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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 02: 에르미타주, 예카테리나 대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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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 02: 에르미타주, 예카테리나 대제

Writer Hana 2021. 5. 2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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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의 본격적인 시작이자 에르미타주 관람의 시작이다. 에메랄드 빛의 웅장한 에르미타주는 첫인상부터 압도적이다. 오늘은 러시아 황실과 관련된 작품을 감상했다. 그중 러시아 정치 역사의 슈퍼스타, 예카테리나 대제의 그림과 조각을 보면서 외국인으로서 타국에서 최고 지위를 누린 그녀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내 침대 위층에 있는 룸메이트는 우리나라보다 더 먼 캄차카에서 온 러시아인 케이트인데 상냥한 스타일인 것 같다. 나라가 워낙 크다 보니 국내 여행인데도 우리나라에서 동남아에 가는 것보다 먼 거리의 여행이다. 여기 머물다가 모스크바에 갈 거라고 한다.

 

오전에 서둘지 않고 숙소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언제부턴가 짧은 휴가로 여행을 가도 서두르지도 계획에 얽매이지도 않게 되었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짧지 않은 여행이라면 더욱 서두를 이유가 없다.

 

맥심 믹스 커피를 마셨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할 때 버릇이 되어서 아직도 아침에 믹스커피를 한 잔 마셔야 진짜 하루가 시작된 것 같다. 조식으로는 시리얼과 우유, 그리고 잼을 바르고 치즈를 넣은 간단하지만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오후 1시가 되기 전에 숙소를 나섰다.

 

에르미타주 남문

어제 대형 슈퍼마켓 찾아 지도 없이 그냥 나가서 돌아다니가 발견한 에르미타주 남문. 숙소에서 걸어서 5분이면 이곳에 닿을 수 있다.

 

 

저기 보이는 에메랄드 빛의 에르미타주!

 

 

겨울의 에르미타주

광장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어마어마한 규모가 정말 압도적이다. 중국도 그렇고 러시아도 그렇고 대국은 확실히 규모가 남다르다. 서유럽의 건축이 세련되고 정교해 보이는 반면 러시아의 건축은 웅장하고 생동감 넘치는 느낌이다. 에메랄드색 하면 보통 동남아나 태평양의 열대 휴양지가 떠오르는데 하얀 눈과 어우러진 에메랄드는 또 다른 느낌이다. 추운 날씨를 덜 춥게 느끼게 해 준다고 해야 할까?

 

 

에르미타주

에르미타주는 겨울 궁전 Winter Palace 이라고도 불리는데, 겨울에 와서 보니 정말 잘 어울리는 별칭이다.

 

 

궁전 광장

에르미타주에서는 국제학생증을 가지고 있으면 무료 입장권을 받을 수 있다. 

 

이제 시작이구나, 기대된다. 즐거운 관람을 위해 편한 신발도 준비해서 갈아신었다. 매표소 지나 cloak room에 가면 무거운 외투와 가방을 맡길 수 있다. 직원들이 방문자의 소지품을 받아서 보관하고 플라스틱으로 된 보관증을 받아 나오면 되고 되찾을 때 반납하면 된다. 

 

 

아직 본격적으로 전시실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입구에서부터 놀랍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 첫 번째 전시실은 긴 복도인데 러시아 황실의 인물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

 

 

painted by Enrico Belli

바로 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계획자 차르 표트르 1세

 

 

 

The Malachite Drawing Room by Alexander Brillov

 

The Library of Nicholas 1st. by Alexander Krasovsky

완전 내 스타일이야. 나에게도 이렇게 고풍스럽고 큼지막한 나만의 서재가 있으면 좋겠다.

 

 

 

 

예카테리나 여제

러시아 정치 역사의 슈퍼스타, 독일 출신의 예카테리나 여제

 

 

painted by Vigilius Eriksen

승마를 하는 예카테리나 여제의 모습

 

 

Portrait of Empress Catherine Ⅱ in front of a Mirror by Vigilius Eriksen(18C)

예카테리나 여제의 초상화나 조각상을 보면 미인은커녕 '대제' 호칭에 어울리는 위엄도 찾아보기 어렵다. 151, 152번 홀의 황실 인물 초상화를 보면 예카테리나보다 뛰어난 미인도 있고, 예카테리나보다 귀족적이고 우아해 보이는 황후도 있으며 예카테리나보다 위엄 넘치는 인물도 있다. 지금 현재 비슷한 이미지의 인물을 찾자면 현재 네 번째 임기 시작을 앞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정도 될 것 같고, 실제로 그녀와 닮은 것도 같다. 메르켈 총리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이나 터키의 레제프 에르도안 같은 강골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녀는 정치인이라기에 굉장히 차분하고 여유 있는 속도로 말을 하며 정책도 이미지에 맞게 과학적 데이터와 전문가 의견에 기반한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한다. 어떻게 보면 건조하고 담백한데 이게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를 한다. 겉보기에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아니라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년 독일 여성의 모습인데 그녀는 정치적 아버지를 배신한 후 승승장구하며 무려 4 연임에 성공한 정치 괴물이다.

 

예카테리나 여제가 말하는 모습을 보고 들을 수 없지만 남아있는 초상화의 인상으로 짐작하자면 그녀도 실제로는 그리 카리스마형의 인물이 아니었을 것 같다. 로버트 그린의 책 <유혹의 기술>에서 유혹자의 유형 중에 능수능란한 외교가형의 "차머"로 분류되는데 그에 수긍이 간다. 머나먼 독일에서 춥고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러시아로 시집가는 것으로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러시아어를 배우고 러시아 문화를 익혔는데 취미 수준이 아니라 정말 열심히 했다고 한다. 또한 생기 넘치고 활기찬 모습으로 사람들을 즐겁고 편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말 한마디와 표정 하나로 좌중을 압도하는 서슬 퍼런 카리스마 유형의 사람도 아니고, 고상한 척하는 우아한 스타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타국에서 그것도 정글 같은 궁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그곳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밝게 웃는 사교적인 사람앞에서는 자연스럽게 방어벽을 낮추게 된다. 만약 황후라는 신분만을 믿고 거만하게 굴었거나 고상한 척 까마귀 무리와 어울리지 않겠다고 고립을 자초했다면, 스스로 어려운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고 역사의 전면에 등장할 기회가 주어지기 전에 이름 없이 사라졌을 수도 있다. 이것이 예카테리나 여제의 매력이다.

 

그러나 그녀의 진짜 힘은 그런 가운데 인내하고 준비하며 때를 기다릴 줄 알았다는 것이다. 얼굴은 편안해 보일지 몰라도 그녀는 누구보다 독한 근성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생존력이 아주 뛰어났는데, 이것이야말로 그녀의 마력이다. 빛나는 역사적 인물 누구에게나 그렇듯 예카테리나 대제도 러시아의 영토를 확장하여 대제국으로 발돋움시키면서 권력기반으로 귀족들의 지지가 필요해 그들의 이해관계를 봐주느라 농노들을 인간 이하의 삶으로 전락시킨 공과가 있다. 정치적 평가는 뒤로하더라도 보기 드물게 매력적인 인물이다.

 

아마 생존을 위한 권력투쟁을 할 필요 없이 편안한 환경에서 살았다면 그저 음악 좋아하고 파티 좋아하고 예술에 관심 많은 풍류 스타일이었을 것 같다. 실제 에르미타주도 그녀의 미술에 대한 애착으로 탄생했다.

 

 

예카테리나 대제 두상

나는 그림이 좋고 조각에서는 특별히 내 눈길을 끄는 작품이 아니면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조각의 새로운 매력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보는 각도에 따라 같은 조각이 달라 보인다는 단순하지만 엄청난 사실이다. 정면에서 보면 위엄 있어 보이고 아래에서 보면 온화해 보인다. 조각 자체의 정면이 아닌 그녀의 얼굴 정면에서 보면 무언가 우수에 찬 표정이다.

 

 

The Boudoir of Empress Maria Alexandrovna by Eduar Hau.

 

화려한 금 테두리 장식도 눈에 띄지만 무엇보다 빨강을 저렇게나 고급스럽게 표현하다니 놀랍다. 

보통 빨강은 열정을 상징하지만 와인색에 가까운 이 빨강은 차분하고 위엄있는 느낌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The Gold Drawing Room

에르미타주 궁전의 화려한 모습들...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궁전 갤러리 창밖의 풍경

 

 

 

네브스키 대로의 해질녘 모습

저녁을 간단히 먹고 산책하러 나갔다. 낮에는 원피스에 패딩만 걸쳐도 모자와 장갑이 있으면 돌아다니는데 지장이 없는 추위다. 그러나 밤에는 또 차원이 달랐다. 진짜 엄...청... 춥다... 그래도 야경은 참 아름답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야경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야경

 

 

화려한 조명 덕에 더욱 아름다운 상트의 밤

 

※ 에르미타주 컬렉션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원하신다면 방문하실 때 오디오 가이드 대여를 추천드립니다. 갤러리 입구에서 판매하는 가이드북 또한 풍부한 도판과 해설로 구성되어 있어서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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