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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탈린 여행 02: 은은한 중세 도시의 올드 타운 탐방기 본문

여행기록/2021 여행: 유럽

에스토니아 탈린 여행 02: 은은한 중세 도시의 올드 타운 탐방기

Writer Hana 2022. 1. 1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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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탈린 여행의 시작이다. 먼저 마이아스목 카페 Maiasmokk Kohvik에서 아늑한 분위기에 잠시 푹 빠졌다. 낮에 보니 은은한 파스텔 톤이 너무나 아름다운 올드 타운이다. 코투오차 전망대 Kohtuotsa viewing platform에서 눈 덮인 탈린의 전경을 보고, 러시아 정교회 양식의 웅장한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 Alexander Nevsky Cathedral에 갔다. 블루 아워에 헬러만 타워 Hellemann Tower와 성벽에서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야경을 잠시 즐겼다.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금빛의 탈린 크리스마스 마켓이다. 

 

 

2021년 12월 13일

 

Rija Old Town Hotel

조식당의 창가 풍경

 

실컷 자고 늦게 일어났다. 9시 반쯤 조식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이 호텔에서 가장 멋진 장소는 객실이 아니라 조식당이다. 호텔 자체가 올드 타운의 성벽과 접해 있다. 조식당은 일부러 그렇게 공사를 한 건지 마치 몇 백 년 전에 지어진 것 같은 벽돌로 되어있다. 확실히 유럽 호텔의 조식은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고 다 비슷하다. 딱 무난한 맛에 무난한 가짓수다. 

 

 

 

호텔 바깥에서 본 모습

바깥에서 본 호텔 조식당

 

정오 무렵 외출을 나섰다. 오늘은 올드 타운 탐방이 우리의 목표다. 

 

 

 

에스토니아 지도. 출처: https://www.britannica.com/place/Estonia

<에스토니아에 대하여 간단한 소개>

 

전 세계 안 가는 곳이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이지만 서유럽에 비해 에스토니아에 대한 여행 정보는 확실히 적다. 게다가 깊이 있는 여행기도 다른 인기 지역에 비해 찾기 어렵다. 인터넷 뉴스란에서 기사를 읽거나 영어로 된 정보를 찾아보았다. 

 

에스토니아는 발트 3국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나라이다. 역사의 무대에 한 번도 정복자로 등장하지 못한 국가 대부분이 그렇듯 에스토니아도 덴마크, 스웨덴, 독일, 러시아 등 외세의 침략과 간섭에 시달려야 했다. 1991년 최종적으로 구소련 연방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오늘날의 에스토니아가 되었다. 

 

구소련 붕괴 이후 2021년 현재 동유럽에서 러시아에 우호적인 나라는 독재자의 나라, 벨라루스뿐이다. 물론 진심으로 러시아를 동경해서가 아니라 독재자 루카셴코가 비빌 언덕이 푸틴뿐이라 그렇지만. 원리는 간단하다. 여전히 서유럽과 사사건건 척을 지고 있는 러시아인데, 인권 문제로 유럽의 압박과 경제 제재를 받는 루카셴코에게 푸틴은 적의 적은 나의 친구인 경우다. 에스토니아 국민 전체의 25%에 가까운 사람들이 러시아 인종에 속하고 탈린에서도 러시아를 쉽게 들을 수 있다. 구소련 정부의 통제를 겪은 인구가 상당하고 달리 말해 소련식 정치와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 많지만 러시아에 우호적이라 보기 어렵다.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 회원국이자 유럽 연합의 회국이라는 점이 가장 큰 증거다.

 

나토란 무엇인가. 미국이 주도하여 구소련 공산권을 견제할 목적으로 결성한 군사 동맹체다. 특히 나토의 가장 중요한 합의 사항은 회원국 한 곳이 침략당하면 나토 전체에 대한 침략으로 보고 공동 대응한다는 것이다. 발트 3국은 강대국이라 말하기 어렵지만 나토 가입국이라는 이유만으로도 한 시름 덜 수 있다. 유럽 연합은 안보나 군사 목적보다 실생활과 밀접한 경제적 사회적 단합이 핵심 원리다. 특히 유로존 가입이 그 무엇보다 강력한 친서방 노선 행보다. 여행자 입장에서 굳이 환전할 필요 없이 바로 유로를 사용할 수 있어서 이건 좋다. 만약 한국에서 출발했다 해도 원화를 유로로 환전해서 가져왔다면 다시 그 지역의 통화로 환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여행지에서도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대세지만 어느 정도의 현금은 반드시 필요하기 마련이다.  

 

에스토니아와 우호 관계가 가장 깊은 나라는 바로 윗동네 핀란드이다. 에스토니아 외교부 홈페이지에 보면 1920년에 핀란드가 최초로 에스토니아를 독립국으로 승인한 국가이다. 냉전 시대에 다시 에스토니아가 소련 연방에 편입되고 마침내 독립을 이룬 1991년에 두 국가의 공식 외교 관계가 재개되었다. 정치적으로도 가깝고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게다가 같이 쉥겐 존과 유럽 연합, 유로존 소속이니 당연히 경제적 교류도 활기차다. 언어적으로 핀란드어와 에스토니아어는 둘 다 우랄족의 린우그리아어파로 비슷하다. 러시아어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게다가 이 두 국가 국민 사이에는 강력한 동지 의식 같은 것이 있다. 러시아와 스웨덴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같이 고군분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심지어 에스토니아의 국가와 핀란드의 국가(國歌)는 가사만 다를 뿐 같은 멜로디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과학적 연구 결과를 찾아보면 핀란드의 핀족과 에스토니아인은 유전적으로 크게 관련이 없다고 한다. 피를 나눈 먼 친척보다 이웃이 더 낫다는 격언이 걸맞은 경우다.

 

저 멀리 대한민국 정부도 두 나라가 가깝다는 것을 인정(?)했다. 2021년 현재 에스토니아에는 대한민국 대사관이 없고 핀란드의 대사관에서 겸업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인구는 100만 명 조금 넘는 수준으로 작은 나라지만 경제력은 먹고살만한 수준으로 보인다. 세계은행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구매력 (ppp: purchasing-power parity) 기준 에스토니아의 국민 1인 당 소득은 37,925 달러로 약 200여 개의 국가 중 40위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그보다 높은 43,319 달러다. 역시 참고로 우리나라보다 ppp가 높은 몇 나라를 예로 들자면 1위 룩셈부르크, 2위 싱가포르, 3위 카타르, 4위 아일랜드 (이상 국가들은 우리나라 ppp의 두 배 이상), 미국, 아랍에미리트, 대만, 심지어 중동의 바레인과 사우디아라비아도 있다. 큰 차이는 없지만 의외로 우리보다 낮은 나라는 영국, 뉴질랜드 그리고 일본이다.  

 

탈린 Tallinn은 에스토니아의 수도이고 이번에 우리가 4박 5일 동안 여행할 장소이다. 위 지도를 보면 북쪽 발틱해의 핀란드만에 위치해 있다. 2021년 에스토니아의 총인구가 약 133만 명인데 그중 무려 1/3에 해당하는 44만 명이 탈린에 거주하고 있다. 그만큼 정치·경제뿐 아니라 문화·교육·과학 기술의 중심지이다. 탈린은 요새화 된 형태로 기원전 1세기경부터 존재해왔다고 추정된다.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13세기다. 1219년 덴마크인들은 탈린을 정복하고 툼페아 언덕에 요새를 건설했다. 성벽 도시가 완공되었고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방어 요새였다고 한다. 이후 한자동맹에 가입하고 무역을 통해 크게 번영했다. 하지만 외세 침략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십자군의 주요 세력이었던 튜턴 기사단의 수중에 떨어지기도 하고, 1710년에 표트르 1세에 의해 정복되어 1918년 독립할 때까지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었다. 왜 이렇게 박 터지는 지역이었을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중앙집권을 이룩한 토착 정치 집단이 없어 그랬을까?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탈린은 유용한 항구를 가지고 있다. 정치지리적 geopolitical 으로 자유롭기 어렵다는 뜻이다. 20세기 초 독립의 기쁨도 잠시, 다시 소련 연방의 서슬 퍼런 지배에 시달리다 1991년이 되어서야 마침내 독립국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이 되었다. 

 

이후 파괴된 옛 모습을 복원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중세의 모습을 잘 보존하려는 노력 덕분에 1997년에 올드 타운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탈린 올드 타운 성벽 안쪽 골목

몇 백 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올드 탈린의 길거리

 

호텔 정문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꺾어 조식당 앞을 지나면 이렇게 성벽 아래 길이 이어지는데 눈이 쌓여 있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탈린 올드 타운의 눈내린 풍경

골목을 걸으며 우와,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지난밤에는 어두워서 몰랐는데 은은한 파스텔 톤이 무척 아름다운 곳이다. 

 

 

 

예쁜 건물

올드 타운 끝자락에 위치한 우리 호텔에서 10분 정도 걸어야 중심지에 도달한다.

일단 카페 마이아스목에서 카페인 충전을 하기로 했다.

 

 

 

Maiasmokk Kohvik

저 화려하고 먹음직스러운 케이크들...

그러나 케이크 맛집이라 말하기는 어렵고 그냥 무난한 맛이다.

 

 

 

Maiasmokk Kohvik

사진에서 본 2층의 창가 자리에 앉고 싶었는데 2층은 아예 문을 닫았다. 그래서 비좁고 붐비는 1층에 앉았다. 건물 내부를 구경하려고 일어나서 작은 통로를 지나 보니 아니! 1.5층이라 할 수 있는 곳에 넓은 공간이 있었잖아! 우리는 바로 자리를 옮겼다.

 

 

 

마이아스목 카페의 창가 풍경

소위 인스타그래머블한 그림이 나오는 레스토랑이나 카페는 많은 수가 미각 맛집이라 하기 어렵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의 현상인 듯하다. 관광지의 레스토랑이나 카페는 단골 고객보다 관광객 대상으로 장사를 한다. 그럼 무엇이 중요한가? 맛집이 되어 재방문율을 높이는 것보다 일단 최대한 시각적으로 눈에 띄는 것이다. 자릿세가 비싸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음식 단가를 높이면 그만이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여행지에서도 시장에서 콩나물 살 때 500원 깎듯 까다롭게 굴지 않기 마련이다. 

 

진짜로 맛있는 음식들은 인스타그램에 어울리는 감성 넘치고 세련된 그림이 나오기 어렵다. 떡볶이, 순대, 곱창, 감자탕 이런 음식들을 가지고 고상한 모습을 연출하기가 가능하던가. 이러한 이유로 인스타그램에 여행 사진을 올릴 때 레스토랑이나 카페 같은 식음 업소는 가급적 올리지 않는다. 인테리어와 음식이 예뻐서 올리고 맛집이라 태그를 달기에는 양심에 찔리기 때문이다. 그림이 되기 때문에 인기를 얻는 행태가 지속될수록 식음 업소는 본질인 '맛'은 덜 신경 쓰고 '연출'에만 열을 올리게 된다. 값비싸고 맛없는 음식은 이런 수요와 공급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탈린에서 어떤 카페를 가야 하는지 물어보면 망설임 없이 이 카페를 추천할 것이다. 마케팅의 구루 세스 고딘은 쓰레기는 팔지 마라고 했는데(애초에 기본도 안 된 상품으로 마케팅을 논하지 말라는 뜻), 그런 카페는 아니다. 다만 예상했던 대로 명성에 비해 맛이 별 다섯 개짜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마어마한 장점은 지금까지 경험한 세계 여러 나라의 카페 중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분위기 맛집'이라는 것이다. 겨울이고 팬데믹으로 인해 관광객의 수가 적어서 한산하기도 하지만 조용히 앉아서 창 밖 중세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카푸치노 한 잔 하는 기분이란... 마치 잠시 다른 세계에 다녀온 듯하다.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카페다. 현재 탈린에서 운영 중인 카페 중 가장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1864년부터 운영 중이다. 1964년이 아니고 1864년...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고종 임금의 재위 2년 차, 그가 열세 살의 소년일 때다.  

 

 

 

탈린 길거리

커피 타임을 마치고 코투오차 전망대로 향했다.

 

 

 

저 멀리 보이는 올라프 교회

코투오차 전망대 가는 길

 

 

 

Riigikogu

리기코구 Riigikogu라는 이름을 가진 이 분홍빛 건물은 에스토니아의 의회 건물이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사당에 해당한다. 에스토니아의 진정한 권력이 나오는 곳인데 웅장 하다기보다 '예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에스토니아는 국가 원수와 행정부 수반이 각기 다른 이원제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2021년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통령과 총리 모두 여성인 국가이다. 대통령은 케르스티 칼률라이드이고 총리는 카야 칼라스다.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

양파 모양의 돔과 성당 내부 러시아 이콘화를 보면 러시아 정교회의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Visit Tallinn 공식 웹사이트의 소개에 따르면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은 1900년, 짜르 러시아 지배하에 있을 때 건설되었다. 러시아 짜르의 발틱 지배력을 자랑할 목적으로 지어진 지극히 정치적인 건물이다. 그리고 완성된 후 알렉산더 야로슬라비치 네브스키에 헌정되었고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는 1242년 '얼음 전투'에서 독일 십자군의 동진을 막았던 노보고로드의 왕자이다. 성당은 전체 15톤에 달하는 11개의 종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종 치면 온 도시에 울려 퍼지겠는데?      

 

개인적으로 러시아 정교회의 건축 양식을 좋아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보기에 예뻐서. 수직으로 하늘을 향해 높이 뻗은 정교한 서유럽의 성당에서 장엄함을 느낄 수 있다. 반면에 둥글둥글한 양파 모양의 러시아 정교회 성당은 부드러운 곡선이다. 그리고 사람은 부드러운 곡선, 여성적인 라인에서 평화로움과 매력을 느끼게 되어 있다.

 

지금까지 실제로 가 본 성당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옴스크의 성모승천 성당이고, 두 번째는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성 바실리 성당이다.  

 

옴스크와 성모승천 성당

 

러시아 & 카자흐스탄 여행 01 <시베리안 에어라인, 옴스크, 옴스크 성모승천성당, 버스타고 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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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은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가까이서는 한 컷에 담기가 어렵다. 담는다 해도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내부 인테리어를 뽐내지만 사진 촬영 금지다. 잠시 들어가 경건한 마음으로 둘러보고 엄마에게 선물로 줄 묵주를 하나 샀다. 워낙 유명한 관광지다 보니 수녀님이 영어를 잘하신다. 

 

 

 

기념품 가게

다시 구글맵을 따라 코투오차 전망대로 가는 길.

예쁜 기념품 상점과 카페가 보인다. 

 

 

 

고요한 마을

더없이 고요한 눈 쌓인 올드 타운 

 

 

 

탈린 코투오차 전망대

드디어 도착했다. 코투오차 전망대!

 

탈린 구시가와 신시가를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인스타그램으로 온라인 사전 답사(?)를 할 때는 붉은 지붕 물결이 인상적이었는데 눈 쌓인 모습도 운치가 있다. 

 

 

 

탈린 코투오차 전망대에서 보이는 시가지

인스타 포토존 1. 저 아래 길가의 붉은 지붕 건물 정면이 보이도록

 

 

 

탈린 코투오차 전망대의 포토존 the times we had

인스타 포토존 2. THE TIMES WE HAD

 

많은 사람들이 THE TIMES WE HAD를 배경으로 저 돌 난간에 앉아서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지금은 쌓인 눈이 얼었다가 녹는 중이라 앉을 수가 없다. 카메라에 사진과 영상으로 풍경을 열심히 담은 후 남편과 조용히 서서 두 눈에도 가득 담았다. 

 

 

 

전망대에서 내려가는 길

 

 

 

파스텔 톤의 건물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는 눈 내린 풍경이 압도적이라 겨울 왕국에 있는 듯했다. 이곳은 그만큼 눈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파스텔톤의 오래된 건물들 덕분에 더 신비로운 분위기의 겨울 왕국이 연출된다.  

 

 

 

분홍빛 건물

몇 발자국 옮길 때마다 셔터를 누르느라 속도가 더디다.

 

우리의 여행 방식은 이렇다. 어느 한 곳 목적지를 정한다. 목적지로 가는 길에 멋진 곳이 있으면 그곳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길에서도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탈린 시내의 트램

우연히 본 귀여운 빈티지 트램

 

올드 타운 밖으로 나와 무작정 걷다가 비루 게이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큰 쇼핑몰을 발견했다. 들어가서 우리는 잠시 구경을 하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왔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와서 물과 간식을 사기로 했다. 

 

 

 

올드 타운의 입구 비루 게이트

Viru Gate

 

 

 

탈린 헬러만 타워와 성벽

12월의 탈린에서는 오후 세 시 반 정도면 해가 지기 시작한다. 북위 51도에 위치해있다 보니 겨울에는 해가 일찍 지고 늦게 뜬다. 올드 타운의 멋진 색감을 감상하고 싶다면 오전부터 부지런히 서둘러야 하고 밤 풍경을 좋아한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 

 

헬러만 타워는 비루 게이트 오른쪽에서 시작되는 성벽에 세워진 타워이다. 헬러만 타워 바로 아래 입구가 있다. 우리는 한 명당 3유로를 내고 들어갔다. 탈린의 성벽은 위에서 소개했듯이 방어를 목적으로 13세기에 지어진 것이다. 타워 입구에 있는 소개글에 따르면 원래 총길이 2.35km이고 45개의 성벽 탑과 대문 탑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1.85km의 길이에 26개의 방어용 탑만 남아 있다. 헬러만 타워의 성벽이 현재 남아 있는 탈린의 성벽 중 가장 긴 구역이라고 한다.  

 

 

 

헬러만 타워 성벽에서 본 눈 쌓인 풍경

아름답다는 표현도 부족한 풍경이다...

해가 저물며 물든 하늘색마저 몽환적인 느낌을 더하는구나.

 

 

 

성벽 바로 옆에 집들이 있다

눈이 녹는 중이라 미끄러워서 난간을 잡고 뒤뚱뒤뚱 조심스럽게 걸었다.

성벽을 걷는 동안 단 두 명의 다른 관광객만 마주쳤을 뿐, 정말 고요한 곳이다.

 

 

 

고요한 중세의 마을

도시 전체가 이렇게 중세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자격이 되고도 남는다. 중세의 동화 같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 하면 보통 체코의 체스키 크룸로프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프라하의 노비 스베트 거리와 바로 이곳 헬러만 타워의 성벽에서 본 탈린이 먼저 떠오른다. 

 

 

 

카타리나 골목

헬러만 타워에서 내려오니 블루 아워 blue hour의 절정에 카타리나 골목을 걷게 되었다. 

 

 

 

중세의 모습이 잘 남아 있는 탈린

특별한 관광지가 아니어도 탈린 곳곳에서 이런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탈린 더블리너

저녁식사를 할 시간이다!

 

우리가 고른 곳은 올드 타운 밖에 있는 Dubliner이다. 탈린까지 와서 왜 아이리쉬 레스토랑에 갔는지 굳이 변명을 하자면 우리가 맛집 고르는데 심각하게 게으르고 실력도 별로라서 그렇다. 기네스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우리에게 아이리쉬 레스토랑은 전혀 의심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기네스가 맛있는데 음식이 대수야.

 

친절하고 영어를 잘하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다. 나는 연어 크림 파스타와 기네스 생맥주를 주문했고 남편도 나를 따라 똑같이 주문했다. 기네스 생맥주만으로도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할 텐데, 우와 이 파스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는데? 말린 대추도 들어있고 크림은 부드럽고 무엇보다 음식 자체가 자극적이지 않다. 마치 이탈리아 본토에서 먹는 파스타 맛이다. 2019년 3월에 부모님과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동안 매일 이탈리아 음식을 먹었다. 예상과 다르게 담백했다. 게다가 자극적이지도 느끼하지도 않아 매일 이걸 먹고 살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훌륭했던 본토 음식이었다. 탈린 올드 타운을 감상하고 나서 이렇게 멋진 레스토랑에서 미감을 충족시켜주는 저녁 식사를 하는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탈린 더블리너

탈린 맛집으로 임명합니다.

 

 

 

탈린 크리스마스 마켓

오후에 갔던 쇼핑몰의 슈퍼마켓에서 물과 간식을 사서 호텔로 향했다. 확실히 탈린의 물가는 독일에 비해 낮다. 그리고 구석에 있는 우리 호텔에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크리스마스 마켓! 독일 큰 도시의 유명한 크리스마스 마켓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하고 동화 같은 크리스마스 마켓이다. 

 

 

 

탈린 크리스마스 마켓 앞에서 사진 한 컷

탈린 크리스마스 마켓 올해의 트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트리다. 알록달록한 장식 없이 그저 초록나무에 오로지 금빛 장식과 전구! 여기에 하얀 꽃장식도 있지만 튀지 않는다. 이보다 세련될 수는 없다.

 

호텔에 돌아와 씻고 침대에 편하게 누워서 남편과 탈린 여행과 관련된 유튜브를 봤다. 이런 게 진짜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피곤하고 지친 상태인데다가 맥도널드에서 쫓겨나듯 나왔다. 그래서 탈린의 첫인상이 그저 그랬다. 하지만 오늘 하루 제대로 경험한 탈린은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도시 그 자체이다. 겨울이라 어딜 가든 조용한 것도 참 좋다. 내일도 모레도 기대된다! 시간이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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