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투어: 여행과 독서 기록

에스토니아 탈린 여행 03: 카드리오르그 궁전과 예카테리나 1세의 매력 본문

여행기록/2021 여행: 유럽

에스토니아 탈린 여행 03: 카드리오르그 궁전과 예카테리나 1세의 매력

Writer Hana 2022. 1. 21. 18:01
반응형

탈린 올드 타운 밖 칼라마야 Kalamaja에 다녀왔다. 원래 그 구역에 있는 커피숍에 가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멋진 볼거리를 발견했다. 커피를 마신 후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카드리오르그 Kadriorg 궁전에 갔다. 표트르 대제가 부인 예카테리나 1세를 위해 지은 별궁에서 그녀의 매력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하루의 마지막 일정은 역시나 밤에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마켓 구경이다.

 

 

2021년 12월 14일

 

Rija Old Town Hotel Tallinn

오늘도 어제와 똑같은 창가 테이블에 앉아서 여유롭게 조식을 먹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호텔을 나섰다. 오늘은 올드 타운 바깥에 있는 카페에 가기로 했다.

 

 

 

탈린 칼라마야 구역

구글맵을 켜고 카페를 찾아가는데 재미있는 동네를 지나게 되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목재로 지어진 전통 가옥이 잘 보존된 칼라마야 구역이었다. 

 

 

 

탈린 올드 타운과 칼라마야 구역의 위치

칼라마야 Kalamaja

 

위 지도의 초록색으로 표시된 칼라마야는 탈린 시내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계란을 살짝 기울여 놓은 것 같은 모양의 노란색 선 안쪽은 탈린의 역사 지구, 즉 올드 타운이다. 올드 타운 밖 남쪽과 동쪽은 모두 현대식 빌딩이 들어서 있는 도시이다. 북서쪽으로 나가서 이렇게 재미있는 마을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칼라마야는 "Fish house"라는 뜻이다. 14세기에 탈린 만 Tallinn Bay의 주요 항구 역할을 했고, 1879년대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연결되는 철도가 건설되면서 제조업이 발달했다. 현재는 구소련 시대에 지어진 산업용 건물들이 레스토랑, 상점 또는 갤러리로 개조되고 있다. 모두 이렇게 현대식으로 변신하는 것은 아니고 사진에서 보듯 전통 목조 건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칼라야마 구역에서 볼만한 곳은 Telliviski creative city (우리말로 하면 텔레비스키 창조 도시? 정도 되려나)라고 하는데 우리는 시간이 남으면 가기로 했다.   

 

 

 

탈린 칼라마야 구역의 눈 쌓인 풍경

 

 

 

탈린 칼라마야 구역

 

 

 

탈린 칼라마야 구역 알록달록한 전통 건물들

 

 

 

전통 가옥의 예쁜 문

전통 가옥의 볼 만한 점은 바로 각 집의 예쁜 현관문이다!

 

어느새 우리가 목적지로 정한 카페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넓은 공간이 텅텅 비어 있고 점원은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무언가 이상했다. 남편이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해서 망설임 없이 나왔다. 구글맵을 보니 걸어서 5분 거리에 쇼핑몰이 하나 있다. 우리는 일단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Arsenal 쇼핑센터라는 곳이었다. 보아하니 구소련 시대에 지어진 빌딩을 쇼핑몰로 개조한 듯 보였다. 내부는 최신식으로 단장되어 있어서 깔끔하다. 쇼핑몰 입구 안쪽에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다.

 

 

 

탈린 Arsenal 쇼핑몰의 카페

보기에 예뻐서 하나하나 다 먹어 보고 싶다!

 

 

 

탈린 Arsenal 쇼핑 센터의 카페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현지인으로 보였다. 현지인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곳이라 그런지 확실히 올드 타운의 카페보다 케이크가 더 맛있다. 여유롭게 커피 타임을 즐기고 오늘의 주요 목적지인 카드리오르그 궁전 갤러리로 출발했다. 도보로 1시간 정도 걸린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천천히 걷기를 좋아해서 슬슬 걸어가기로 했다. 

 

 

 

성벽 바깥에서 보이는 올드 탈린의 성 올라프 교회

걸어가며 보이는 올드 타운의 모습

기온은 영상이라 낮은 건 아닌데 확실히 바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카드리오르그 궁전

엄청나게 넓은 카드리오르그 공원에 자리 잡은 카드리오르그 궁전

 

걸어서 다가가는 동안 하늘색이 점차 신비로운 인디고에 가까워진다. 오늘의 블루 아워는 바로 카드리오르그 궁전 앞에서. 우여곡절 끝에 극적으로 무도회에 참석하는 신데렐라처럼 설레는 기분이다. 오늘은 이곳에 어울리도록 검은색 바탕에 꽃무늬와 작은 별무늬가 있는 시폰 드레스를 입었다. 

 

visitestonia 공식 웹사이트의 소개에 따르면 카드리오르그 궁전은 러시아 로마노프 황실의 표트르 1세가 부인 예카테리나 1세를 위하여 지은 여름 별궁으로 1725년에 완공되었다. 표트르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로 로마 출신의 Nicola Michetti가 설계를 했다. 표트르 바로크 Petrine Baroque는 17~18세기에 제정 러시아의 새로운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할 때 주가 된 양식으로 표트르 대제가 선호했다고 한다. 표트르 바로크의 가장 큰 특징은 서유럽의 바로크와 달리 화려하지 않은 심플한 구조와 장식, 그리고 두 가지 색만으로 파사드를 꾸몄다는 것이다. 현재 이곳은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실 말이 좋아 심플이지 서유럽에 비해 낙후되어 있던 러시아였다. 서유럽과 같은 근대화를 이끈 표트르 대제는 모든 개혁 성향의 지도자가 그렇듯 그 과정에서 적을 많이 만들었다. 춥고 척박한 곳에서의 토목 공사 자체가 돈과 인력이 엄청나게 소모되는 일인데 화려한 치장의 건축과 장식이라니. 그는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아니다. 

    

 

 

Main Hall, Kadriorg

 

 

 

Main Hall, Kadriorg

카드리오르그 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인 메인 홀

 

서유럽의 궁전처럼 번쩍번쩍 화려하지는 않지만 황실의 위엄을 보여주기에 충분히 우아하고 품격 있다. 위 두 사진 속 벽을 보면 파란색 바탕에 금색 문자가 있는데 이들은 각각 예카테리나 황후 (이후 예카테리나는 예카테리나 1세 황제가 된다)와 표트르 대제의 이름 이니셜이라고 한다. 멋지다. 부부가 자신의 이니셜을 저리 화려하고 확실하게 새겨 둔 것으로 보아 사이가 엄청 좋았나 보다. 입구 해설판에 보면 메인 홀은 '북방의 바로크 진주'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는데 맞아! 그러고 보니 진주 pearl, 이게 가장 적절한 비유다. 

 

 

 

메인 홀 천장의 그림

안내문의 설명에 따르면 천장에 있는 그림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Metamorphoses>에 나오는 다이아나 여신과 악타이온의 이야기라고 한다. 다이아나는 그리스 여신 아르테미스의 로마 버전이다. 사냥의 여신이자 처녀 여신으로 불리며 호리호리한 몸매에 토가를 걸친 채 사냥개를 이끌고 활기차게 사냥을 다니는 여신으로 묘사된다. 요즘 표현으로 걸 크러시의 원조 같은 여성이다. 그러한 별명과 외관만큼 그녀의 성깔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사냥꾼인 악타이온은 숲을 헤매다가 우연히 다이아나 여신이 요정들과 목욕하는 장면을 발견하고 넋을 잃은 채 바라보았다. 이에 화가 난 다이아나 여신은 악타이온에게 물을 뿌려 수사슴으로 변하게 해 버리고, 악타이온은 자신이 끌고 온 사냥개들에게 쫓기다 죽임을 당한다. 러시아 궁정 미술에서는 고대 신화가 당대의 강대국 스웨덴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대북방 전쟁을 묘사하는 알레고리로 이용되곤 했다. 그래서 그림 속 다이아나 여신은 러시아를, 악타이온은 스웨덴의 카를 12세를 의미한다. 

 

 

 

탈린 카드리오르그 미술관의 작품들

 

 

 

탈린 카드리오르그 궁전 미술관, 표트르 대제

카드리오르그 궁을 세운 주인공 표트르 대제

 

 

 

탈린 카드리오르크 궁전 미술관, 예카테리나 2세

그리고 러시아 역사에서 대제라 불리는 또 다른 인물, 표트르 대제의 손자며느리 예카테리나 2세

 

 

 

탈린 카드리오르그 궁전 미술관의 러시아 그림들

제정 러시아의 궁전이라 러시아 황실 인물 그림과 러시아 화가의 그림이 대부분이다.

 

 

 

탈린 카드리오르크 궁전 미술관, 탈린 항구

Port of Tallinn Morning, Aleksei Bogoljubov. (1853).

 

19세기에 그려진 이 그림은 2021년 12월 현재 내가 탈린에서 느낀 바를 표현한 그림이다. 이렇게 고요하고 평화롭다. 그림의 오른쪽 아래에 보면 작은 고깃배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아무 근심 걱정 없는 듯 느긋한 표정과 자세가 보는 사람도 편하게 한다. 

 

 

 

부활절 밤

Easter Night, Boris Kustodijev. (1917).

 

 

 

밝은 그림

View from Zamoskvorechye to the Moscow Kremlin, Sergei Vinogradov. (1918).

 

이렇게 추운 북방에도 19세기 파리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밝은 그림이 있다.

 

 

 

화난 것 같은 소녀

Girl in Red, Abram Arhipov. (1916).

 

빨강 옷을 입고 있는 소녀를 묘사했는데 그녀는 화가 나 보인다. 내가 저 소녀는 남자 친구가 편지에 답장을 늦게 하거나 약속 시간에 늦어 화가 난 것 같다고 말하자 남편이 킥킥거린다. 

 

 

 

탈린 카드리오르크 궁전 미술관의 공예품들

앤틱 느낌 물씬 풍기는 조각 공예품도 볼 수 있다. 

 

 

 

탈린 카드리오르그 궁전 미술관, 오데사 항구

Odessa pier, Rufin Sudkovski. (1885).

 

오데사의 부두를 묘사한 그림이다. 오데사는 우크라이나의 도시로 흑해 연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문제의 크림반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림의 제목을 본 순간 현재 바람 앞 촛불 같은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떠올랐다. 멍청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극소수만이 이득을 보고 절대다수에게 고통만을 주는 전쟁이라는 거 도대체 왜 하려 드는지. 러시아의 문화와 예술을 좋아하지만 그와 별개로 러시아 정부는 깡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카드리오르그 궁전 미술관의 화장실 표지판

카드리오르그의 모든 것이 우아한데 심지어 화장실 표지판까지 우아하다.

 

 

<예카테리나 1세의 삶과 매력에 관하여>

 

1. 예카테리나 1세의 삶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이렇게 아름다운 별궁의 헌정 대상인 그녀는 어떤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을까? 예카테리나 1세는 그녀의 손자며느리이자 대제로 불리는 예카테리나 2세만큼 잘 알려져 있지 않고 한국어로 된 자료도 많지 않다. 객관적 사료에 집착하는 김후 작가의 <불멸의 여인들> (청하출판사, 2009)에서 소개된 예카테리나 1세에 대한 글이 그나마 자세하고 신뢰할 만하다.    

 

예카테리나 1세는 고아로 인생을 시작해 러시아 황제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삶의 주인공이다. 본명이 마르타 엘레나 스코브론스카였던 그녀는 발트해 연안에서 태어난 라트비아인 또는 에스토니아인이었다. 마르타는 갓난아기일 때 전염병으로 부모를 잃고 그녀의 다섯 형제는 뿔뿔이 흩어졌다. 처음에 고모가 마르타를 맡았지만 부양할 능력이 없어서 그녀를 요한 에른스트 글뤼크에게 보냈다. 그는 마르타를 하녀처럼 대하고 교육도 거의 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들의 눈길을 끌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하는데 자신의 아들과 가까워질까 봐 염려하던 요한 글뤼크는 마르타가 열일곱 살이 되던 해 스웨덴 군인에게 시집을 보냈다. 하지만 스웨덴 군이 주둔하고 있던 마리엔부르크가 러시아군에 점령당하고 스웨덴 군이 철수하면서 그녀도 남편과 헤어지게 된다.   

 

바로 이 전쟁이 위의 메인 홀 천장화에서 말한 대북방 전쟁 시기였다. 마르타는 러시아의 적국인 스웨덴 군인의 부인이었으므로 점령당함과 동시에 포로로 잡혀갔다. 그녀가 이때 단순 허드렛일을 하는 하녀처럼 생활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츨된다. 그녀가 속옷 차림으로 러시아군 여단장이었던 독일인 아돌프 바우어 장군에게 보내졌다는 공식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성 노예 신세로 러시아군 고급 장교들 사이에서 소유권이 옮겨 다니던 마르타에게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잘 나가는 젊은 지휘관이자 표트르 대제의 절친이기도 했던 알렉산드르 멘쉬코프의 눈에 띈 것이다. 그는 돈을 지불하고 마르타를 데려갔다. 표트르와 마르타는 1703년 초 멘쉬코프의 집에서 처음 만났고 이후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그리고 알려진 바와 같이 러시아의 황후가 되고, 표트르 사후 로마노프 최초의 여황제가 되었다. 그녀는 표트르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다섯 낳았지만 세 명은 어려서 죽고 둘만 살아남아 어른이 되었다. 그중 한 명이 두 번째 로마노프 차리나가 되는 옐리자베타이다.

 

2. 취집은 아무나 성공하나? 내가 생각하는 그녀의 매력

 

우리나라에는 예카테리나 1세가 어떻게 알려져 있는지 간단히 알아보기 위해 포털에서 검색을 해봤다. 전문 자료는 없고 블로그의 리뷰가 우선 검색되었는데 "시집을 잘 갔다", "취집을 잘했다"라는 식의 제목과 묘사가 주를 이루었다. 마치 세계적인 CEO를 보고 높은 지위에 올라 돈 잘 벌어서 좋겠다, 성공한 스포츠 스타를 보고 돈방석에 앉아서 좋겠다고 마냥 부러워하는 것만 같은 1차원적인 시각이다. 본인의 현재 삶이 불행하고 먹고살기도 빠듯하면 당연히 예카테리나 1세가 부러울 수밖에 없다. 흙수저로 살다가 남편 잘 만나 금수저를 물었으니 면전에서 무시하는 사람 없고, 갖고 싶은 명품 다 갖고, 럭셔리한 집에서 살 수 있으니 얼마나 꿈같은 일이야? 이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본성이 이렇다는 것이다. 나 역시 내가 행복하지 않을 때는 나만 힘든 것 같고 운이 좋아서 성공한 것 같은 사람을 시기하기도 한다. 다만 그런 태도를 디폴트 값으로 고수하는 것은 내 인생을 발전시키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아서 잠깐 그러다 마는 것이다. 원래 세상이란 한 사람이 어떤 성취에 이르기까지 또는 어떤 타이틀을 갖기까지의 과정보다는 최종 결과만 주목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심보가 못되서가 아니라 화려한 결과물만이 우리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작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도전에 성공해 본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결과만 놓고 "빌 게이츠는 사기꾼인데 운이 좋아 성공했다", "걔는 별 볼일 없는데 시집 잘 가서 팔자 좋아졌네", "그런 싸구려 유튜브 영상으로 부자가 되다니 세상이 미쳤다" 이런 식으로 쉽게 평가 내리지 않는다.  

 

아무튼 예카테리나 1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표트르 자신도 예카테리나와 함께 임시로 지은 평범한 목조 삼층집에서 일반인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살면서 현장에서 직접 힘든 노동을 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마치 평범한 부부와 같았다고 한다 (<불멸의 여인들> p. 516)."

 

"예카테리나는 표트르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시작해서 점차 평생의 반려자로 변했다. 여기에는 그녀의 미모가 아니라 뛰어난 품성이 크게 작용했다. 그녀는 쾌활하고 활기에 넘쳤으며 남다른 인내심과 겸손함도 갖추고 있었다. 전하는 일화에 따르면, 표트르의 성격이 워낙 다혈질이어서 그가 화를 내면 사람들이 모두 일단 피하거나 움츠러들었지만, 예카테리나만은 그에게 맞서며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썼고 이것은 언제나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p. 516)."

 

"두 사람이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도 정반대였다. 표트르가 직설적으로 퍼붓는 반면 예카테리나는 단지 말을 하지 않을 뿐이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이 침묵시위가 여러 달을 갈 때도 있었기 때문에 최종적인 승자는 항상 예카테리나였다고 한다 (p. 517)."

 

이런 내용만 봐도 예카테리나는 심신이 건강한 매력적인 여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린 시절의 열악한 환경과 전쟁 포로 신세에서도 살아남았다. 건강했다는 증거다.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지는 않아서 고위 장교들 사이를 옮겨 다닐 때 의도적으로 특별한 야망을 품었는지 아니면 어쩌다 보니 멘쉬코프의 눈에 띄고 최종적으로 표트르를 만나게 된 건지는 알 수 없다. 사연이야 어쨌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잘 풀리는 기운을 타고 나아간다면 그건 그 사람이 충분히 준비되었다는 뜻이다. 위 글에서 나타나듯이 예카테리나의 매력은 '침묵'과 '활기'이다. 나의 추측으로 어린 시절 구박덩어리로 자라면서 그러한 생존의 기술을 터득하지 않았을까 싶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처럼 살아남기 위해 침묵을 배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말을 아끼는 것은 자제력과 인내심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사람은 말실수가 적고, 경솔한 판단이 줄어들며 무엇보다 나중에 후회하게 될 행동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침묵이 결코 두려움이나 소극적인 태도와 같은 것은 아니다. 그녀는 눈길만으로도 사람 오금 저리게 하는 카리스마가 아닌 둥글둥글 활기찬 마음 상태였기 때문에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살아남지 않았을까? 그러한 성격은 사람들을 밀어내는 것이 아닌 다가오게 하는 요소였고, 표트르같은 다혈질과도 잘 어울릴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듯 그녀는 주어진 환경에 압도되어 힐링과 위로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인내심과 활기를 바탕으로 인생을 열심히 사는 매력적인 여자였던 것이다. 표트르를 만나자마자 꿈에 그리던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났고 나에게 관심 있는 것 같으니까 당장 결혼해서 팔자 좀 펴야겠다고 그에게 매달렸을까? 이제 황제랑 결혼했으니 사치 부리고 편하게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했을까? 표트르라는 남편 성질이 더러워서 사소한 것까지 물고 늘어져 따지고 가르치려 들었을까? 실제 두 사람은 비밀연인 관계를 아주 오래 유지한 후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표트르가 척박한 네바 강 입구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할 당시 황제의 신분으로 직접 노동자처럼 일할 때도 예카테리나는 평범한 백성처럼 생활하며 그의 옆을 지켰다. 남편이 성깔을 부려도 똑같은 행동은 자제하고 침묵했다. 그게 그를 진정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했다.

 

참 대단한 여자다. 아무리 백마 탄 왕자 앞에서 무심한 척 느긋해져야지,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진정한 파트너가 되어야지, 사소한 걸로 짜증 내지 말아야지 이렇게 수 백번 다짐을 해도 실제 실천하기 정말 어려운 것들이다. 타고났는지 아니면 험난한 삶의 여정에서 생존 기술로써 터득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표트르 황제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자임에는 틀림없다. 

 

이런 멋진 여성이 왜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김후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예카테리나는 오랫동안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인물이다. 기록이나 자료도 거의 남아 있지 않거나 왜곡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비천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러시아 역사가 의도적으로 외면했기 때문이다. 예카테리나의 후손들이 차르를 계승하던 시대에는 그녀를 논의의 주제로 삼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 (p. 533)." 이렇게 역사에 묻혀있던 멋진 인물들을 찾아내 복원하는 작업이 역사의 매력인 듯하다. 

 

예카테리나의 손자며느리인 또 다른 예카테리나. 가까운 발트 해도 아닌 저 멀리 독일 출신으로 스스로 강력한 황제가 되어 30년 넘도록 러시아를 지배한 여성. 남편의 사랑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차지한 권력으로 살아간 여성.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성이라면 예카테리나 2세가 아닐까? 그녀의 매력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 02: 에르미타주, 예카테리나 대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의 본격적인 시작이자 에르미타주 관람의 시작이다. 에메랄드 빛의 웅장한 에르미타주는 첫인상부터 압도적이다. 오늘은 러시아 황실과 관련된 작품을 감상했다.

hanahanaworld.tistory.com

 

탈린 카드리오르그 궁전 미술관

 

 

 

탈린 카드리오르크 궁전 미술관

 

궁전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다시 올드 타운 구역으로 돌아왔다. 어제처럼 더블리너에서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고 호텔로 향했다.

 

 

 

올드 타운의 어느 서점

우리 호텔에 가는 길은 올드 타운의 주요 거리를 통과해야 하는데 오늘은 우연히 서점을 발견하고 들어가 봤다. 오래된 책이 많았는데 에스토니아어를 몰라서 읽을 수는 없었다. 무척 조용한 곳이라 발소리 내는 것마저 조심스러웠다. 배경 음악이라도 좀 틀지. 그럼 분명 장사가 더 잘 될 텐데.

 

 

 

탈린 크리스마스 마켓

탈린 구시청 앞 광장 크리스마스 마켓을 지나갔다. 

매일 밤 이렇게 탈린 크리스마스 마켓을 동네 공원에 산책 나가듯 올 수 있다니 꿈같다.

 

 

 

탈린 크리스마스 마켓 광장

 

 

호텔에서 쉬다가 남편에게 나가고 싶다고 졸라서 다시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왔다.

 

 

탈린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글뢰그 한잔

에스토니아에서는 글루바인 Glühwein을 Glögg라고 한다. 독일의 글루바인보다 뭔가 약간 다른 향에 맛이 더 진하다. 뭐라 비유를 해야 할까. 독일의 글루바인이 묽고 깔끔한 된장국이라면 글뢰그는 마치 진한 청국장 같다고 해야 하나?

 

 

 

탈린 크리스마스 마켓의 트리

금색 공과 꽃장식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다.

 

 

 

부슬비 내리는 밤길

관광객에게 유명한 올데 한자

 

 

 

동화 속 같은 골목길

 

 

 

다시 호텔로 가는 길

 

 

 

탈린 올드 타운의 성 올라프 교회

우리 호텔을 찾는데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는 성 올라프 교회 

탈린 올드 타운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탈린 성벽과 성벽 타워

만약 저 가로등만 없다면 진짜 중세의 모습 그대로이다. 고층 빌딩 숲이 없던 13세기에 성 밖에서 이런 풍경을 본다면 웅장함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겠다. 

 

 

 



ⓒ 2021. @hanahanaworld.tistory.com all rights reserved.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