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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파묵칼레 여행: 평화로운 아침과 히에라폴리스 유적

Writer Hana 2022. 5. 6.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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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겪고 아침 일찍 무사히 파묵칼레에 도착했다. 호스텔 정원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목화의 성이라는 뜻을 가진 파묵칼레는 작은 마을이지만 고대 히에라폴리스 유적과 새하얀 석회층 풍경으로 널리 알려진 관광지이다.


<에피소드: 리얼 터키 그리고 여행자가 주의할 점에 대하여>

1. 영어가 통하지 않아?

카파도키아를 떠나 무사히 데니즐리에 도착하긴 했는데 지난밤 카밀코치 버스 안에서 리얼 터키를 경험했다. 터키의 장거리 버스에는 승무원 서비스맨이 있다. 내가 탄 버스에는 터키 현지인들 뿐이었다. 나중에 도착해 보니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커플이 있었는데 오는 동안에는 몰랐다. 아무튼 의사소통이 안 되는 환경이었다. 지난번 이스탄불에서 카파도키아 오는 네브쉐히르 버스에서는 약간 춥긴 했지만 별다른 문제없이 잘 왔는데 어제 이 카밀코치 버스는 어찌나 난방을 빵빵하게 틀어주는지 더워서 자다 깼다. 게다가 지금 같은 피부 상태에 건조하고 뜨거운 공기는 좋지 않다.

이미 어제 차에 타고 와이파이 연결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 나에게 "No English"라고 했던 서비스맨을 다시 불렀다. 와이파이라는 단어는 알아들었고, english라는 단어도 아니까 최소한 단어로는 소통이 될 거라는 희망으로. 그리고 여기 덥다고 "hot"이라고 하고 부채질하는 제스처까지 했다. 내가 의미하는 바를 알아들은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는지 계속 더웠다. 결국 한국에서 가져간 가이드북 꺼내서 터키어로 '덥다'는 '스작'이라는 것을 보고 다시 서비스맨을 불러서 "스작"이라고 했는데 이걸 못 알아듣는다. 하... 그런데 다행히 내 뒷자리에 앉아있던 터키인 아저씨가 나의 어설픈 터키어를 알아듣고 서비스맨에게 알려줘서 난방을 꺼줬다. 이런 게 리얼 터키지 달리 리얼 터키인가. 내 평생 터키어로 덥다 뜨겁다는 '스작'이라는 것,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2. 뭐, 팁을 달라고?

아침 7시쯤 데니즐리 오토가르에 도착했다. 비몽사몽 내려서 이제 파묵칼레 가는 버스 타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어떤 남자가 파묵칼레 가는 세르비스 타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다. 이쪽으로 오라면서 카트에 가방 실으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그 순간 나는 정신줄 놓고 실수한 것을 깨닫지 못했다. 가이드북에도 데니즐리에서 파묵칼레로 가는 세르비스는 운행하지 않으니 돌무쉬 (마을버스 같은 미니 버스)를 타야 한다고 했는데도 나는 세르비스를 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엘리베이터 타고 한 층 내려가서 세르비스라고 쓰여 있는 곳에 멈춰 세웠다. 그런데 팁을 달라고 한다. 엥? '내 짐은 내가 알아서'라는 원칙을 잊은 순간 바로 사기꾼에게 낚였다. 당시에는 그걸 깨닫지 못한 채 어리둥절해서 그냥 2리라를 줬다. 그리고 순간 촉이 왔다. 아, 이거 단순히 짐 들어준 팁이 아니라 무언가 이상해. 여자의 직감은 정확하다. 그곳에 있던 다른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돌무쉬 첫 차는 무려 한 시간 후부터 다닌다고 한다. 헐.

사실 그곳은 파묵칼레로 가는 돌무쉬를 타는 곳이 맞기 때문에 완전한 사기라 볼 수 없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그냥 오토 버스 타고 내린 자리에 있었으면 카밀코치에서 작은 버스로 파묵칼레까지 무료로 실어다 주는 것이었다. 돌무쉬가 다니지 않는 시간에만 말이다. 한 층 내려올 필요도 없었고, 돌무쉬를 기다릴 이유도 없었고, 팁을 줄 필요도 없었다.

내가 어이없어서 괜히 그 아저씨한테 짐꾼이 나를 속였다, 파묵칼레 사람들 왜 그러냐고 했다. 그런데 다행히 카밀코치의 버스 기사 아저씨가 나를 찾아내서 남아공 커플과 작은 승합차를 타고 무사히 파묵칼레에 도착했다.

이게 내 여행의 통과의례 같은 건가 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작년에도 인도에서 여행에 조금은 익숙해졌다 싶은 밤 이동 후, 그러니까 바라나시에서 릭샤꾼에게 낚인 일이 생각났다. 이번에도 2리라에 액땜한 거라 마음을 정리했다. 이렇게 화낼 때는 내더라도 교훈만 기억하고 감정은 금방 훌훌 털어버리는 게 내 스타일이고, 작은 사기 정도라면 액땜했다, 이런 낙천적인 시각이 있어야 혼자 여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2리라면 우리나라 돈으로 1,000원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어딜 가든 내 짐은 내가 알아서라는 여행의 기본을 잊지는 말자.

 


 

파묵칼레 마을과 오즈베이 호텔 정원에서의 아침

 

파묵칼레 카밀코치 사무소

파묵칼레의 미니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카밀코치 사무실로 바로 들어갔다. 내일 아침 일찍 셀축으로 갈거라 미리 버스표를 사기로 했다. 기차를 타고 갈 수도 있다고 해서 아침 8시 20분 기차표를 샀다. 30리라. 결론적으로 파묵칼레를 떠나는 순간까지 호구였지만 이 30리라를 지불하고 좋은 기억을 남기게 될 일이었다.

파묵칼레 마을에 들어선 순간부터 좋았다. 공기가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이다. 여행하면서 가본 터키의 전 지역을 통틀어 공기가 가장 좋았던 곳이다. 사실 그곳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면 내 피부 트러블은 바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카파도키아에서 예약하고 온 오즈베이 호텔을 찾아갔다.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도미토리 룸에서 다른 사람들이 자고 있을 테니 이따 체크인하자고 해서 알겠다고 했다. 나는 내일 아침 8시 전에 체크아웃해서 조식 못 먹으니까 오늘 먹어도 되겠냐고 했더니 안되고 10리라 내라고 한다.

프런트에 짐 놓고 산책을 나왔다. 또다시 울산 커플과 마주쳤다. 카파도키아 투어에서 같이 다녔던 신혼커플인데 와, 엄청난 인연이네요. 또 다른 언니까지 네 명이서 아침식사를 하게 되었다. 세 분은 모두 당일치기라 식사 마치고 바로 석회층으로 가고 나는 오즈베이로 돌아왔다.


 

오즈베이 호텔 트리플 룸

체크인할 때 트리플 룸으로 배정받았다. 현재 비수기라 도미토리를 운영하지 않나 보다. 방에는 오늘 체크 아웃하는 미국인 여자가 있었다. 샤워를 하고 조식 홀에서 커피 마시려고 나갔다. 계단에서 우리나라 사람으로 추정되는 여자분과 마주쳤다. 나는 한국인이시냐고 물어봤다. 그렇다고 하길래 망설임 없이 본론으로. "혹시 손톱깎이 갖고 계세요?" 하하. 덕분에 한국 떠난 이후 처음으로 손톱을 깎았다. 아, 시원해!

오즈베이의 직원들은 무척 친절하다. 내부는 넓고 깔끔하고 뜨거운 물도 잘 나온다. 이런 시설을 단 돈 25리라에 이용할 수 있다니 파묵칼레 사람들이 왜 카파도키아 사람들에 비해 불친절한지 알만 하다. 과열 경쟁에 자체적인 합의나 규정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카파도키아 사람들 그리고 터키인들의 국민영어 두 마디가 있다. 그것은 바로 "You are welcome"과 "How are you?"다. 이 얼마나 기본적이고 인간적인 말인가. 그런데 파묵칼레에서는 고맙다고 해도 "천만에"라는 말을 거의 듣지 못했다. 지역적 차이라고 생각해두겠다. 그리고 대놓고 불친절하다면 몰라도 싹싹하게 친절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 같은 여행자는 일상에서의 탈출이지만 그 사람들은 비즈니스고 생활이다. 이해한다. 분명 나도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을 대하는 것과 여행지에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다를 테니 말이다.

조식 홀에서 커피 마시려고 온수통에서 커피를 컵에 받았는데 이것은 차이(chai) 같은데? 어떤 예쁘고 세련된 인도인 여자의 도움으로 커피와 우유를 섞어서 네스카페라떼를 만들어 마셨다. 정원 테이블에 앉아 이어폰으로 음악 듣고 놀았다. 아, 평화롭다. 이런 평화로움 그리고 바쁘게 무언가를 하지 않는데도 죄책감없는 휴식을 마음 편하게 누려본 적이 있었던가.

 

 

오즈베이 호텔 정원

음악 몇 곡 듣고 커피 다 마시고 이제 슬슬 밖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즈베이에서 석회층 입구는 아주 가깝다. 그렇지만 나는 석양을 보기 위해 일단 돌무쉬를 타고 히에라폴리스에 먼저 가고, 저녁에 석회층으로 걸어서 내려오기로 계획했다. 미니버스 정류장을 왼쪽에 두고 우회전하면 메트로 회사가 보인다. 그 앞에서 돌무쉬를 타면 히에라폴리스 입구까지 갈 수 있다. 정거장에 도착해서 기사님의 "lady"라는 말에 버스에서 내렸다. 친절하기도 하셔라.

 

 

파묵칼레 마을

터키 어느 곳에서든 국기와 현대 터키의 아버지 무스타파 아타튀르크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

 



히에라폴리스 Hierapolis

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는 198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신성한 도시'라는 의미를 가진 히에라폴리스는 고대 그리스 로마 유적지이다. 이곳은 기원전 2세기에 페르가몬의 아탈리드 왕이 종교의식을 위한 장소로 세웠다고 알려져 있다. 기원전 133년 로마의 영토가 된 후 서기 60년에 지진으로 파괴되기 전까지 번영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목욕탕, 무너진 신전, 님파에온, 네크로폴리스, 원형 극장 등의 유적지가 아직도 남아 있다. 그중 압권은 유적 온천이다. 지진으로 무너진 건축물의 잔해가 온천수 안에 있는데 입장료를 내고 온천욕을 할 수 있다. 유적지에서 온천 수영이라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히에라폴리스의 유적

이른 오전이라 그런지 이 넓은 히에라폴리스에 나 혼자다. 2,000년 전 종교의식이나 의료 여행을 온 사람들로 가득했을 히에라폴리스를 21세기에 혼자서 걷고 있다! 그리고 11월의 터키는 여행하기 정말 좋은 때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거의 매일 햇살 가득 맑은 날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히에라폴리스 로마식 문

프론티누스 문 Frontinus Gate
너비 14미터의 넓이의 우아한 아치형 문

 

 

대리석 기둥들

 

 

 

로마식 가도

이곳은 히에라폴리스의 중심도로 Main street이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튜닉을 입은 사람들이 이곳을 바삐 걸었겠지? 그러고 보니 나도 오늘 바람에 나풀거리는 인디고 색 원피스를 입고 있네?

 

 

 

히에라폴리스 유적지는 상당히 넓다

히에라폴리스는 11세기 후반 셀주크투르크의 지배를 받으면서 '파묵칼레'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후로도 쭉 번영했는데 1354년 다시 한번 지진이 발생해서 폐허가 되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한참 흐른 1887년에 독일의 고고학자 카를프만이 이곳을 발견해서 복원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석회층

슬슬 하얀 석회층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메말랐다.

 

 

히에라폴리스 아폴론 신전터

그러고 보면 유독 아나톨리아 (터키의 아시아 대륙 쪽 영토)에는 아르테미스와 아폴론 신전이 많다.

 

 

조금 더 먼 거리에서 본 아폴론 신전

원래의 모습은 어땠을까?

 

 

원형극장 해설

 

 

 

히에라폴리스 원형극장

해설도 해설이지만 그냥 앉아서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운 곳이다.

 

 

히에라폴리스 온천

클레오파트라 수영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온천풀

 

 

대리석 유물이 들어 있는 온천 수영장

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는 고대부터 의료 도시였다. 특히 그 중심은 바로 이 온천이었는데 35~37℃의 적당한 온도와 산성 5.8의 ph를 유지한다. 특히 류머티즘, 피부병, 심장병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서 그리스, 로마,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파묵칼레 여행기 2편 ↓

 

 

터키 파묵칼레 여행: 신비로운 석회 온천과 곤칼리 기차역 풍경

하얀 석회층과 그곳을 흐르는 밝은 하늘색의 온천수. 터키 데니즐리 주의 작은 도시 파묵칼레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든 바로 그 풍경이다. 파묵칼레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일찍 기차역으로 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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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데믹 이전의 여행기로 지금은 현지 사정이 다를 수 있습니다.
※ 참고: whc.unesco.org, 유적지 안내판의 해설, 여성조선 온라인 기사 "파묵칼레에서 고대 로마식 온천욕 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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