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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 헝가리 여행 03: 자그레브, 친절 문화 그리고 여행 패션에 대하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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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 헝가리 여행 03: 자그레브, 친절 문화 그리고 여행 패션에 대하여

Writer Hana 2021. 6. 1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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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0일 월요일 

 

지난 밤 생각보다 편하게 야간버스를 타고 왔다. 다만 에어컨을 세게 틀어서 추웠을 뿐이다. 버스 안이 추울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후드 외투 하나 입었는데도 치마를 입고 있어서 다리가 추웠다. 

 

아침 6시 30분이 넘어서 자그레브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호스텔에 도착하면 체크인 못할 가능성이 높을 듯하다. 시간도 많고 날씨도 좋은데 구글맵 보면서 호스텔까지 슬슬 걸어가기로 했다. 이른 아침 자그레브 길거리의 첫 인상. 굉장히 '부드러운' 느낌이다. 무언가 느낌이 참 좋다.

 

호스텔에 도착했는데 역시나 앞 사람 체크아웃하고 청소해야돼서 아직 체크인을 할 수 없고 오후 1시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대신 식당 아래쪽 공용 거실이 있어서 그곳에서 기다려도 된다고 했다. 리셉션에 캐리어 맡기고 공용 거실 소파에서 늘어져 잤다.

 

 

호스텔 식당 및 공용거실

Main Square Hostel, Zagreb

 

지금껏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호스텔에 머물렀지만 이렇게 쾌적하고 넓은 주방과 공용 거실은 처음 본다. 와.

 

그리고 그토록 여행 많이 다니면서 숙소 예약 사이트에 딱 두 번 전항목 10점 만점을 주고 후기를 썼다. 첫 번째는 오래전이라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데 이스탄불의 호스텔이었고, 이 숙소가 두 번째 주인공이다. 이후 자그레브의 좋은 인상은 이 숙소의 영향도 크다.

 

두 시간 정도 푹자고 일어났다. 세면장가서 이닦고 세수하고 나왔다. 호스텔 앞 햄버거 가게에서 디럭스치킨버거 세트를 사먹었다. 아니 근데 햄버거 세트가 30쿠나도 안 하다니? 원화로 5,000원 정도이니 아주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두브로브니크의 물가에 비교하면 납득할만하다.

 

 

우연히 들른 서점

 

 

자그레브의 반 옐라치치 광장

반 옐라치치는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에 맞서 크로아티아 독립운동을 이끈 대부로서 현재에도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반 옐라치치 광장

반 옐라치치 광장은 자그레브의 중심부에 있고, 이 곳을 기준으로 주변에 상권 및 관광지가 형성되어 있다. 

 

 


 

12시쯤 다시 호스텔로 돌아왔다. 또다른 친절한 스탭이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12시 30분쯤에 체크인을 해줬다. 내 방은 데스크 바로 옆 첫 번째 방이었다. 오전에 열리는 돌라체 꽃시장도 창문으로 볼 수 있다.

 

 

호스텔 객실 창밖 풍경

 

 

호스텔 여성 6인실 내부

아니, 호스텔 방이 이렇게 넓고 쾌적할 수 있나?? 침대 앞에 빈 공간이 무척 넓어서 탁 트인 느낌이다. 이곳에서의 5박은 잘한 결정이다. 내 자리는 창가 쪽 아래층 침대. 최고의 자리다!

 

짐풀고 쉬려는데 서양인 여자가 체크인을 해서 들어왔다. 캐나다 퀘벡에서 온 French-Canadian 비올렌이었는데 오늘 이곳에 도착했고, 크로아티에만 2주 넘게 있을 거라고 한다.

 

 

자그레브 성모승천 대성당

본격적으로 구도시 탐방. 자그레브 성모승천 대성당. 한 쪽 탑이 공사중이지만 웅장하다.

 

 

오... 우연히 이런 작품을 건졌다.

구름뒤에서 나오는 은빛을 받는 금빛 성모상!

 

 

화려하지만 엄숙한 분위기의 자그레브 성모승천 대성당 내부

 

 

성당 안쪽의 뜰

 

 

성당 주변에 이런 성벽이 있는데 호스텔에서 가져온 한국어 가이드북을 보니 오스만의 침략을 막기 위한 방어시설이었다고 한다.

 

 

자그레브 구시가

반 옐라치치 광장을 중심으로 현대 도시의 모습을 갖춘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그 곳에서 벗어나 자그레브 대성당에서 북쪽으로 몇 분만 더 걸어가면 관광객을 보기 어렵고, 오랜 시간 그대로 보존되어온 진짜 자그레브를 만날 수 있다. 모든 건물이 엄청 낡아서 우리나라같으면 당장 보수공사 내지 재건축 할만한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낡았지만 고전적이고 자그레브만의 파스텔톤 감성이 빛나는 곳, 그래서 멋져 보이는 곳이다. 이곳을 개발해서 경제 부양 효과를 노리는 것이 좋을지 보존하는 게 좋을지는 모르지만, 무엇보다 자그레브 사람들이 행복하면 좋겠다.

 

 

 

 

 

 

상업화와 전혀 거리가 먼 자그레브의 이런 길거리를 걸으며 몇 발자국 더 걸어왔을 뿐이데 전혀 다른 세계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시 자그레브 중심지로

 

 

 

 

다시 반 옐라치치 광장 방향으로 향하는 길. 이곳에서는 밤이 되면 양쪽에 늘어선 레스토랑과 바에 시민들과 관광객이 가득차서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호스텔에 들어갔는데 나 도착 몇 분 후 비올렌이 들어와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비올렌이 호스텔 앞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온 후에 다시 같이 나갔다.

 

자그레브에서의 첫인상은 모두가 참 친절하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친절'은 중요하지 않은 개념인 듯한데 이것이 예의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체적으로 "예의"를 지키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동양 사람들보다 매너가 상당히 좋고, 태도에 꾸밈이 없다고 해서 막말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너 살좀 빼야겠다.", "니 능력에 왜 그런 직장에서 일해?", "왜 연애 안해?" 속으로 어떤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이런식의 무례한 말을 대놓고 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의 동아시아식 친절 문화, 내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처음 보는 나를 위해 서비스 직원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겨야 하고, 손님인 내가 왕인 식의 말도 안되는 친절 문화가 갑을 관계의 주범이다. 그리고 그런 정도의 친절함을 원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다. 서비스하는 직원도 그냥 모두 사람이다. 잠시 스쳐가는 사람이 나에게 친절한가 아닌가에 기분이 좌우되도록 두지말고, 튼튼한 자존감을 기르는 것이 낫다. 내가 생각하는 적절한 친절이란 서로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함박웃음급이 아닌 미소급의 친절이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이왕이면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분위기보다는 부드러운 분위기가 당연히 좋다. 그러나 둘 중 한 쪽이 본인의 기분을 억누르며 낮아져야 하는 친절이 좋은지는 모르겠다.

 

자그레브에서는 관광객을 상대하는 사람들도, 보통의 시민들도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친절함을 가졌다. 가식적이지도 과하지도 않은 친절. 이 사람들이 정녕 수도없는 침략의 역사를 가지고 불과 20년전까지 내전을 겪었다는게 믿겨지지 않는다. 오랜시간 안전과 먹을 것 입을 것 걱정없이 평화롭게 살아온 사람들같다. 물론 내가 잠시 머물다가는 손님이자 관광객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가벼운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전체적인 인상을 말하는 것이다. 

 

비올렌과 시내 구경하다가 KONZUM에서 라벤더 맥주 사서 벤치에 앉아서 같이 마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즐거웠다. 비올렌은 유쾌하고 명랑한 성격인 듯하다.

 

 

성모 승천 성당

 

 

밤에도 아름다운 자그레브 시내

 

 

<여행지 스타일에 대하여>

 

얼마전 인터넷에서 '왜 여행지에서는 평소와 다른 스타일을 연출하는가?'라는 글을 봤다. 이유는 당연히 여행지에서 즐길 수 있는 익명성 때문이고, 일상 생활의 장소가 아닌 특별한 장소에 갔으니 색다른 스타일을 연출하고 싶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기 전에 이미 두브로브니크의 성벽에서 두 명의 한국 여자 일행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흠,,, 저 여자분들 지극히 평범한 20대 후반 또는 30대 초반의 한국 여자들인것 같고, 옷이 이상한 것도 아닌데 왜 무언가 부자연스러워 보일까?' 반면 두브로브니크의 길거리를 활기차게 걷는 어떤 여자는 그저 핫팬츠에 면티셔츠를 입고 머리를 대충 묶었는데도 분위기있고 무엇보다 자연스러워 보였다. 

 

일단 외모의 문제는 아니다. 브이라인 얼굴형, 시원하고 큼직한 눈과 오똑 솟은 코, 가늘고 긴 팔다리 이런 식의 조형적 문제가 아니다. 공식에 따른 미인이 아닌데도 예뻐 보이는 여자들은 넘쳐난다. 게다가 본인의 노력과 관계없는 '조형적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고 쑥덕거릴만큼 저급하지 않고, 또 내가 그만큼 뛰어난 조형미인도 아니다. 미美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의 결론은 '익숙함'과 '태도', 즉 '분위기'다. 어떤 옷은 그 옷을 입은 사람을 압도한다. 반면에 무슨 옷을 입었는지 보이지 않고 전체적으로 멋져 보이는 사람이 있다. 두브로브니크 성벽투어에서 계속 마주쳤던 그 여자분들 중 한 명은 진한 겨자색에 꽃무늬가 있는 원피스, 다른 한 명은 무거워 보이는 소재에 톤이 어두운 보라색 롱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일단 햇빛 작렬하는 주홍빛 지붕의 도시 두브로브니크에 어울리지 않는 의상이다. 무엇보다 그러한 원피스는 결코 평소에 한국에서 출퇴근할 때, 외식할 때, 문화센터나 영화관에 갈 때 즐겨입을 만한 옷도 아니다. 평소에 익숙하지 않은 스타일을 연출하면 당연히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본인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몸의 움직임이나 자세가 자연스럽지 않다. 나의 경험으로봐도 평소에 입지 않던 스타일의 옷을 입었을 때 사진을 찍고 보면 자세가 어색하다. 또다른 예로 두브로브니크에서 같이 다닌 은솔씨는 청순하고 단아한 느낌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즐겨입을 것만 같은 약간 헐렁한 흰색 셔츠에 허벅지 중간쯤 올라오는 길이의 면바지를 입고 스르지산 정상에서 사진을 찍는데 그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그렇다면 여행지에서 색다른 스타일 시도를 포기해야 하는가? 당연히 아니다. 그저 평소에 다양한 스타일에 도전해보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에게 어울리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구별하는 감각을 키워야 한다. 그러다보면 여행지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스타일을 시도한다고 해서 부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주홍빛 지붕에다 태양이 작렬하는 두브로브니크에서라고 해도 평소에 옷을 지배하는 사람이라면 형광색 옷에 가죽부츠를 신고 있다해도 자연스러워보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스타일리시하고 자연스러운 복장을 갖춰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자신을 소중하게 가꾸는 사람이 당연히 보기에 매력적인 법이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에게 무엇이 어울리는지 알고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인생이 잘 풀릴 가능성도 더 높다.

 

 

고요한 자그레브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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