라야 강

 

 

 

태국 음식

꾸어이 띠아우를 꼭 먹고 싶어서 나이쏘이를 찾아갔는데 못 찾고 헤맸다. 알고 보니 가게가 문을 닫아서 못 보고 지나쳤다. 결국 다른 카오산 로드의 가게에 자리 잡고 앉았다. 허브치킨 볶음국수와 라임 스무디 95 바트.


 

방콕 카오산 로드

 

 

 

방콕 카오산 로드의 밤풍경

크리스마스 밤의 카오산 로드는 그야말로 불야성이다.

낮에 숙소에만 있던 관광객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온듯한 분위기!

 

 

 

타이 마사지샵

돌아다니다가 타이 마사지샵에 들어가서 발마사지를 받았다. 250B 

 

아주 큰 눈을 가진 예쁜 직원이 발마사지를 해줬는데 가끔 눈이 마주치면 수줍게 미소를 보인다. 분명 체력소모가 많은 일인데 그렇게 미소를 지을 수 있다니. 마사지도 힘 있고 시원하게 잘했다.


1시간의 마사지가 끝나고 만족스러워서 팁을 줬다. 그런데 사장에게 그 팁을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아마 직원이 받는 팁은 개인이 그냥 가질 수 없나 보다. 팁을 모아 직원들에게 똑같이 나눠주는지 사장이 다 가져가는지 내부 규정은 모르지만, 에이 이럴 줄 알았으면 몰래 주거나 아예 주지 말 것을. 내가 서비스에 기분 좋아서 서비스를 해준 당사자에게 감사의 표시로 준 건데 영악한 표정을 하고 있는 엉뚱한 사람의 손에 흘러들어 가는 모습을 보니 그다지 유쾌하진 않다. 

우리나라에서 타이 마사지를 받아본 적은 없지만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 서비스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니 아쉽다. 1시간 동안 편하고 좋았다.

 

 

 

하이네켄 잔이지만 맥주는 싱하 맥주

길거리 돌아다니다가 노천 바에 앉았다. 싱하 생맥주 한 잔 (140 바트) 시켜서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재미있기도 했는데 밝은 보름달과 일행과 즐겁게 수다 떠는 다른 손님들을 보며 잠시 외롭기도 했다.

 

 



 

※ 팬데믹 이전 여행기로 현재의 현지 사정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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