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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안탈리아 여행: 안탈리아 박물관 (1)

Writer Hana 2022. 4. 2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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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인공들을 매혹적인 조각상으로 만나볼 수 있는 곳, 안탈리아 박물관 Antalya Müzesi. 신화와 조각 작품에 끌리는 사람이라면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다!

 

 

터키 정부에서 운영하는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영어로 Antalya Archaeology Museum, 즉 고고학 박물관으로 소개하고 있다. 고대 유물을 전시하고 있고,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인공들을 대리석 조각품으로 만나볼 수 있다. 고대의 것들이라 전체가 온전한 작품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신들의 생생한 야망, 갈등, 투지 그리고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장소다. 박물관이 아니라 미술관 또는 갤러리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안탈리아

안탈리아 박물관을 찾아가는 길은 쉽다.

칼레이치 밖 위츠 카플라르역에서 트램을 타고 종점까지 가면 된다.  

 

 

 

안탈리아 박물관 외관

박물관 입구

 

 

 

안탈리아 박물관 네메시스 여신상

네메시스 Nemesis

기원전 2세기  페르게 Perge

 

(※ 안탈리아 박물관에 전시된 수많은 유물은 안탈리아 동쪽으로 17km 떨어진 고대 유적지 페르게 Perge에서 발굴된 것들이다. 페르게에 관한 내용은 이후 페르게, 아스펜도스, 시데 투어 편에서)

 

그리스 신화의 여신 네메시스. 악행과 과분한 행운에 대해 신성한 응징과 복수를 행하는 여신이다. 신앞에 오만하게 구는 것과 같은 인간의 행동에 분노했다. 그녀가 인간 세상에 개입한 방식은 '균형 equilibrium' 이다. 그녀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가 '분배하다 distritue or deal out'인데 행복과 불행을 측정하고 지나치지 않도록 조절하는 역할이다. 또한 트로이 전쟁 발발에 영향을 줄 정도로 전설의 미모를 가진 헬레네의 어머니로도 알려져 있다. 

 

이 조각품은 왼손에는 어떤 도구를 들고,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네메시스의 모습이다. '저거저거 분수에 넘치게 오만방자한 행동을 하는데, 응징을 해야겠군.'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균형 잡힌 아름다운 얼굴에 보는 사람이 부담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긴장이 완화된 표정을 하고 있다.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냉혹하게 균형을 계산하고 있는 여신...  

 

예전에는 타인의 사진을 볼 때 아름답게 활짝 웃거나 미소를 띈 사진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즐겨 찾는 온라인 의류 매장에서 이런 생각이 바뀌었다. 화보같이 아름다운 사진을 올리는 쇼핑몰이라 옷을 구입하지 않고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즐거운 사이트이다. 기존의 모델은 이를 드러내고 웃는 사진이 거의 없다. 알쏭달쏭한 표정에 얼굴의 모든 근육이 이완된 상태라 보는 사람도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 새로운 모델을 채용했는지 못 보던 얼굴이 등장했다. 그녀는 사진마다 이를 드러낼 정도로 웃고 있지만 무척 부자연스럽다. 진심으로 웃는 게 아니라 웃는 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고 다른 곳을 보며 웃음을 짓지 않음에도 눈에 너무 힘을 주고, 입가에 억지 미소를 짓는 흔적이 역력해서 부자연스럽다. 

 

모델 입장에서는 여성스럽고 하늘하늘한 쇼핑몰 컨셉에 맞춰 친절하고 부드럽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너무 의식해서 오히려 표정이 부자연스럽게 된 것이다. 서양 모델들을 보면 전혀 '친절하지 않은 표정'인데 오히려 보기에 편하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카메라를 의식한 표정보다 그냥 모델이 마음 가는 대로 찍힌 사진이 더 보기 편하다. 

 

네메시스의 조각을 보며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는 팁 하나를 배웠다. 바로 사진을 찍을 때 머릿속으로 냉정하고 이성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다. 동시에 억지로 밝은 표정을 지으려 하지 말고 입술을 살짝 벌리거나 네메시스처럼 턱을 괴는 동작을 해도 멋지겠다. 

 

 

 

안탈리아 박물관 하드리아누스 황제상

하드리아누스 황제 Emperor Hadrian

기원전 2세기 페르게

 

신화에 등장하는 신이 아닌 기록된 역사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이지만 신화적인 황제 아니던가!

 

하드리아누스 (재위 117-138)는 로마 제국 5현제 중 세 번째 황제이다. 그의 전임 두 황제는 네르바 (재위 96-98)와 트라야누스 (재위 98-117)이다. 후임 두 황제는 안토니우스 피우스 (재위 138-161) 그리고 5현제 마지막 황제이자 명상록으로 널리 알려진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재위 161-180)이다. 5현제의 시대에는 제위가 세습된 것이 아니라 원로원에서 가장 유능한 인물을 황제로 지명했다. 능력으로 사람을 가려 뽑았으니 번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슷하게 터키의 오스만 제국도 이런 식으로 술탄이 정해졌기 때문에 오랜 시간 강대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제도든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법. 능력이라는 기준을 누가 정하고 평가할 것인가? 주관적 호불호가 개입되지 않은 객관적 평가가 가능한가? 오스만에서는 실력에 기반한 경쟁구도로 술탄이 정해지고 나면 경쟁에서 패배한 다른 왕자들은 모두 처형되었다. 왜냐하면 또다시 실력에 기반한 도전을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피의 승자독식 구조인 셈이다. 반대로 조선왕조처럼 적장자 계승 제도를 가졌다면 정통성을 가진 사람이 애초에 확정되어 분란이 일어날 소지가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동시에 유능한 군주가 되었을 수도 있는 왕자가 실력 발휘도 못하고 초야에 묻혀버릴 가능성도 높아진다.  

 

하드리아누스의 치세는 5현제 시대 중에서도 최고 황금기로 기록되었는데 전임자들이 제국의 기초를 튼튼히 다져놓았기에 가능했다고 여겨진다. 그는 브리트니아에 장벽을 세우는 등 국방에 힘썼다. 게다가 로마 중심뿐 아니라 발칸 반도, 이집트, 그리스, 아시아 지역에도 도시를 건설하고, 기념물을 세우고, 도로를 정비하는 등 기초 인프라 건설에 공을 들였다. 동시에 문치에도 힘을 기울여 학자를 우대하고, 로마법의 연구와 발전을 장려하였다. 하드리아누스는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황제로도 유명하다. 그가 가장 관심 가졌던 분야는 문학, 특히 그리스 문학과 이집트의 신비주의와 마법이었다. 재벌 발전론 또는 귀족 발전론을 증명하는 사례이다. 1대에 험한 꼴을 봐가며 기초를 다지고, 2대에 안정적으로 번영을 이루면, 3대에 문화 예술을 즐기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조선에 비유하자면 태조-태종-세종 이렇게 보면 딱 맞다 (정종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안탈리아 박물관 춤추는 여인상

춤추는 여인상 Marble statue of a dancing woman

2세기 페르게

 

구글에서 영어로 안탈리아 박물관을 검색하면 수많은 페이지의 대표 이미지로 뜨는 것이 바로 이 춤추는 여인상이다. 실제로 보면 크고 생동감 넘치는 작품이다. 1,800년 전의 작품이라니 믿을 수 없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역대 최고로 발전된 기술의 시대에 살고 있을지 몰라도 예술성이 최고인 시대라 말하기는 어렵다. 예술성과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우열을 가릴 대상이 아니고 관점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이 조각품은 역동적인 모습을 표현했는데도 안정감이 느껴진다. 춤추는 여인상이라고 하지만 내 눈에는 산들바람 부는 해변가 또는 꽃밭을 슈퍼모델 포스 풍기며 걸어가는 모습으로 보였다. 여리여리한 청순함도 아름답지만 당당함 역시 훌륭한 미()라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안탈리아 박물관 티케 여신상

티케 Tykhe (Tyche)

2세기 페르게

 

그리스 신화 속 행운 fortune의 여신 티케. 그녀는 행운만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번영 prosperity, 섭리 providence, 그리고 운명 fate의 여신이기도 하다. 로마 신화에서는 포르투나 Fortuna로 알려져 있다. 행운의 여신 티케는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와 제우스 또는 헤르메스의 딸이다. 하지만 티탄 신화에서는 대양의 신인 오케아누스 Oceanos와 바다의 여신인 테티스 Thetis의 딸이다.

 

부모가 누구인지 정확히 몰라도 인간에게 묵직하게 다가오는 신이다. 누구나 찾아와 주기를 바라는 행운의 여신, 그녀는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행운을 뿌리기도 하지만 부지런한 만큼 금세 떠나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티케 여신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하는가 보다. 또한 세상만사가 그렇듯 티케는 행운만을 주관하는 여신이 아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예기치 못한 부정적인 상황 역시 티케 여신의 영역이다. 그래서 또한 운명의 여신이기도 한 것이다. 

 

포르투나를 가장 와닿게 묘사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피렌체의 외교관이자 정치 철학사에 이름이 길이길이 남은 마키아벨리다. 그는 실무자로서 탁월한 업무 능력과 본인의 업에 대한 의지를 두루 갖춘 잘 나가는 서기관이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피렌체 공화국이 무너지고 메디치가가 재등장하면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공직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줄기차게 공직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 노력의 최고봉이 바로 불후의 명작 <군주론>이다. 지금이야 마키아벨리 사상의 진수를 담고 있는 명작으로 평가되지만 당초의 기획 의도는 로렌초 메디치에게 보내는 구직 요청서였다. 그러나 그는 평생 다시 공직에 돌아가지는 못했다.

 

실의에 찬 인생 후반기를 보낸 마키아벨리는 "포르투나의 장난 때문에" 자신이 비참한 꼴이 되었고 인간은 포르투나 (운의 힘)를 무시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고 포르투나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보지는 않았다. 포르투나는 여성적 힘이기에 남성적 힘인 비르투 Virtu를 이길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비르투는 '개인의 역량과 재능'을 뜻한다. 여기에 네체시타 Necessita, 즉 '시대의 필요성에 부합' 이렇게 세 가지가 지도자의 기본 자질이라고 보았다.

 

이는 동서고금 우리 인간에게 근본적 의문인 "인생은 운인가 능력인가?"라는 질문과 맥을 함께 한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공화국 서기관 시절 승승장구했다. 실력이 있고 포르투나까지 찾아와 준 것이다. 그러다 포르투나의 느닷없는 한 방 일격으로 마흔네 살에 실직했다. 여기에 굴하지 않고 비르투를 발휘하며 할 수 있는 모든 액션을 했으나 절망과 함께 인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의 저술, 그의 사상, 그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살아 숨 쉬며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역사 학자가 아닌 이상 피렌체 공화국의 고위 외교관들이 누구였는지, 심지어 공화국의 대통령이 누구였는지 모르지만 마키아벨리라는 이름은 알고 있다. 실직했다고 술 마시고 세상에 저주를 퍼부은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그의 비르투가 포르투나를 최종적으로 이겼다고 한다면 마키아벨리가 벌떡 일어나 살아있을 때 행복해야지 죽고 나서의 명예가 다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을 할까? 

 

운이냐 능력이냐 어려운 질문이고 정답이 있는 질문도 아니다. 다만 어느 한쪽에 기울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안탈리아 박물관 아르테미스 여신상

사냥하는 아르테미스 Hunted Artemis

2세기 페르게

 

그리스 신화의 아르테미스 여신. 그녀는 달, 사냥, 야생, 순결, 출산 등 다양한 부문을 관장한다. 키워드를 보면 모두 여성성, 출산, 비옥함 즉 '생명력 및 활기'와 관련이 있다. 매력의 궁극적인 요소이다. 로마 신화에서는 디아나 Diana로 등장한다. 그녀는 제우스와 레토 여신 사이에서 태어났고 아폴론과 쌍둥이 남매지간이다. 레토는 티탄 신족의 여신이었지만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낳았다. 제우스의 조강지처인 헤라는 임신한 그녀를 괴롭혔다. 하지만 결국 레토의 아들딸인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제우스의 자식들 중에서도 특히 위대한 신이 되었다. 

 

 

 

안탈리아 박물관 아르테미스 여신상

안탈리아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작품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이 역동적인 아르테미스 여신상이다. 조각에서 보듯 아르테미스는 사냥의 여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활과 화살을 들고 사냥하는 모습으로 주로 묘사되고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사냥감을 발견했는지 힘차게 달리며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려는 모습이다. 안탈리아에 두 번째로 여행 갔을 때는 심각한 고민 한 가지로 마음이 무거운 때였다. 그때 만난 아르테미스 여신의 모습은... 비록 온전하지 않지만 이 조각상을 보는 순간 번개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갖고 싶은 게 있어? 원하는 게 있어? 그렇다면 주저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뛰어 나가서 원하는 것을 잡아!"라고 말이다. 고민이 있으신가? 힘든 일에 괴로워하고 계신가?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아 답답하신가? 그렇다면 당장 안탈리아 박물관으로 달려가 바람에 튜닉 휘날리며 사냥하고 있는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만나보시라. 조각상이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는 않겠지만 문제 해결에 필요한 잠자던 에너지를 깨워줄 것이다. 

 

 

 

안탈리아 박물관 또다른 아르테미스 여신상

아르테미스

2세기 페르게

 

아르테미스 여신은 활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며 한 성질 하는 만큼 그녀에 관한 일화도 많다. 에스토니아 탈린의 카드리오르그 궁전에서 만날 수 있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이야기는 이곳에서 ↓

 

에스토니아, 탈린 여행 03: 카드리오르그 궁전과 예카테리나 1세의 매력

탈린 올드 타운 밖 칼라마야 Kalamaja에 다녀왔다. 원래 그 구역에 있는 커피숍에 가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멋진 볼거리를 발견했다. 커피를 마신 후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카드리오르그 K

hanahanaworld.tistory.com

 

 

안탈리아 박물관 아프로디테 여신상

아프로디테 Statue of Aphrodite

로마 시대

 

긴 설명이 필요 없는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로마 신화의 비너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워낙 인기가 많고 떠들썩하게 거론되는 신이라 그녀에 관련된 수많은 에피소드가 존재한다. 그리고 예술가들, 특히 화가들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을 주는 뮤즈이기도 하다.

 

 

 

안탈리아 박물관

별자리 원반 Disc with Zodiac

2세기 페르게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점성술의 존재

 

 

 

 

 

참고: Theoi Project - Greek Mythology, World History Encyclopedia, britanni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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