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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록/2019 여행: 두바이 유럽

벨기에, 브뤼헤 여행: 중세 운하 마을의 가을 풍경

Writer Hana 2021. 7. 1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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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깊어가는 가을, 벨기에의 아름다운 운하 마을 브뤼헤로 주말 여행을 다녀왔다. 

 

 

작년 이맘때쯤 별다른 기대 없이 갔던 안트베르펜 Antwerpen (영어: Antwerp)에 대해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어서 이번 늦가을에도 그런 여행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도이치반 Deutschbahn 어플로 브뤼헤 티켓을 검색해 봤는데 편도 20유로도 안 한다. 남편도 같이 가기로 하고 일찌감치 기차와 호스텔을 예약했다. 요즘 계속 날씨가 좋았는데 여행 출발하는 날이 되니 날씨가 흐리다. 아니 뭐, 유럽 가을의 지극히 일상적 날씨니까 괜찮다.

 

역시 브뤼셀 노르트행 기차는 사람이 많았고, 좌석 지정도 안 해서 같이 못 앉을 수도 있다는 것을 예상하고 출발했다. 마주 보는 테이블석의 한 중년 여성에게 옆자리 비었는지 독일어로 물어봤다. 그녀는 대답 없이 일어났고 내가 창가에 앉았다. 남편은 다음칸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 여자분은 무언가를 다 먹은 후 봉투를 쓰레기통에 버리려는 제스처와 함께 테이블의 작은 휴지통 뚜껑을 막고 있는 나의 가방을 치워줄 수 있냐는 의도로 말을 걸었다. 그 한 마디는 "빠흐동 Pardon". 아, 이 분 프랑스어 쓰는 사람이구나. 어쩐지 내가 독일어로 옆자리 비었냐고 물었을 때 무표정으로 대꾸 없이 일어서더라니.

 

창가에 앉았지만 밤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여행은 언제나 좋다. 특히 기차 여행이라면 언제든 좋다.

 

아헨 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내려서 남편에게 이쪽으로 오라는 카톡을 보냈다. 소지품을 다 챙겨서 일어서자 내가 내리려는 줄 알고 중년 여자분도 일어서서 비켜줬고 나는 "멕씨, Merci" 프랑스어로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일어섰다. 그때 봤다. 이 여자분 얼굴에 환하게 미소가 피었다. 어느 나라 언어든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이렇게 세 가지는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디낭 Dinant에 갔을 때도 생각했지만 고등학교 때 배운 김에 꾸준히 프랑스어를 해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우리 학교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제2외국어는 중국어와 프랑스어였고, 2학년 때부터는 제2외국어를 기준으로 반이 배정되었다. 그때 문과 7반 중 5반이 중국어반이고 나머지 두 반만 프랑스어일 정도로 중국어가 뜨고 있었다. 제2외국어든 대학교의 학과든 나는 내가 배우고 싶은지가 결정 기준의 거의 전부였다. 중학생 때 읽었던 어떤 순정 만화책의 배경이 프랑스였는데 그 책을 읽고 프랑스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유럽에 살게 될 줄 알았으면 꾸준히 해둘걸. 

 

프랑스어 선생님은 프랑스에서 직접 거주한 적이 있는 분이었는데 우리 반 학생 모두에게 프랑스어식 이름을 지어 주셨다. 내 이름은 Sandrine (발음: 썽드린)이었다. 선생님은 본인의 미녀 프랑스어 선생님의 이름이 Sandrine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강한 프랑스어식 콧소리를 내야 하는 이름인 데다 이자벨, 비비엔, 실비, 록산느, 쟈끌린, 쥘리엣, 비올렛 같은 다른 친구들의 예쁜 이름이 부러웠다. 그 프랑스어 수업이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이유는 '수업'이 아니라 놀이처럼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어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쓰고, 가사와 함께 샹송을 배우고, 새로 배운 단어로 게임을 하는 식으로 배웠다. 요즘 독일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기도 하고, 외국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인 것 같다. 한국어는 모국어고, 영어도 편안한 수준이 되었으니, 이제는 독일어와 프랑스어로 자유롭게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벨기에 리에주 Liège역에서 IC 열차로 갈아탔다. 객실이 텅텅 비어서 평온한 분위기를 즐기며 브뤼헤 역까지 갈 수 있었다.

 

우리를 맞아주는 브뤼헤의 첫인사는 주룩주룩 내리는 비. 호스텔은 역에서 가까운 것 같지만 밤이고 비도 내리니까 버스를 타기로 했다. 체크인 후 늦은 저녁을 먹으러 다시 나왔는데 비가 그쳤네?!

 

 

창밖 전면을 뒤덮은 특이한 크리스마스 장식

 

 

마르크트 광장 가는 길

브뤼헤의 랜드마크 종탑 Belfort Brugge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르크트 Markt 광장

낮에 보면 저 건물들의 알록달록한 색을 볼 수 있다.

 

 

주 법원 건물

 

 

운하의 도시 브뤼헤

이곳은 마치 베니스 같다. 

저녁 먹으러 나왔는데 긴 산책이 되었다?!

 

 

이곳이 브뤼헤에서 가장 유명한 포토 스폿이다.

비가 그친 후 신비로운 분위기에 휩싸인 브뤼헤

 

 

브뤼헤의 깊어가는 가을 밤

 

 

브뤼헤 운하

 

 

신고딕 양식의 브뤼헤 시청사 

 

 

캐테 볼파르트

독일 로텐부르크에 본점을 둔,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판매하는 유명한 가게다.

내일 꼭 구경해야지!

 

 

브뤼헤 벨포트

흑백 영화 속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

 

 

이런이런... 이곳저곳 걸으며 사진 찍다가 늦은 시간이 되어서 대부분의 레스토랑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운 좋게 마르크트 광장의 한 레스토랑에서 늦은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활기찬 분위기의 웨이터가 어디 왔는지 물어보길래 각자 독일,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을 했다. 웨이터는 오,,, 어떻게 독일 사람과 한국사람이 만났지라고 하길래 중국에서 만났다고 했더니 놀라워한다. 이어서 내가 당신은 인도에서 왔냐고 물어보니까 네팔에서 왔다 한다. "나마스떼"라고 했더니 한 층 더 놀라워하는 얼굴 표정이다. 두 손을 합장하며 "나마스떼"라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웨이터. 이래서 여러 언어의 기본 인사, 감사와 사과 표현 정도는 알아두면 유용하다. 자신의 언어로 인사를 하는 외국인을 보면 기분이 좋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

 

마르가리따 피자와 까르보나라 파스타는 먹을 만했지만 비싼 가격에 걸맞은 맛은 아니었다. 관광지의 레스토랑이니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웨이터에게 추천받아서 주문한 leffel 생맥주는 내가 좋아하는 블랙 비어 딱 그 맛이었다. 역시 유럽의 맥주는 최고다!

 

 

 


 

아침 9시에 식당에서 조식 먹을 때만 해도 비가 주룩주룩 내렸는데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비가 그쳤다! 와, 얼른 나가자.

 

우리가 머물렀던 스너펠 호스텔은 체크아웃이 오전 10시로 아주 이르다. 게다가 체크인할 때 주의사항이 빼곡히 적힌 한 장의 종이를 주는데, 손님을 맞이한다기보다 수련회 온 학생에게 이거 해라 하지 마라는 식의 명령을 문서로 받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그 덕분인지 젊은 연령층의 백패커가 주 투숙객인 호스텔에서 질서유지가 잘 되는 듯 보였다. 

호스텔의 10시 체크아웃 규정 덕분에 일찌감치 나와서 햇빛을 즐길 수 있었다. 유럽의 날씨는 하루에도 여러 번 변해서 언제 다시 흐려질지 몰라!

 

지난밤에 봤던 특이한 크리스마스 장식

 

 

호스텔을 나서서 지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었는데 뭐야 뭐야, 왜 이렇게 예뻐!

 

 

브뤼헤 거리 풍경

 

 

가을 느낌 물씬나는 브뤼헤 운하 풍경

 

 

 

 

가을 정취가 한껏 물오른 11월 초의 브뤼헤

 

아주 오래전 나의 첫 해외여행이었던 일본의 교토가 떠오른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1년 간 휴학을 했는데 11월 말 중학생이었던 동생 그리고 회사 이직 준비 중이라 휴일이 생긴 언니와 함께 최초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부산과 비슷한 위도의 교토는 11월 말이 단풍의 절정기인데 그때 그 아름답고 고즈넉한 교토의 가을 풍경은 일본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아있다. 

 

지금은 유라시아 대륙의 완전 반대편인 벨기에, 그 벨기에서도 서쪽에 위치한 브뤼헤에서 깊어가는 가을을 감상하고 있다. 

 

브뤼헤 (또는 브뤼허)는 웨스트 플랜더스 주의 주도이자 벨기에에서 일곱 번째로 큰 도시다. 이곳은 12세기부터 15세기까지 정비된 운하를 기반으로 무역이 번성하여 황금기를 이루었다. 또한 북측과 남측의 한자동맹이 교차하는 전략적 중심지였다. 즉 사람과 물자가 모이는 곳이었다. 안트베르펜도 항구로써 번성했던 곳인데 지도를 보면 북해의 외해에서 내항으로 들어가기까지 브뤼헤가 안트베르펜보다 훨씬 간단해 보인다. 이렇게 무역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이곳 자체적으로 양모산업이 발달했었다. 

 

하지만 15세기 후 운하와 즈윈만에 토사가 쌓이면서 대형 선박의 항행에 지장이 생겨 점차 쇠퇴했다. 다행히 19세기 후반에 운하와 거주 구역이 다시 정비되어 물의 도시로써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고, 현재는 운하를 중심으로 계란 모양 다운타운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중세 도시의 르네상스'를 이룩했다. (영문판 위키피디아 참고)  

 

 

11월 유럽에서 이렇게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은 흔치 않다.  

 

 

브뤼헤의 풍경

이렇게 맑은 늦가을 날, 아름다운 길을 우리 둘이서만 걷다니 정말 낭만적이다. 유명 관광지도 볼거리 많고 멋지지만 유럽의 진짜 매력은 끝없이 많은 소도시다. 

 

구름이 재빠르게 지나가며 이렇게 예쁜 풍경을 볼 수 있게도 해준다.

 

 

 

 

브뤼헤의 골목길

 

 

브뤼헤의 골목길

 

 

건물 번호판도 이렇게 예쁜 디자인의 타일이다.

 

 

 

 

벨기에 특유의 건축

벨기에 주택 건축의 트레이드 마크인 장방형의 붉은 벽돌 건물, 그리고 계단 모양의 지붕.

 

 

와우, 색감 정말...

어쩜 저렇게 빈티지 감성 물씬 풍기는 파란색과 빨간색을 뽑아내서 붉은 벽돌과 조화를 이루는지.

 

 

 

브뤼헤 운하

마을의 작은 골목을 벗어나자 큰 운하가 나타났다.

 

 

 

 

브뤼헤 운하

 

 

아기자기한 건물이 운하와 함께 잘 어우러진다.

브뤼헤에서 반복적으로 드는 생각은 '마치 동화책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는 것.

 

 

브뤼헤를 여행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온 동네 구석을 느릿느릿 걸으며 건축물을 감상하는 것이 이 작고 예쁜 도시를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브뤼헤 운하

이 풍경을 보고 있으니 마치 암스테르담에 온 것 같기도 하다.

 

 

브뤼헤 운하

 

 

브뤼헤를 즐기는 또 다른 멋진 방법은 보트 투어!

 

 

 

 

브뤼헤 운하

어느 도시나 관광객에게 사랑받는 주요 포토존이 있는데 브뤼헤에서는 마르크트 광장과 이곳이 바로 그렇다. 광장 근처로 오니 확실히 사람들로 붐빈다.

작은 도시라지만 이렇게 마을의 절반을 걸으면서 사진 찍고 구경하는데 오전이 다 갔다. 느리게 여행하기 정말 좋은 유럽의 소도시. 이제는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이다. 

 

 

레스토랑 Soup

네이버에서 브뤼헤를 검색하면 이 수프 레스토랑이 가볼 만한 곳 1위이다 (2019년 현재). 레스토랑 이름이 Soup. 보통은 그 지역의 랜드마크나 유명한 관광지가 1위인데 어떻게 음식점이 1위지? 직접 도착해보니 평범하고 작은 레스토랑이다. 하지만 갈수록 주문하려는 손님의 줄이 길어진다. 일찍 오길 잘했어.

 

남편은 야채죽을, 나는 호박죽을 주문했는데 깔끔한 맛에 양도 적당해서 추운 날 한 끼로 딱 좋은 메뉴다. 역시! 숙소는 잘 모르겠는데 한국 사람들의 음식점 리뷰는 100퍼센트 신뢰할만하다. 개개인이 고유의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 좋은 평가를 받는 레스토랑을 실제 경험하고 실망한 적이 없다. 

 

 

날씨가 점차 흐려진다

 

 

가을의 브뤼헤

 

 

시간이 멈춘듯한 브뤼헤의 모습

 

 

가을 브뤼헤

 

 

가을 브뤼헤

오후가 되니 구름이 파란 하늘을 가리기 시작했는데 이게 또 나름대로 가을 단풍과 어우러져 운치가 있다. 

 

 

 

 

브뤼헤의 또다른 명물 백조

 

 

예상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던 브뤼헤. 꼭 다시 와보고 싶다. 

 

건축과 운하의 풍경이 고즈넉하게 어우러지는 브뤼헤.

조용히 걷고 싶을 때 최고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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