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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여행 07: 항저우 [항주 杭州]에서 새해맞이, 칭허팡 옛거리, 러이펑타, 임시정부 기념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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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여행 07: 항저우 [항주 杭州]에서 새해맞이, 칭허팡 옛거리, 러이펑타, 임시정부 기념관

Writer Hana 2021. 12. 6.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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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도시 항저우에서 연말을 보냈다. 러이펑타에서 시후를 내려다보며 새해를 맞이했다. 새해 첫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항저우 임시정부 기념관이었다. 

 

 

2018년 12월 31일

2018년의 마지막 날. 날씨가 맑다. 지난 24일 중국에 도착한 날 이후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화창한 날씨인 듯하다.

 

 

힐튼 허페이 실내 수영장

4층 수영장에 갔는데, 수영모를 착용하지 않으면 풀장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지 뭐. 잠깐 물에 들어갔다가 바로 방으로 돌아왔다. 서양이 아니더라도 동남아나 우리나라 호텔의 수영장도 수영모가 필수 아닌데 아쉽다. 그러고 보면 지난밤 호텔에 일찍 도착했어도 결국 수영은 못하는 거였네.

 

 

힐튼 허페이

이제 짧았던 호캉스가 끝나고 항저우로 이동할 시간이다. 힐튼은 위치, 청결도, 친절도, 어메니티, 시설 등 모든 면에서 평균 이상이라 무난하게 머무르기 가장 좋은 호텔 중 하나다. 다른 호텔과 차별화되는 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없지만 무엇 하나 빠지지 않아 믿고 선택할 수 있다.

 

 

허페이난역

다시 허페이난역으로. 이번에도 고속 열차를 타고 가는데 허페이에서 항저우까지는 겨우 1시간 30분 걸린다. 이번에도 창가 자리를 배정받지 못했지만 그나마 둘이 같이 앉아서 다행이다. 1시간 30분밖에 안 되는데 상관없다. 커피를 마시며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산 "Economist the world in 2019"을 읽었다. 벌써 여행 시작한 지 일주일이나 흘렀다. 후... 시간이 조금 더 천천히 가면 좋겠어. 매 순간을 즐겨야지!

 

 

중국 고속열차의 속도

대륙 과학 기술의 위엄. 사진은 305지만 최고 시속 306km/h 찍는 것을 보았다. 이미 항공모함을 만들었고, 스텔스기도 자국 기술로 만들고, 달 탐사 계획도 세우고. 짝퉁 강국이라고 무시해도 중국은 과학 기술 강국임에도 틀림없다. 다만 그러한 기술을 인류 전체를 위해 쓰길 바랄 뿐... 지난번 청두에서 허페이 오는 구간은 터널이 엄청나게 많았다. 창 밖 구경하는데 짜증 날 정도로 많은 터널을 통과했다. 그것은 산악지대라는 뜻이고 그래서 중국이 자랑하는 고속열차도 평균 시속 200km/h 밖에 내지 못했다. 하지만 평지인 동부는 그야말로 천리마가 달리기 좋은 조건, 감속 없이 전구간 평균 300 km/h 이상으로 달린다.

 

 

항저우역 코스타 커피

항저우역에 도착해서 우리가 좋아하는 코스타 커피 발견.
서방님 이제 능숙하게 주문도 잘한다.

 

 

 

항저우역

 

 

 

항저우역

역시 중국 기차역의 스케일은... 기차역 끝에서 끝을 가는데 한참 걸어야 한다.


저장성의 성도 항저우 [항주 杭州]. 마르코 폴로가 아름답다고 극찬한 도시이고 내 친구 소피아의 고향이기도 하다. 중국인 친구들은 외국인들이 중국어 발음을 어려워해서 보통 영어식 별명을 사용한다. 소피아의 본명도 들리기로는 "쳉야친"이다. 내 이름을 한자로 써서 보여주고 소피아한테도 한자 이름을 보여달라고 한 적이 있다. 우리식으로 "정아진"으로 발음되는 아주 예쁜 본명이다. 봄에 소피아가 항저우에서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사진을 보고 무척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항저우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겨울이라 꽃은 없지만 겨울이라 붐비지 않는다는 점은 역시나 최고의 장점이다. 이곳은 2022년 하계 아시안 게임 개최지이기도 하다. 소피아의 설명에 따르면 항저우는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부자도시라고 한다. 항저우가 2022년 아시안 게임 유치를 유일하게 지원한 도시인데 돈이 많기 때문에 적자가 날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별로 불만이 없다고 한다. 그럴 리가... 부자라고 해서, 아니 부자일수록 그냥 잃어도 되는 돈은 없다. 위에서 "하자" 하면 별다른 이의 없이 따르는 사회 분위기가 한몫했겠지. 요즘 유럽이나 북아메리카 국가들이 올림픽 같은 메가 스포츠 개최를 거부하는 추세와는 반대다.

 

 

 

항저우의 위치. 출처: 구글맵

저장성 경제, 문화, 산업의 중심지라는 것은 식상한 소개말이고 개인적으로 수저우와 더불어 항저우를 "물의 도시"라 부르고 싶다. "OO의 베니스"라는 단순한 관광 자원으로서의 물이 아니라 도시가 발달하고 성장하게 된 포괄적 시선에서 그렇다. 넓게 보면 항저우는 세계 고대 4대 문명 중 하나를 탄생시킨 양츠강 델타 남쪽 끝에 자리 잡고 있고, 중국의 심장부인 베이징-항저우를 연결하는 대운하의 남쪽 종착지이기도 하다. 좁게 보면 첸탄강이 시내를 통과해 항저우만으로 흘러들어 가고, 시후 [서호 西湖]라는 거대한 호수가 시내에 자리 잡고 있다. 물의 기능은 생명체의 생존에 기여하는 역할은 기본이다. 고등 문명이 형성되면 물은 산업 자원이 된다. 물 자체가 자원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교통로와 같은 인프라의 역할을 한다. 그보다 상위 역할은 바로 문화적 역할이다. 관광지가 되기도 할 뿐 아니라 아름다운 물의 풍경을 보고 신화나 전설을 만들어내고 시와 연극 같은 문학을 탄생시키는 자원이자 동력이 되는 것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이러한 물의 도시 항저우는 의외로 아주 이른 시기부터 대도시로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 첸탄이라는 이름으로 기원전 진나라 때부터 존재하긴 했지만 기원후 4~5 세기경 양츠강 하류에 사람들이 정착하고 나서야 대도시로 성장했다. 그리고 수나라 때인 589년에 처음으로 '항저우현'이라는 지역 이름을 갖게 되었고, 그때 완공된 대운하 덕분에 상업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5대 10국 시대에 오월국의 수도, 몽골에 밀려 남하한 남송의 수도이기도 했다. 13세기에 항저우에 갔던 마르코 폴로는 그 당시 항저우의 인구가 무려 백만에서 백오십만 정도로 추정된다고 했다. 항저우의 정치적 중요성은 남송의 수도로 정점을 찍은 후 하향 곡선을 탔지만 명·청 시대에 벼농사와 실크 산업이 크게 발달하며 물질적 번영은 지속적으로 누렸다. 중국 동부의 많은 도시가 그랬듯이 항저우도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 난세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었다. 태평천국의 난 때 반란군에 점령·파괴되기도 했고,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인 1937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 강점기를 겪었다. 

 

현재에는 화력 및 수력발전으로 전력 공급이 항저우의 핵심 산업인데 내가 보기엔 문화 및 관광이 항저우 최고의 자원이자 유망 산업이 아닌가 생각된다.   

 

 

 

항저우 우샨이 인터내셔널 호스텔

오늘 하루 묵게 될 칭허팡 옛 거리의 호스텔

 

칭허팡 [청하방 清河坊] 옛 거리는 항저우 관광에서 빠질 수 없는 장소다. Chinahighlight에 따르면 칭허팡 거리는 항저우에서 가장 잘 보존된 옛 거리라고 한다. 남송 시대에 조성되어 청나라 때에도 번성했는데 현재 남아있는 대부분의 건물은 명·청 시대에 시대에 지어졌다고 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 볼 수는 없지만 현재 수없이 늘어선 상점과 수많은 인파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활기로 볼 때 칭허팡은 관광 산업 덕분에 바로 지금이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인 듯하다. 

 

 

항저우 청하방 옛 거리

 

 

 

항저우 청하방 옛 거리

청하방 옛 거리는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중국의 많은 옛 거리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인사동이나 삼청동도, 교토의 기요미즈데라 올라가는 길도 그렇고 진짜 옛 모습은 찾기 어렵고 상업화되었다는 비판을 듣는다. 하지만 나는 어쨌거나 이런 거리가 좋다. 물론 내가 중국 상하이의 신천지나 일본 오사카의 도톤보리에서 감명을 받을 일은 없다. 어디서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광의, 관광에 의한, 관광을 위한 장소일지언정 오로지 그곳에서만 보고 경험할 수 있다면 환영이다. 게다가 놀러 간 관광객 입장에서야 여유고, 옛 정취고, 풍경이지 그곳에서 현실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변화하지 마라고, 발전하는 과학과 경제의 혜택을 포기하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오리고기와 만두

한참 헤맨 후 뱅크 오브 차이나를 찾아 현금을 인출하고 칭허팡 거리의 어느 식당에서 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 오늘의 메뉴는 오리고기 요리와 만두. 자극적은 향신료는 없었지만 맛은 그저 그랬다.

 

 

항저우 청황거.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뿐이네...

원래 청황거[성황각 城隍閣]에 올라가기로 했었다. 구글로 확인했을 때는 밤 10시까지인데 알고 보니 이미 9시에 문을 닫았다. 결국 시후의 러이펑타에 가기로 했다.

 

 

항저우 시후

면적 6.5㎢의 넓디넓은 시후의 물가를 따라 걷는데 꽃피는 봄에 오면 장관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후십경. 출처:https://www.chinahighlights.com/hangzhou/attraction/west-lake.htm

시간이 많으면 시후십경을 하나하나 돌아보면 좋겠다. 하지만 우리는 항저우에 딱 하루, 그것도 오늘 저녁부터 내일 오전까지만 머물다 가기 때문에 시후, 아니 항저우 전체의 랜드마크 격인 러이펑타에만 가기로 했다. 

 

 

 

항저우 러이펑타

오늘의 최종 목적지 러이펑타 [뇌봉탑 雷峰塔]. 호수 지역의 공원 한 복판에 우뚝 솟은 5층 탑이다. 북송 때 오월의 왕 전홍숙이 총비 황 씨에게서 득남한 것을 경축하기 위하여 세워서 황비 탑이라 불렸다고 한다. 행복과 기쁨을 기념하기 위한 긍정적 의미의 탑인 것이다. 축복받으며 세워졌을 탑에서 2019년 새해를 맞이하게 되어 좋구나. 우리는 밤 11시쯤 도착해서 새해가 되기까지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는데 날씨가 추웠다.

 

 

항저우 러이펑타

 

 

 

항저우 러이펑타

시간도 많고 날씨가 추워서 몸을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우리는 꼭대기까지 계단으로 걸어 올라갔다. 파란 현판 색깔이 예쁘다.

 

 

 

항저우 러이펑타

현재의 탑은 재건축된 것이다. 왜구의 침략과 사람들의 도굴로 20세기 초에 완전히 훼손되었고, 2002년에 복원을 마쳤다. 탑 내부에 들어가자마자 유물 발굴 현장과 같은 본래 러이펑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항저우 러이펑타

 

 

 

항저우 러이펑타

역경을 이겨낸 아름다운 주인공의 모험. 간략한 영어 해설판이 있었는데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역경을 이겨낸 아름다운 주인공의 모험"이라는 주제는 머릿속에 선명하다.

 

 

 

항저우 러이펑타

탑 맨 위층에서 어린이들의 학예회가 열렸다. 무용 동작을 곁들인 시조 낭송 같았는데 중국어는 못 알아들어도 볼 만한 공연이었다. 예술과 스포츠는 자고로 언어가 달라도 통하지 않던가. 많은 어린이들 중에 사회자 격의 남녀 두 어린이는 남다른 의상에 외모도 돋보였다. 역시 눈으로 보이는 무대에서는 외모를 무시하지 못하는 건가. 

 

 

항저우 러이펑타

 

 

 

항저우 러이펑타

 

 

 

항저우 러이펑타

캬~ 멋지구나!

러이펑타 정상에 오르면 시후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드디어 2019년 1월 1일 0시 새해의 시작이 다가온다.

10, 9, 8, 7, 6, 5, 4, 3, 2, 1!!!

?????

기대했던 화려한 불꽃놀이는 없네?!?!

 

 

 

항저우의 새해맞이

 

 

 

길거리에 인파가 넘쳐나는 항저우의 새해맞이

카메라가 독일 시간으로 세팅되어 날짜는 다르지만 2019년 0시 이후 찍은 사진들이다.
우리는 다정하게 서로 새해 인사를 주고받고 호스텔로 출발했다.

 

 

항저우 시내

구글이 알려준 대로 가다 보니 이번에는 호숫가가 아닌 터널을 통과하게 되었다. 매연...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이곳이 지름길이라 호스텔에 빨리 갈 수 있다.


 

얼그레이 티

호스텔 가는 길에 영업 중인 펍이 있어서 들어갔다. 가게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마침 Bruno Mars의 "Marry you"가 흘러나온다. 오... 우리를 위한 노래인데? 와, 2019년이 되어 처음 들은 노래가 행복한 청혼가라니. 출발 좋은데?
서방님은 맥주를 마시고 나는 향기 좋은 얼그레이 차를 마셨다.

나는 새해마다 그 해의 목표 3가지를 전화기 메모장에 기록해둔다. 그런데 신기한 게 한 해가 지날 무렵 그게 대부분 이루어져 있다. 형태는 약간 다를지라도 말이다. 인생은 결국 생각하는 대로 흘러간다. 자, 올해도 시작해 볼까!

 


 

2019년 1월 1일

계획대로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지난밤 난방이 잘 된 덕택에 따뜻했지만 새벽 2시부터 아침 7시까지 5시간 자고 일어났더니 피곤했다. 이렇게 일찍 일어난 이유는 임시정부 기념관에 가기 위해서다. 쑤저우로 가는 기차는 점심쯤에 출발하기 때문에 시간은 충분하다. 서방님은 어제 못 간 청황거나 임시정부 둘 중에 어디 가고 싶은지 물어보는데 당연히 한국 사람인 나는 임시정부 유적지에 가야지.

 

 

항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1월 1일 아침부터 찾아간 곳은 항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 찾기는 별로 어렵지 않지만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골목에 초라하게 있다. 물론 독립운동하면서 대궐 같은 청사에서 호의호식할 수가 없지만 말이다. 이 먼 곳까지 와서 독립운동을 했다니 마음이 참... 해설을 보니 상하이에서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쫓기듯 도망 와 이곳에서 힘겹게 임정을 유지해 나갔다. 그것도 3년 정도만 머물다 진강으로 옮겨야 했다. 

 

 

 

항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3·1 만세운동을 계기로 상하이에서 출범한 임정은 이후 영역을 확장하는 일제를 피해 내륙 깊숙이 충칭까지 들어갔다. 임정에 있으니 아주 오래전 읽었던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 김준엽 선생의 장정 시리즈 중 <장정1 나의 독립군시절>, <장정2 나의 독립군시절> 이렇게 세 권이 떠오른다. 역사 관련 서적이지만 개인의 수기이기 때문에 소설처럼 막 빠져들어서 읽었고 그 감동의 여운이 오래갔다. 두 명 다 전 세계가 미쳐 돌아가던 1940년대 일제에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중국 서부 전선에 도착했다. 하지만 목숨을 건 탈출에 성공하였고 그렇게 뜻이 맞은 한국인 탈출 학도병들이 모여 충칭 임시정부까지 천 킬로가 넘는 거리를 걸어서 찾아갔다. 재미있는 점은 같은 상황을 겪고도 두 명의 묘사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김준엽 선생은 역사학자답게 감상에 빠지기보다 사실과 객관성을 중시하며 단호한 면도 엿보이는 소위 테스토스테론의 상남자 같은 글을 썼다. 반면 장준하 선생은 문학적 감수성이 넘쳐흐르는 에스트로겐 유형의 글을 썼다. 내용은 거의 잊어버렸지만 학도병들이 고난 끝에 충칭 임정에 도착하고 김구 선생이 연단에서 환영사를 시작하며 울음을 터뜨리자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었던 장면, 일제 패망 직후 독립군이 전투기를 타고 서해 영공에 들어서자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백전노장이 눈시울을 붉혔다는 장면만은 기억한다.   

 

 

 

항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이곳은 입장료도 받지 않는다. 나올 때 약간의 한국 돈을 기부했는데, 기부자는 방명록을 쓸 수 있어서 서방님과 나란히 방명록을 남겼다. 우리가 2019년의 첫 기부자라니 이런 사소한 뿌듯함!

 

 

 

항저우역에서 수저우로

이제는 수저우로 출발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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