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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 여행: 타트리산, 포프라드스케 호수, 오스트르바 1984m 본문

여행기록/2022 여행: 유럽

슬로바키아 여행: 타트리산, 포프라드스케 호수, 오스트르바 1984m

Writer Hana 2022. 9. 23.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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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파티아 산맥의 꽃 타트리산 (영어식으로 타트라산)에 다녀왔다. 타트리산은 워낙 넓은만큼 등산코스도 다양한다. 우리는 슬로바키아 슈트르바에서 출발하여 포프라드스케 호수 그리고 오스트르바 Ostrva 1984미터 정상에 다녀왔다. 자연은 문명에 길들여진 인간에게 무서운 존재지만 또한 한없이 넓고 깊으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주기도 한다. 대자연 앞에 겸손할 수밖에...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꼬박 운전해서 도착한 슬로바키아의 슈트르바. 타트란스카 슈트르바 캠핑장에서 꿀잠을 자고 일어났다. 여행 둘째 날은 등산의 날이다.

아침에 리셉션으로 가서 정식 체크인을 했다. 오전 근무 직원은 얼굴도 예쁘고 영어도 잘한다. 가까운 슈퍼마켓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타트리산 입구까지 가는 대중교통편이 있는지 이렇게 두 가지를 물어봤다. 그랬더니 마을 지도를 우리에게 주며 자세히 설명을 해줬다. 친절하기도 해라.

유럽에서 차로 여행할 때는 주차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이름 난 장소든, 로컬 명소든 관계없이. 게다가 운전이라면 어제 원 없이 했기 때문에 오늘만큼은 우리도 우리 차도 좀 쉬어야 한다. 다행히 캠핑장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슈트르바 기차역이 있다.  

 

역내 창구에 가서 티켓을 구매했다. 슈트르바 역에서 등산 베이스캠프인 슈트르브스케 플레조 Štrbské pleso 역까지 열차로 두 정거장이다. 성인 왕복 2유로로 확실히 서유럽에 비해 교통비가 저렴하다. 우리 둘이 총 4유로니까 분명 반나절 이상의 주차비보다 저렴할 것이다. 

 

 

 

슈트르바 - 슈트르브스케 플레조 산악 열차

열차는 산악지대로 올라가기 때문에 속도가 느리다.

그래서 여유롭게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타트리 국립공원 입구

슈트르브스케 플레조 구역은 국립공원의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플레조 pleso는 슬로바키아어로 호수를 뜻하는데, 슈트르브스케라는 이름을 가진 커다란 호수가 있고 주변에 숙소, 레스토랑, 상점이 들어서 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등산객들로 활기가 넘친다.  


 

슬로바키아 타트리의 위치

위 지도에서 하트 표시된 곳이 슬로바키아 타트리 산으로 정확히 오스트르바 1984m 정상이다. 슬로바키아 타트리 국립공원은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약 300km 거리에 있고, 자동차로 약 3시간 반 정도 걸린다. 

 

타트리산은 슬로바키아와 폴란드에 걸쳐 있다. 슬로바키아에서는 비소케 타트리 Vysoké Tatry, 폴란드에서는 타트리 비소키 Tatry Wysokie 라고 부르는데 영어로는 High Tatras 또는 Tatra Mountains이다. 이 국립공원은 총면적이 785㎢이고 이중 거의 80 퍼센트는 슬로바키아에, 나머지 20 퍼센트 정도는 폴란드에 위치한다. 총 300개 이상의 봉우리가 있고 가장 높은 곳은 슬로바키아에 있는 게를라호스키 Gerlachovský 봉으로 해발 고도 2,655미터이다. 

 

이 산의 아름다움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우연히 보게 된 인스타그램의 사진 덕분이었다. 고도가 2,000미터 정도라 만년설은 아니지만 초여름인데도 눈이 쌓여있는 장엄한 봉우리들 그리고 신비로운 호수가 눈길을 끌었다. 

 

 

 

카르파티안 산맥. 자료 출처: https://climate-adapt.eea.europa.eu/en/countries-regions/transnational-regions/carpathian-mountains/general

타트리 국립공원은 더 넓게 보면 카르파티아 Carpathian mountains 산맥의 한 구역이고, 이 산맥에서 가장 높은 구간이기도 하다. 유럽과 거리에 먼 우리나라에서는 "유럽의 산"하면 알프스를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 유럽에는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에 피레네 산맥도 있고 무려 8개국에 걸쳐있는 카르파티아 산맥도 있다. 

 

지도에서 보듯 카르파티아 산맥은 아주 적은 부분이 오스트리아에 걸쳐있고 본격 체코,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우크라이나, 루마니아를 지나 다시 서쪽으로 향하며 세르비아까지 뻗어 있다. 길이는 약 1,700km, 면적은 거의 20만 ㎢에 달한다. 

 

 

 

타트리 산

슈트르브스케 플레조에서 등산 안내도를 확인하고

계획대로 포프라드스케 플레조로 향했다.

 

등산 시작하면 스키장과 스키 점프대가 보이는데

타트리산은 겨울 스포츠를 즐기기 안성맞춤이다.

 

초반에는 먼 곳의 풍경을 볼 수 없는 나무로 빽빽한 숲 속 길을 걷게 된다.

올라가는 게 아니라 평지를 계속 걷는 기분이다.

 

그리고 한 시간쯤 걸었까?

드디어 이렇게 멋진 장면을 만날 수 있다!

 

 

 

타트리 산의 이름모를 꽃들

저 왼쪽의 바위 봉우리들이 절경인데

구름에 가려졌다...

 

 

 

타트리 산을 흐르는 계곡

 

 

 

포프라드스케 플레조의 식당에서 간단한 점심

금강산도 식후경

 

포프라드스케 호숫가에 그림 같은 나무 건축물이 있다. 호텔 및 레스토랑으로 등산객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시설이다. 우리도 이곳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기로 했다. 상당히 쌀쌀한 날씨임에도 사람들은 생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가 선택한 메뉴는 버섯 수프와 동유럽의 전통 음식 할루슈키 Halušky 다. 일명 동유럽의 파스타이다. 파스타의 종류가 다양하듯 할루슈키도 여러 종류인데 우리가 주문한 것은 베이컨이 들어간 할루슈키다. 마치 이탈리아에서 먹는 오리지널 이탈리아 음식 같다.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해서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무난한 음식이라는 뜻이다. 할루슈키의 기본 재료는 밀가루 또는 감자 반죽이라 쫀득쫀득하니 식감도 좋다. 수프도 맛있다. 예전에 폴란드의 포즈난에서도, 프라하 공항에서도, 이곳에서도 느끼지만 동유럽 사람들은 수프를 담백하게 잘 만드는 것 같다. 

 

 

 

타트리 산 포프라드스케 호수 풍경

이야~ 진짜 한 폭의 그림이다...

 

호숫가에 있는 안내판에 보면 이 호수는 무려 1만 년 전에 빙하가 녹으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바닥에 물이 솟는 작은 원천들이 있고 주변에서 계곡물이 흘러든다. 최대 수심은 16미터이다. 슬로바키아 쪽에 있는 타트리 호수들 중 유일하게 자연적으로 물고기가 서식하는 호수이기도 하다. 송어의 일종인 브라운 트라우트가 대표 어종이다. 사진도 그렇고 실제로 봐도 호수가 초록색이다. 실 모양의 조류 filamentous algae가 서식하기 때문인데 특히 가을에 이 현상이 두드러진다. 9월 초면 도시는 아직 더운데 이곳은 산속이라 가을이긴 하다. 우리가 등산한 날도 기온이 영상 10도를 약간 넘는 정도였다.  

 

현재 숙소 및 레스토랑으로 이용되는 통나무 건물은 19세기 후반에 지어졌다. 아주 오래 된 건물이구나!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손길이 미지의 자연에 닿는 순간부터 '보호'라는 주제가 따라붙는다. 정화 시설을 만들고, 얼마 전까지 존재했던 목욕탕 wash house도 없애고, "Clean waters"라는 행사를 매년 열어 다이버들이 호수의 바닥을 청소하는 등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고요한 호수 풍경

호수 주위를 한 바퀴 걸었다. 

어떤 각도에서 봐도 멋지구나!

 

곳곳의 멋진 장소에서 사람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관광지에서의 사진은 허세가 아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돈과 시간을 들여 멋진 곳에 가면 그 기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게 당연하다. 내가 풍경을 찍고 다른 사람이 나의 사진을 찍어주는 행동, 이는 분명 즐거운 일이다. 이뿐 아니라 누군지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의 사진 찍는 모습을 잘 관찰해보시라. 그들의 포즈, 행동, 대화 등. 언어가 달라 대화 내용은 몰라도 그들의 즐거운 분위기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여행 와서 사진을 찍으며 불쾌해하고 슬퍼하는 사람은 없다. 타인의 즐거움을 함께 느끼는 일,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유쾌한 경험인가. 이걸 보고 사진 경쟁이니 허세니 인스타충이니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일상생활이 힘들어서 그렇게까지 비뚤어졌을까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제 예정대로 숲길 산책이 아니라 진짜 등산을 할 시간이다.

오스트르바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진짜 장난이 아니네???

 

 

 

오스트르바 올라가는 길

별로 높지 않은 것 같은데 가파른 돌길이라 안전을 위해 바짝 집중해야 한다. 경사가 가파르니 등산로는 자연히 직선이 아닌 구불구불 지그재그 모양새다. 폭도 좁아 눈앞과 발아래만 보고 조심해서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한 구간 지나 방향을 틀 때마다 왜 이리 풍경이 멋진지, 자꾸만 발길을 멈추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게 된다. 

 

'일단 정상에 올라가자. 그리고 풍경은 내려오면서 쉬엄쉬엄 즐기면 돼.'라고 아무리 다짐을 해도 또 멈춰서 셔터를 누른다. 그만큼 저항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풍경이다.

 

 

 

오스트르바 가는 길에 보이는 깊은 골

저 골짜기를 흐르는 계곡은 포프라드스케 호수로 흘러들어 간다.

 

 

 

오스트르바 정상 근처

아래에서 볼 때는 정상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은데

도대체 언제 도착하는 거야?!

 

이번 커브만 돌면?

이번 커브 돌면 정말로?

이걸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진짜 오스트르바가 눈앞에 다가온다.

 

등산은 신기하게도 매번 인생에 대한 어떤 교훈을 주거나 멋진 질문을 던져준다.

 

눈에 띄게 성공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그 수가 적다. 그 이유가 뭘까? 일단 목표의 스케일이다. 최종 목표 자체를 '눈에 띄는 성공'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애초에 적다. 포프라드스케 호수에 이르는 길과 호수 근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반면 오스트르바에 올라가는 길은 상당히 한산하다. 대부분 포프라드스케 호수를 목적지로 설정하고 왔다가 하산하기 때문이다. 호수에서 본격 등산을 하는 사람은 적을 수밖에 없다.

 

"타트리까지 와서 왜 여기서 발걸음을 돌려 하산하세요?"라고 누군가에게 물으면 아무 생각 없이 여기 온 건데 왜 그 따위 질문을 하냐고 불쾌해할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왜 그 이상의 목표를 잡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가는 당장 당신이 뭔데 무례하게 나를 평가하네 마네 부들부들 떨듯이 말이다. 사소한 것을 사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대답해줄 것이다. 어린아이가 있어서, 등산에 별로 취미가 없어서, 포프라드스케 호수까지면 충분해서 등. 다양하고 합당한 이유들 말이다. 모든 사람이 정상까지 올라갈 이유도 없고,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는다고 그걸 실패라고 할 수도 없다.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둔 사람이 왜 적은지 등산을 통해 유추해보고자 할 뿐이지 눈에 띄는 성공을 이룬 사람만이 '인생을 잘 살고 있다'라는 의미도 아니다. 소위 모범적이라고 우리 사회가 멋대로 설정한 기준이 있다. 이것에서 벗어나 사람 각자 인생에서 추구하는 바가 다양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과잉 정보의 시대에 각자가 주관적인 목표를 가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강남 아파트가 아니면 실패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내 집 한채만 있으면 됐지 위치가 뭐가 중요하냐며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각자 추구하는 바가 다를 뿐, 강남이 성공인 인생의 기준은 아니다. 

 

그럼에도.

 

남다른 목표가 있거나 원하는 바가 있는데 스케일이 좀 크다 하면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다. 타인의 이목과 관계없이 순수하게 자신이 원하는 바가 있는데도 의미있는 시작 자체를 안 하고 있다. 왜? 언제 그것을 이루나 싶은 마음이 앞서 시작할 엄두가 안 난다. 산 밑에서 보니 길이 험하고 정상까지 거리도 멀어보인다. 이렇게 압도당해서 한 발짝 떼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토익 900점이 아닌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찾는 최고의 영어 동시통역사가 목표인데 동시통역대학원에 지원할 엄두조차 내고 있지 않은 건 아닌지. 

 

정말 원한다면 시작해서 매달려볼 가치가 있다. 스케일이 큰 목표점을 노리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높고 험한 산으로 갈수록 등산객의 수는 적어진다. 그리고 수가 적어 그들은 경쟁자보다는 서로 정보를 나누고 도와야 하는 협력자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 어디로 가야 안전하고, 어디를 주의해야 하고, 무엇을 가져가면 좋은지 등. 최소한 파이팅을 외쳐주는 치어리더가 되어 준다.

 

세상에 정상이 한 번에 한 명에게만 허락되는 그런 목표점이 있기는 하다. 대한민국에서 5년에 한 번, 5천만 명 중 딱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대통령 당선처럼 말이다. 워낙 큰 자리라 도전자는 5천만 명 중에 열 명 내외이기는 하다. 출마만 해도 따로 사업을 위해 마케팅에 돈 쏟을 필요 없이 한방에 전국적 인지도를 얻는다. 이런 건 정말 예외적인 경우지 사실 내가 이룬다고 타인이 못 이루고, 타인이 이룬다고 나에게 자리가 없는 그런 정상이나 목표점은 매우 드물다. 

 

 

 

오스트르바 정상 1984m

구름에 휩싸인 정상

사진으로는 현장의 감동을 다 담을 수없다.

 

'신비롭다'

'경이롭다'

'야 미쳤어'

'Oh, my god'

이런 표현은 정말 이럴 때 쓰는 게 맞다.

 

아무때나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건

이 엄청난 풍경을 두고 보니 남발이었어!

 

포프라드스케 호수가 예상한대로 아름다웠다면

오스트르바는 기대 이상, 상상 이상이다.

 

웬만한 일에 감정 동요가 없으며 논리적이고 정돈된 것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저 독일인이 저렇게 동영상을 찍고 있다. 우리 남편이 여행 가서 멋지다고 셔터 누르는 일은 상당히 드문데 이건 진짜다. 역시 나처럼 방방 뛰며 감동을 펑펑 쏟아내지는 않지만 사진과 영상을 찍다니! 이건 우리 독일남자가 어마어마한 감동을 느꼈다는 최대한의 표현이다!!! 하하하하하. 게다가 다음에는 텐트 들고 와서 여기에서 캠핑을 하자고 한다. 아 예,,,,,, 

 

 

 

오스트르바 아래 평지

구름이 눈 깜짝할 새 마법처럼 사라졌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줄 사방의 벽과 천장 없이 우리가 여기서 밤을 보낼 수 있을까? 인간은 야생의 동물처럼 강력한 파워, 빠른 달리기 실력, 예민한 후각이나 청각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오를 수도 없다. 우리는 깨끗한 물과 일정량의 산소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인간은 절경에 감동하지만 이곳에서 우리가 야생의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대자연 앞에 인간은 한없이 작다. 이렇게 생각하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감사해야할 이유도 있다. 우리는 머리를 써서 만든 도구들이나 타인과의 협동 없이 대자연에서 생존하기 어렵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혼자서도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기술, 제도, 문명이 발달했다. 이에 감사한 마음이다.  

 

 

 

타트리 산 오스트르바에서 보이는 풍경

오스트르바에서 보는 포프라드스케 호수

호수가 손바닥만 하네!

 

대자연은 참 깊고, 넓고, 높고 위대하다.

그 안에 있기만 해도 신성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구석구석 흘러든다.

 

 

 

정상의 구름

포프라스스케 호수 쪽에서 반대편 절벽

갑자기 산신령이 뿅 하고 등장할 것만 같이

밀려드는 구름

 

그렇게 우리는 정상에서의 감동을 만끽했다.

 

올라오는 동안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주로 이런 것들이다. 표지판에서 이 코스가 총 2시간이라는 것은 뻥이다 (남편 귀에는 '뻥'이라는 한국어가 재미있게 들리는지 "뻥치지 마", "뻥쟁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요즘 몇 시에 해가 지나, 우리가 너무 늦은 건 아닌가, 날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옷을 너무 얇게 입고 왔다 등등.

 

목표를 세우고 거기까지 도달하는 동안 회의, 푸념, 불만, 포기의 유혹 등 부정적인 요소가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점령하려 든다. 그러다 정상에 도달했을 때의 성취감과 만족감이란! 이게 바로 목표 달성의 매력이자 등산의 마력이다.

 

귀찮고 두렵지만 그냥 생각 없이 행동에 돌입해야 하고,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서 작든 크든 무언가를 해냈을 때의 기분. 우리 인간은 이런 식으로 행복감을 느끼게 진화되었다. 편하게 놀고 먹는 것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설계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어릴 때 깨달았다. 스무 살 초반 대학생일 때 방학 시작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자유 시간이 많아서 좋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무료함이랄까 지루함이랄까 무기력함 같은게 엄습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지. 

 

실컷 늦잠을 잘 수 있는 휴일, 편안한 휴식, 우아한 생활 방식, 자유로운 여행 등. 열심히 살아 무언가를 해낸 이후에 경험해야 즐길 수 있지, 눈에 보이는 수익을 내지 않는 이상 이런 것들로 지속적인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이뿐인가, 이러한 성취감은 반복해서 끊임없이 맛봐야 한다. 우리 인간은 한 가지 어려운 목표를 달성했다고 그 하나로 평생 만족감을 느끼게 만들어진 존재 또한 아니다.

 

 

 

타트리에는 수많은 봉우리가 있다.

하산하는 길에는 절벽, 골짜기, 봉우리와 파노라마 풍경을 편하게 볼 수 있다. 

 

등산할 때는 멈춰서 옆 또는 뒤를 돌아봐야 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도 열심히 사진 찍고 동영상도 찍었다. 그런데 막상 하산할 때는 열심히 내려오기만 했네? 아니면 진심으로 기계나 기록에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눈과 마음에 담았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포프라드스케 플레조

이곳에서 다시 한번 쉬며 따뜻한 커피 한 잔 했다.

 

 

 

포프라드스케 플레조 포토존

초록색의 산과 호수 풍경

카메라에 담고 눈에도 가득 담자!

 

 

 

슈트르브스케 플레조 산악열차역

슈트르바 가는 열차를 기다리며

 

정말 춥다.

빨리 내려가서 따뜻한 물로 씻고

저녁 만들어서 맛있게 먹자!

 

 

 

슬로바키아 고속도로의 어느 휴게소

이게 고속도로 휴게소 맞아?

마치 예쁜 카페 같다.

 

 

슬로바키아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체코의 브르노에 가는 길이었다. 화장실 들렀다가 커피 한 잔 테이크 아웃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남편도 나도 좋아하는 조용하고 깔끔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카페 레스토랑을 보고 계획을 변경하여 이곳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

 

한쪽 테이블에서 경찰관 네 명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우아해 보일 수가 없었다. 고급 레스토랑인 듯 적당히 달그락달그락 식기 부딪히는 소리, 식사를 마치고 조곤조곤 대화를 하는 경찰관들, 그들의 곧고 바른 자세까지. 바른 자세는 사람을 단숨에 우아하게 만들어 주는 마법의 열쇠다. 

 

 

 

할루슈키


슬로바키아에 겨우 사흘 머물렀지만 재미있는 현상을 관찰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독일의 사람들과 달리 이곳 사람들은 타인과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다. 독일에서는 길거리를 지나갈 때 상대도 나도 서로 눈을 본다. 그러다 "할로" 또는 "구텐 탁"이라고 다정하게 인사를 나눈다. 또는 그저 서로 누구인지 탐색해볼 요량으로 쳐다보고 지나치기도 한다. 요점은 일단 눈을 마주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슬로바키아에서는 캠핑장에서도, 등산길에서도 정확히 나의 눈을 보는 사람은 상당히 드물었다. 오스트르바 등산로 같은 험하고 등산객이 드문 장소에서야 서로 바라보고 인사도 나누지만 말이다. 왜 이런 문화적 차이가 있는 걸까? 새로운 연구 주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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